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주 선생의 생각에 덧붙여서

박병상(60+기후행동 공동대표)
박병상(60+기후행동 공동대표)

북극해에 있어야 할 얼음이 생기지 않았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올겨울 우리나라에 혹한이 닥칠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북풍한설을 막던 제트기류가 흐물흐물해지면서 중위도에 냉기가 퍼지는 “온난화의 역설”을 전문가는 ‘폴라보텍스’라고 정의하는 모양인데, 처음 알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외국의 기상이변은 무시무시하다. 한 해 강수량의 두 배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유럽에 이어 미국은 강수량 거의 없는 데스벨리에 1년 치 비가 하루 만에 내렸다. 그러자 숨었던 새우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자동차 몰고 현장 탈출한 미국인들은 에어컨 바람에 몸을 숨겼을 것이다. 새우는 폭우를 기다리며 그때까지 버텼을까? 기상이변이 일상이 되면 에어컨 없는 사람은 어찌 될까?

재발간한 <녹색평론> 최신호에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기후위기와 핵오염수 그리고 감염병에 대한 섣부른 대안 제시가 아니라 근원 문제를 짚었는데, 누가 읽었을까? 영상문화에 젖은 시대에 나이 들어 은퇴하는 독자의 뒷자리를 젊은이는 잇지 않는다. 그나마 남은 독자는 강남에 많다는 역설(?)을 김종철 선생께 들었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데 윤리적 부담을 가진 ‘강남좌파’일까?

동기 중 가장 어렵게 살아온 친구는 자신은 여당에 표를 줄 거라 당연한 듯 말했다. ‘이스털린 역설’인가? 구로구에서 강남으로 연결하는 6411 시내버스 첫차만이 아니다. 인천 구도심에서 송도신도시로 이어지는 인천지하철 첫 열차도 작업복 차림의 노곤한 시민이 가득하다. 그들에게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면 얼마나 호응하며 행동에 동참할까? “기후위기가 천천히 죽는 문제라면 경제위기는 당장 죽는 문제”라는 박태주 선생의 지적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8월, 프랑스 일원은 전에 없던 폭염으로 7만 명 이상 희생되었다. 대부분 직업을 찾지 못한 이민자였고, 그중에서도 할머니와 여자 아기가 많이 희생되었다. 어쩌면 직장 구할 아들과 손주를 배려하고 희생을 청했을지 모른다. 20년이 지난 요즘 폭염의 기세는 훨씬 강해졌지만, 쉼터 에어컨이 예방한다. 우리 쪽방촌도 비슷한데, 최근 10년 사이에 세계 평균 기온과 수온의 최고 수치가 몰렸다. 그 추세는 이어질 텐데, 화석연료가 제공하는 안락한 삶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햇볕이 강하지 않아도 지붕마다 태양광 패널을 붙인 독일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를 모두 껐다. 푸틴이 일으킨 전쟁으로 가스와 전기요금이 치솟아도 약속을 지켰는데, 그 탓에 최근 경기침체의 덫을 벗어나지 못한다며 우리 언론이 전한다. 유럽 최고의 경제대국인데, 폭삭 망할까? 시민과 끊임없는 논의 끝에 핵발전소를 끈 독일이 경제침체를 예측하지 않았을 리 없을 거 같다. 실업자는 당장 늘어도 견디며 벗어날 궁리를 세우지 않았을까?

태양과 바람 같은 재생에너지 자원이 충분치 않아도, 꾸준히 준비한 독일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전환하려고 한다. 매장량이 충분해도 기후위기에 저항하는 시민이 늘어나면서 석탄 발전을 회피하려는 추세가 두드려진다. 미래세대 생각하는 시민의식이 선도하기에 가능한데, 사실 준비가 있었다. 화력과 핵발전소 노동자의 저항을 사전에 무마한 것이다. 에너지 전환에 앞선 일자리 전환을 노동자가 받아들였다.

석유는 물론이고 석탄도 머지않아 고갈된다. 전문학자는 자료를 근거로 석유는 정점이 지났다고 확신한다. 산업화 시절보다 기온이 섭씨 1.5도 이상 오르면 기상이변은 일상이 될 것이다. 코로나19와 요소수 부족으로 잠시 당황했던 일상은 혼돈에 휩싸일 텐데, 아직 참을 만하다. 남은 시간은 충분할까? 기후학자는 10년 이내에 일상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를 확 줄여야 할 텐데, 줄일 소비가 없는 계층은 어떻게 하나? 최근 로마클럽은 잘 사는 국가의 과감한 부채탕감을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했다. 다른 대안은 없다고 단언하면서.

경제와 환경의 한계를 숫자로 계산해 내는 바츨라프 스밀은 화석연료가 끊어지면 80억 세계 인구의 절반만 살아남을 거라 냉정하게 진단했다. 우리 음식은 대부분 석유 없이 준비할 수 없는데, 생존에 필수인 집과 옷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흥청거리면 40억은커녕 10억도 생존하기 어려울 텐데, 그 고통은 고스란히 미래세대에 전가된다. 수시로 에어컨 켜는 우리는 거기까지 생각하길 거부한다. 무책임한 지식인은 지구공학을 들먹인다.

화석연료 지원이 없으면 눈앞의 절벽이 남는다. 하지만 화석연료 없는 노동은 있다. 바츨라프 스밀은 모든 인구가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상상했는데, 두 세대 전 40억 인구는 농사지으면서 화석연료를 거의 몰랐다. 핸드폰은 물론, 자동차와 냉장고 없이 행복했다. 되돌아갈 용의가 자식 키우는 우리에 있을까? 기후위기를 넘어 멸종까지 걱정하는 지식인은 오늘도 채근하는데, 노동자는 시무룩하다. 경각심을 불어넣는 지식인은 오늘도 안정된 직장에서 넉넉한 수입을 챙긴다. 직업이 불안한 노동자는 허구한 날 굶주림을 걱정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화석연료, 특히 석유가 모자란다는 신호를 감추지 못하는 순간, 일자리가 급히 사라질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다. 아이들은 틀림없이 비참해진다. <녹색평론> 읽는 일부 강남좌파, 탐욕에 절지 않은 일부 지식인이 이야기한다. 말보다 행동이 느린 지식인이든, 현실에 발목 잡힌 노동자든, 자식은 귀엽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가 스러지는 거 상상하기 싫다면, 절박한 마음으로 기후행동에 나서야 한다.

기득권의 엄살에도 화석연료가 있기에 경제는 무너지지 않는다. 굶지 않을 때, 절박한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기득권이 안긴 편의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미래세대의 생존을 생각할 시간이다. 박태주 선생의 염려를 되새기면서 기후행동의 담론을 눈여겨보길 바란다. 탐욕스런 기득권, 기득권 편에 선 지식인 눈치 볼 거 없다. 돌이킬 여유와 수단이 있을 때, 화석연료 없이 행복할 노동을 모색하고 늦지 않게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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