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단식 투쟁과 입원, 35일 만에 당무 복귀
"윤석열 국정 기조 전면 쇄신, 내각 총사퇴" 요구
당내엔 확고한 통합 메시지…극심했던 내홍 정리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 더 이상 왈가왈부 말라"
리더십 자신감 속 비명계도 끌어안아 전열 정비
'여야정 3자 회동' 역제안…윤, 거부 쉽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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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를 한동안 떠나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마침내 당무에 복귀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전면적 국정 쇄신과 개각, 일본 핵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천명 등을 요구하며 국회에서 단식 농성을 하다 지난달 18일 병원에 실려 간 지 35일 만이다. 이 대표는 목숨을 건 연속 24일간의 단식 투쟁을 병상에서도 멈추지 않다가 의료진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지난달 23일에야 중단했다. 이후 회복 치료를 받다 입원 21일 만인 지난 9일 녹색병원에서 퇴원했으나,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유세장으로 이동해 진교훈 후보 지지 활동을 벌인 바 있다.
다시 현장에서 민주당의 지휘봉을 잡은 이 대표의 복귀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윤 대통령의 국정 기조 전면 쇄신, 그리고 확고한 당내 통합이다. 특히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의 일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길 바란다"고 못박아 이른바 '가결파' 징계 문제를 단번에 봉합했다. 이로써 비명‧반명계를 향해 한동안 격렬하게 분출됐던 친명계의 분노도 급속히 수면 밑으로 가라앉으며 민주당 내홍은 일단 불길이 잡히게 됐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먼저 여러 가지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앞으로도 오로지 국가와 국민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 다짐의 말씀을 드리면서 회의를 시작하겠다"는 말로 운을 뗐다.
이어 "우리 민주당의 가장 큰 과제는, 아니 민주당을 넘어서 대한민국 정치권의 가장 큰 과제는 국민의 삶을 지키고 개선하는 것"이라며 "정부‧여당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으로 인해서 국민의 삶, 이 나라의 경제와 안보가 위협을 받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 제1의 과제는 바로 민생을 지키고 평화를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진척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기조를 전면 쇄신해야 한다. 무능과 폭력적 행태의 표상이 되어버린 내각을 총사퇴시켜야 한다"며 "그것이 '말로만의 반성'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정부의 진정성을 확인시켜주는 핵심적인 모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경제와 민생을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면서 "시장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그냥 '언젠가는 좋아지겠지'라고 막연하게 기대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다"고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기술 발전에 힘쓰고,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위한 국가의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R&D 예산 대폭 삭감과 같은 전 세계가 비웃을 무지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며 "이번에 제출된 정부 예산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여야간 충실한 협의를 통해 예산에 대한 근본적인 대전환을 시도해주길 요청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막중한 역할 감당과 총선 승리를 위해 당내 단합과 혁신이 중요하다는 점도 역설했다. 이 대표는 "우리 민주당의 어깨가 무겁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특히 정부의 폭압으로 인해 대한민국 시스템이 붕괴되고 과거로 퇴행하는 일들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번 총선에서 정부의 잘못된 점을 엄히 꾸짖는 심판이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려면 우리 민주당이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단결하고 단합해야 한다. 단결과 단합 위에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충분한 혁신을 통해 국민 기대에 맞춰나가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의 일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의 삶이 절박하다"면서 "그런 문제로 우리의 역량을 소진하고 시간을 보낼 만큼 현실이 녹록지 않다"고 각별히 당부했다.
지난달 21일 헌정사 최초의 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민주당은 거의 '심리적 분당' 상태로 치달았던 게 사실이다. 이재명 대표가 당내 소수파 의원들에 의해 기어이 비수를 맞고 구속 위기에 처하게 되자 다수파인 친명계는 "배신과 협잡의 구태 정치" "암적인 존재" "차도살인" 등의 격한 표현을 쓰며 비명계를 향해 그간 자제해왔던 노기를 폭발시켰다. '가결파 5인방'에 대한 해당행위 징계 청원도 지도부 답변 요건인 5만 명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이 대표가 당무에 복귀해 '민생 수호'와 '내부 통합' 메시지를 확고히 타전함에 따라 징계 청원 처리는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되지 않고 무기한 보류되거나 아예 징계를 안 한다는 쪽으로 정리될 전망이다. 극한까지 밀어붙였던 단식 투쟁에 이어 법원에서의 구속영장 기각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압승으로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에 힘을 받고 있는 이 대표는 '당내 분열은 총선 필패'라는 그간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하며 이미 입지가 옹색해진 비명계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서 당 전열을 단일대오로 정비하고 밖으로는 '강한 야당' '대안 정당'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지지층을 확장함으로써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총선 승리의 기반도 착실히 다진다는 복안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민주당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나는 3자 회동을 제안했다. 권칠승 수석 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직접 민생과 정치 복원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기본적인 입장"이라며 "경제 회복과 민생 챙기기를 위해 여야정, 즉 대통령과 여당 대표, 야당 대표 간 3자 회동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민생이 굉장히 어려운 가운데 그동안 정부와 여당의 야당 무시가 굉장히 심했고, 정치가 실종돼 복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표는 당대표 취임 이래 윤 대통령을 향해 수차례 민생 영수 회담을 요청해왔다. 24일간의 단식 후 병상에서 회복 치료 중이던 지난달 29일 추석 때도 "윤석열 대통령님께 민생 영수회담을 제안드린다"며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조건 없이 만나 민생과 국정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은 신속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대통령님의 전향적인 결단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집권여당이 대신 나서 "격에 맞지 않는 범죄 피의자의 위기 모면용"이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그러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나자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여야 대표 민생 협치 회담'을 제안한 상태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취재진이 "김 대표가 제안한 당대표 양자 회담은 안 하겠다는 의미냐"는 질문에 "그렇다. 3자 회담을 저희가 제안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지율 추락까지 맞물려 심각한 위기의식 속에 '민생'과 '반성'을 내세우던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여야정 3자 회담'이라는 이재명 대표의 역제안 카드를 쉽게 뿌리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를 거부할 경우 "또 말로만 쇼를 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야당 대표부터 만나야 한다"는 지적이 보수 언론에서도 제기돼온 터라 대통령실이 마지못해 받아들일지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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