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만나고 개 식용 반대하고…대통령 노릇하는 부인
개 식용은 시작에 불과?…"총선 앞두고 가속화될 수도"
지난해 12월 6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나 외교 현안인 한국인 비자 발급 문제와 관련해 "관심 있게 살펴봐 달라"고 요청하면서 국정개입, 국정 사유화 문제가 한 차례 제기된 바 있다.
김 씨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1월 11일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정치인처럼 '어묵' 먹는 모습을 대중에 노출하며 실력을 과시했다. 여의도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김 씨가 내년 총선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정치권과의 스킨십도 과감했다. 김 씨는 1월 27일과 30일 한남동 관저에 국민의힘 여성 의원들을 초청해 오찬을 가지며 이른바 '식사 정치'를 했고, 이어 2월 1일에는 대통령실 선임행정관급 이하 직원 30여 명과 도시락 오찬을 가졌다. 바로 다음 날인 2월 2일에는 장관 배우자들을 관저에 불러 점심 식사를 했다.
대선 때 국민에게 약속한 '조용한 내조'는 온데간데없었다. 김 씨의 행보는 더욱 과감해져 지난 4월 13일에는 납북자 및 억류자 가족과 만나 "정부가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납북자·억류자의 생사 확인과 귀환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부에 아무런 권한이 없는 김 씨가 대통령을 대신해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또 같은 달에는 동물보호단체를 만나 "개 식용을 정부 임기 내에 종식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국정 운영에 아무런 권한이 없는 김 씨가 이해관계 당사자들에게 정책 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임기'가 누구의 임기를 의미하냐는 말까지 나왔다.
이 같은 '월권' 행위는 급기야 외교 무대까지 이어졌다. 지난 4월 24일 미국 국빈 방문에서 넷플릭스가 케이(K) 콘텐츠에 25억 달러(한화 약 3조 3410억 원) 투자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가 "영부인께도 진행 상황을 보고드린 적 있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이로 인해 경제·외교 사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씨의 최종 승인을 받고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움직인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의혹 제기가 단순히 사안 하나만을 두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지난 3월 29일에는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돌연 사퇴하는 일이 발생했었다. 대형 외교 이벤트인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정부의 외교안보 컨트롤 타워격인 안보실장이 사퇴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정치권에서는 김 전 실장의 사퇴를 두고, 이른바 '김건희 라인'과 전통 외교 라인의 권력 암투가 그 원인이라는 관측까지 나왔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김 씨의 대통령실 내 위세를 가늠할 만한 사건이었다.
최근에는 정부의 공식 직제가 없는 김 씨의 엑스(X, 옛 트위터) 계정에 정부기관이나 국제기구 관계자, 대통령, 국회의원 등에게만 부여하는 '회색(실버) 마크'를 달기 위해 외교부가 직접 나선 것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외교부가 김 씨의 사조직처럼 움직이는 일이 벌진 것이다.
자살 정책 이야기하고 '김건희법'까지 등장
하지만 여론의 비판과 지적에도 국정개입으로 비춰질 수 있는 행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 28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 지구대에서 자살 관련 구조 업무를 수행하는 현장 경찰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격려했다고 한다.
경찰관 격려 자체를 비판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 씨는 이 자리에서 또 대통령처럼 "자살의 9할은 사회적 타살의 측면도 있다"며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의 고민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세대의 자살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면서 "청년들이 하는 가장 외로운 선택이 자살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회 정책과 관련해, 사실상 지시를 하는 것처럼 읽힐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아울러 지난 30일에는 '개 식용 종식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기자회견장에 깜짝 등장해 "저는 이분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서 개 식용이 금지될 때까지 끝까지 운동하고 노력할 것"이라며 "약속드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인간과 동물이 다 같이 공존해야 되는 시대"라며 "불법 개 식용은 절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월에 이어 또다시 권한도 없는 대통령 부인이 정책 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다.
물론 동물권 인식 제고와 식문화 변화로 개 식용에 대한 우호 여론은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민간인인 대통령 부인이 마음대로 정책 추진 의지를 밝힐 만큼 가벼운 사안은 아니다. 찬반을 떠나 개 식용 금지 문제는 국가 권력이 국민의 기본권, 행복추구권 등을 제한하는 일인 만큼 항상 위헌 문제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관련 종사자에 대한 생계대책 마련 문제도 뒤따른다.
김 씨의 남편인 윤 대통령도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0월 31일 TV토론에서 개 식용에 대해 "반려동물을 학대하는 게 아니고, 식용 개라는 건 따로 키우지 않냐" "개인적으로 반대하지만, 국가 시책으로 하는 건 많은 분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지 않냐" 등의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만큼 예민한 문제라는 의미다.
심지어 거대 여당을 등에 업고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021년 9월 27일 "이제는 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라며 관련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육견업계와 동물단체가 팽팽히 맞서면서 입법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여대야소 대통령도 쉽게 추진하지 못한 일을 현직 대통령 부인이 주도하고 있는 꼴이다.
개 식용 종식과 관련해 특별법 입법이 추진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김 씨의 경우는 단순히 개 식용 반대 운동으로만 보기도 어렵다. 김 씨가 개 식용 반대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내기 약 일주일 전, 여당에서는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초당적 의원 모임'을 띄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원장은 지난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야 의원 44명이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초당적 의원 모임'을 발족했다"고 밝힌 뒤, 개 식용 종식 특별법을 '김건희법'으로 명명하며 "지난 4월 김건희 여사가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과 가진 비공개 오찬에서 '정부 임기 내에 개 식용을 종식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는 보도가 나온지 4개월 만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라고 자평했다.
여당 정책위의장이 개 식용 종식 특별법을 '김건희법'으로 이름지으며 초당적 기구를 띄우자 언론들이 이를 받아썼고, 김 씨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회견장에 깜짝 방문 형식으로 나타나 개 식용 종식을 국민들에게 '약속'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대통령실과 여당이 정교하게 연출한 그림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씨가 국정 개입에 이어 입법에까지 우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개 식용 종식 특별법을 시작으로 이른바 '김건희표' 사회 정책이나 입법들이 추가로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최근 자살과 관련해 발언한 것도 정책 추진이나 입법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추가 입법과 관련해 뚜렷한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아직 그런 모습은 보이지는 않는다"면서도 "김 씨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총선을 두고 더욱 가속화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심각한 권력 사유화와 국정농단으로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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