반명계 수면 위로 올리고…당 장악력 강화
지지자 총력 결집…대내외 투쟁 동력 확보
반윤 투쟁 선명성 강화…개혁 과제도 박차
여전한 반명계 반발…'탕평' '통합'은 과제
윤석열 대항마로 자리 다진 이재명의 '다음'
"진정한 정치로 돌아가 국민에 희망줘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단식부터 구속영장 기각까지 일련의 과정은 한편의 정치 드라마이자 대역전극에 비유할 수 있다.
'국민 항쟁'을 선포하면서 시작한 그의 단식은 야당대표로서 역대 최장인 24일이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대통령실과 집권여당, 기성언론의 폄훼와 외면 속에서 수차례 고비를 맞았다. 단식 과정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갔지만, 검찰은 이 대표가 병원에 긴급 이송된 것을 틈타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무도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검찰의 구속 시도에 당 안팎에서 동정론이 일어났음에도, 당내 의원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병상에서 단식을 이어가던 그를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기도 했다. 반명(반이재명)계, 비명(비이재명)계 민주당 의원들은 반란표를 던지며 헌정 사상 최초 야당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검찰과 한편에서 자당 대표의 구속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로 인해 이 대표는 제1야당 대표로서는 헌정 사상 최초로 영장 심사대에 서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는 험난한 정치 인생에서 또다시 커다란 변곡점을 맞았지만, 지난 새벽 사법부가 정치 보복성 수사에 대해 '철퇴'를 내리면서 검찰의 구속 시도는 완벽하게 무산됐고, 이제 화려한 복귀 신고를 하게 됐다. 온전한 이재명의 시간이 됐다.
반명계 수면 위로 올리고…당 장악력 강화
한국 정치사에서 주요 장면 중 하나로 기록될 드라마 같은 과정을 통해, 이 대표는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했을 뿐 아니라, 당내 장악력을 더욱 확실하게 다지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운신의 폭도 이전보다 넓히게 됐다.
이 대표 체제를 강화한 일등 공신은 역설적이게도 반명·비명계 의원들이었다.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공개적으로 부결을 요청했지만, 반명·비명계 의원들은 당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깼다면서 이를 명분 삼아 가결에 표를 던짐으로써 '자충수'를 뒀다. 되려 스스로 당원으로부터 축출 당할 명분만 제공한 셈이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제 나라 국민이 제 나라를 팔아먹었듯이, 같은 당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었다"며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의 정적 제거, 야당 탄압의 공작에 놀아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해당 행위다.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회의석상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에 대한 당원들의 거센 반발에 비명계 박광온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가 책임을 지고 모두 물러나게 됐고, 비명계로 이 대표 지근거리에서 비판해 온 송갑석 최고위원도 사의를 표명하며 지도부를 범친명계 인사로 채울 수 있게 됐다. 반명·비명계 반란이 이 대표 중심의 당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한 셈이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지지층이 총력 결집한 것은 이 대표로서는 최대의 정치적 소득이 됐다. 이 대표가 초인적인 단식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검찰의 구속 시도와 국회의 체포동의안 가결은 숨죽이고 지켜보던 민주당원들을 이 대표 중심으로 집결하게 만드는 동인이 됐다.
이들의 결집세는 구속영장 기각을 호소하는 탄원서에 단 나흘 만에 90여만 명이 서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비명계 의원들에게도 견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 탄원서에 민주당 의원 161명이 동참했다. 민주당 의원 총수가 168명임을 고려하면, 이 대표 자신을 제외하고 강성 반명계라고 분류할 수 있는 6명 외에 모두가 이 대표 지키기에 나선 셈이다.
구속영장 기각으로 당내 분위기를 쇄신한 것도 앞으로 이 대표가 개혁 과제에 드라이브를 거는데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영장 기각으로 전체적으로 자신감을 얻은 모습이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구속영장 기각으로 당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며 "4·7 재보궐과 대선 이후 분위기가 침체됐는데, 당원들도 자신감을 얻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당장 표면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영장 심사로 당초 '추석 귀성객 인사'를 '예비 일정'으로만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영장이 극적으로 기각되면서 홍익표 신임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귀성길 인사에 나섰다. 귀성길 인사를 취소하고 비상의원총회를 소집한 국민의힘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여전한 반명계 반발…'탕평' '통합' 과제
다만 이 대표로서는 당원들의 비명계 '응징' 요구와 자신이 강조해온 '탕평' '통합' 사이에서, 친명·비명계 간 갈등을 수습해야 하는 과제가 남게 됐다. 개혁 입법 드라이브를 위해 비명계 협조가 필요한 점도 현실적인 고민 지점이다. 이 대표 자신도 체포동의안 표결 당일 박광온 전 원내대표와 '통합적 당 운영'을 약속한 바 있다.
통합 과제를 의식한 듯, 홍익표 원내대표도 구속영장 기각 뒤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원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우리당의 분명한 원칙과 기준 아래 반목과 분열에는 단호하고, 차이와 다양성은 존중하는 더 큰 민주당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제 다시 원팀"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비명계 의원들의 반란을 징계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시민 작가도 27일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가결 투표를 한 의원들에 대한 징계와 관련, "당론 투표도 아니었다"면서 "실제로 (징계)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영장 기각 뒤에도 반명계 의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어 일정 부분 상응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대표적인 반명계 인사인 이상민 의원은 이날도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이번 영장 기각과는 관계없이 여전히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것 아니다" "다시 한 번 당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당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는 데 이 대표가 결단이 필요하다"면서 또다시 이 대표 사퇴론을 주장했다.
이재명, 반윤 투쟁 선명성…개혁 드라이브
당내 수습 과제와 별개로, 이 대표의 완전한 당무 복귀와 분위기 쇄신은 정치 검찰에 대한 반격의 고삐를 당기고 '반윤석열 전선'에 대해 선명성을 더욱 뚜렷하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노란봉투법, 방송법 등 개혁 입법 과제와 연말 쌍특검(50억 클럽 특검, 김건희 특검)을 공세적으로 추진함과 동시에, 기존에 추진하던 양평 고속도로 김건희 일가 게이트, 오송 지하차도 참사, 잼버리 사태, 방송 장악 등 4대 국정조사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도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뒤 대정부·여당 투쟁 목표를 확고히 한 모습이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검찰에 의존한 정치 무력화를 멈추고,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는 태도로 정치를 복원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며 "무리한 정치수사에 대한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실무책임자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파면이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필요하며 한 장관을 즉각 파면해야 한다"면서, 한 장관을 향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자진 사퇴하라"고 말했다. 박찬대 최고위원도 "무도한 정치 탄압에 대해 사과하고 한 장관을 파면하는 국정 쇄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영장 청구한 수사 검사에 대한 징계, 손준성 검사 등 조작 수사에 대한 특검, 한 장관의 파면 등 모든 책임을 묻겠다"면서 "윤 대통령은 체포동의안 재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바란다"고 했다.
이 같은 대정부·여당 투쟁의 선명성은 '예비 총선' '윤석열 정권 중간성적표' 성격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날 영장 심사에서 지팡이를 짚은 채 출석한 이 대표는 아직 건강을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모습이지만, 강서구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며 총력 지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에게도 강서구청장 선거 승리는 중요하다. 정권심판론에 불이 붙는다면, 이 대표로서는 내년 총선까지 반윤석열 정권 투쟁의 고삐를 당기며 반격할 발판을 다질 수 있다. 당내 장악력 강화로 안정적인 총선을 치를 토대를 닦은 상황에서, 이 대표의 등에 날개가 돋은 격이 된다.
민주당에 따르면 중랑구 녹색병원에 입원 중인 이 대표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진교훈 후보와 통화에서 "강서구 보궐선거는 정권 심판 성격인 내년 총선의 전초전으로, 반드시 이겨야 한다"며 "이번 선거는 저들의 무도한 폭력적 지배, 민생 실패, 국정 실패를 심판하는 선거여서 강서구뿐만 아니라 전국적 선거와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반개혁 성향 의원들의 미온적 태도로 추진력을 상실했던 '김은경 혁신안'도 재추진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의원제 폐지와 정치 신인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혁신안의 관철은 지지층을 한층 더 결집하고 총선을 흥행시킬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재명 "진정한 정치로 돌아가 국민에 희망 줘야"
'검찰의 아가리'에서 생환한 이 대표는 대선후보급 정치인이라는 기존의 타이틀에 더해 고난을 극복한 정치인이라는 스토리까지 가미되면서 윤석열 정권에 정면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서 입지를 더 단단하게 다져가는 모습이다. 그만큼 더 큰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 대표 자신도 그러한 무게감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날 구속영장 기각 뒤, 이 대표가 기자들과 지지자들 앞에서 한 발언은 이 대표가 지향하는 정치가 사소한 정치적 보복이나 갈등 수습을 넘어 그 이상, 그 다음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석된다.
"정치는 언제나 국민의 삶을 챙기고 국가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야, 정부 모두 잊지 말고 이제는 상대를 죽여 없애는 그런 전쟁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로 되돌아가길 바란다"
"즐거워 해 마땅한 추석이지만, 우리 국민들의 삶은, 우리의 경제, 민생의 상황은 참으로 어렵기 그지 없다. 우리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 나라 미래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를 정부·여당에도, 정치권 모두에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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