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의 나라 ⑨] 권위적인 호칭 버려야 민주주의가 산다
최근 대통령의 언행들에는 아무런 거침이 없다. 후보 시절 TV토론에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나온 장면이 자꾸 연상된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대통령이 왕이 된 것처럼 국민을 억압한다”는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president’가 ‘대통령’? 일본이 잘못 번역한, 일본 문화로 충만된 호칭
원래 ‘president’는 “회의를 주재하다”는 뜻의 영어 ‘preside’에서 유래된 용어다. 우리말로 옮기면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나 ‘의장’ 정도로 이해되는 말이다. 미국이 굳이 최고통수권자의 호칭에 이 용어를 사용했던 까닭은 왕이 통치하는 유럽과 달리 완전히 새로운 실질적 민주주의를 지향하겠다는 의도였다. 즉, 권위적이며 대중 위에 군림하는 성격을 지닌 ‘황제’나 ‘왕’이라는 용어 대신 민주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대통령’은 일본이 만든 번역어이다. 이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일본의 ‘통령(統領)’으로부터 비롯된 말이다. 일본은 ‘president’라는 영어를 번역하면서 자신들에게 익숙한 ‘통령’이라는 용어에 ‘클 대(大)’ 자 한 글자를 더 붙여서 ‘대통령’이라는 말을 만든 것이다.
‘통령(統領)’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고대 시대부터 사용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통령’이라는 용어가 ‘무문(武門)의 통령’, ‘사무라이 무사단의 통령’ 등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우두머리’라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阿蘇氏 武家의 통령이 되었다”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군사적 수장이나 씨족의 족장을 의미하는 용어로 매우 흔하게 사용되었다. 여왕용(女王龍)의 신화 등에서도 그 여왕용을 수행하는 기사(騎士)를 ‘통령’으로 호칭하고 있다. 나아가 문제의 신사(神社)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예를 들어 ‘비조(飛鳥) 신사(神社)’를 설명할 때에도 그 신사를 수호하는 신(神)으로서의 ‘대국주신 통령(大國主神統領)’이라는 말이 출현하고 있다. (근대 시기 중국에서는 ‘president’의 번역어로서 1817년 ‘두인(頭人)’이라는 비칭(卑稱)의 성격을 지닌 호칭을 사용한 이래, ‘총리(總理)’, ‘국주(國主)’, ‘추(酋)’, ‘수사(首事), ‘추장(酋長)’, ‘방장(邦長)’,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 프레지던트의 음역(音譯)으로서 옥새를 관리하고 천덕(天德)을 지닌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황제의 의미와 상통한다)’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다.)
일본은 이 ‘통령’이라는 용어를 다른 나라의 직위를 설명하는 번역어로도 사용해왔다. 이를테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중국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의 두령 송강(宋江)을 ‘통령’이라 지칭하고 있고, 로마 시대의 ‘집정관(consul)’이라는 직위도 ‘통령’이라고 번역하며, 또 십자군전쟁 당시 ‘46대 베네치아 통령’이라고 부르고 있는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통령’이라는 용어를 애용해왔다. 특히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통령’에 취임하여 ‘통령 정부’를 구성했다고 한 사실은 우리에게도 매우 잘 알려져 있지만, 이 모두 일본식 번역어이다.
한편, ‘통령’은 군사적 용어이다. ‘통령’이란 중국에서 1894년 “청일전쟁 때 북양함대의 해군 丁 통령과 육군 戴 통령이 뤼순에서......”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청나라 후기 무관 벼슬의 명칭인 근위영 장관(近衛營長官)으로서 오늘날의 여단장에 해당한다. 당시 통령은 여단장급이고, 통제(統制)는 사단장급이었으며, 통대(統帶)는 군단장급이었다. 갑신정변 당시 조선에 진주한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상관이었던 우창칭(吳長慶)의 직위가 바로 이 ‘통령(統領)’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본은 사무라이 무사단의 우두머리를 ‘통령(統領)’이라고 칭하는 등 군사적 수장을 가리키는 의미로 애용해왔다.
참고로, 현대 중국어에서 ‘통령(統領)’은 “중국 여자 축구가 세계 여자축구를 통령, 統領한다” 등의 용례처럼 “한 손에 모두 장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승만이 사랑했던 ‘대통령’이란 말
일본이 만든 이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용하게 된 것은 이승만이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고집한 데서 비롯된다.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는 국무총리 제도였기 때문에 ‘대통령’이라는 호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승만은 미국에서 자기 마음대로 ‘대통령’이라는 명함을 사용하였다. 당시 도산 안창호는 이승만에게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하였다. 처음에 상하이 임시정부 수반직을 거부하던 이승만은 그 직을 받아들이면서 상하이 임시정부 내무총장이던 안창호에게 그 명칭을 ‘국무총리’에서 ‘대통령’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였고, 결국 이를 안창호가 받아들이면서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널리 사용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대통령’, 권위적이었던 이승만이 특별히 사랑했던 호칭이었다.
군사 문화와 일본 문화라는 두 가지 요소는 여전히 우리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영역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군사적 성격과 봉건적인 일본 문화의 성격을 그대로 담고 있는 ‘대통령’ 호칭은 시대착오적이며 명백하게 민주주의와 반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다.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는 이른바 ‘제왕적(帝王的) 대통령’ 현상 역시 ‘대통령’이라는 용어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성격과 결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언어는 개념을 만들고, 언어생활은 사고를 규정한다. 언어는 개념을 담는 그릇으로서 언어생활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구체적으로 결정하고 규정한다. 어떠한 용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서로 상이한 개념과 이미지가 그 용어라는 그릇에 담겨져 사용되며, 그렇게 확대와 심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클 대’ 자가 들어간 데다가 ‘통령’이란 용어는 일본 용어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그 내용과 어감이 지극히 권위주의적이다. 가령, 우리가 ‘대통령’ 대신 ‘의장’이나 ‘회의 주재자’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면 그 이미지나 어감, 뉘앙스는 전혀 달라지게 된다.
‘대통령’ 호칭의 대안으로서는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면, 우선 임시정부의 수반 직함으로 사용되었던 ‘국무령(國務領; 1926년 12월,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국무령에 취임하였다)’이나 ‘주석(主席; 1932년 9월,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하였다)’이라는 용어가 고려할 만하다. ‘주석’이라는 호칭은 ‘president’의 본래 의미와 가장 가까운 장점이 있으나, 북한이 사용하고 있는 우리 실정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총통(總統)’이라는 용어는 박정희 유신정권 당시 영구집권 시도로서 총통제가 거론되었던 역사로 인하여 ‘총통’이라는 용어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바 있다. ‘president’의 본래 의미를 살려 단순히 ‘국가 의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대통령’은 결코 ‘왕’이 아니다. 또한 ‘대통령’은 단순히 관료집단만의 수반일 수는 없다. 그것은 현대 사회의 한 국가를 대표하게 되며,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는 민주주의의 상징이어야 한다. ‘대통령’은 ‘president’라는 용어가 의도한 취지와 내용에 전혀 부합되지 않고 오히려 가장 상반되는 ‘잘못된’ 호칭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전진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진정한 의미로서의 현대국가로 정립해 나아가기 위하여 ‘대통령’이라는 권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호칭은 이제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