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초 6개월 39건, 최근 6개월 818건

해외순방·국빈접대 때 윤 대통령보다 많아

공식기록 가치보다 개인 미화에 초점 쏠려

노무현 사진사 "대통령실 직원들, 'VIP2'로 불러"

지난달 31일 순천만 국가정원박람회에 참석한 김건희 씨. 2023.3.31. 대통령실 사진뉴스
지난달 31일 순천만 국가정원박람회에 참석한 김건희 씨. 2023.3.31. 대통령실 사진뉴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방문한 모습을 기록한 대통령실의 사진이 '홍보 사유화' 논쟁을 촉발시켰다.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에 조성된 정원을 통해 생태 환경을 보호하고 시민의 생활 공간 속에 환경친화적인 공원을 조성한다는 박람회의 취지와는 무관하게 김건희 씨 자신의 홍보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서 김 씨는 열차에 탑승한 뒤 뒤를 돌아보고 있지만, 생태 환경이나 시민의 생활 공간이라는 메시지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국가의 공식기록인 대통령실 사진뉴스를 사유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실 사진은 역사의 기록이다. 이 사진이 도대체 어떠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면서 “품위는 지키지 못하더라도 수준은 지키길 바란다”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 전속사진사였던 장철영 씨는 지난 5일 MBC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대통령실에 있는 직원이 자기네들은 여사님이라고 안 하고 VIP2라고 얘기한다"고 주장했다.

갈수록 커지는 김건희 씨 사진 비중

대통령실의 국정 운영 과정에서 김건희 씨의 영향력이 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김 씨 개인을 미화하는 사진의 비중도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김건희 씨 단독 사진의 숫자는 올해 들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5월 10일 취임 이후 지난 4일까지 대통령실 사진뉴스에 등재된 사진 3958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윤석열 대통령 단독 사진은 총 2486건, 김건희 씨 단독 사진은 총 857건으로 나타났다. 단독 사진은 윤 대통령과 김 씨 가운데 한 사람만 등장하는 사진으로 두 사람 모두 등장하는 사진은 제외했다.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총 39건에 불과했던 김 씨 단독 사진은 지난해 11월 118건으로 급증하더니 12월 160건을 거쳐 지난 1월에는 260건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 1월 윤 대통령 단독 사진 개수 328건에 비하면 8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특히 초반 6개월(지난해 5~10월) 39건과 이후 6개월(지난해 11월~올해 4월)의 818건을 비교하면 20배가 넘는 증가세를 보였다.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 비상경제회의, 부처 업무보고, 외국 대사 신임장 수여 등 각종 공식 일정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실에서 김 씨 홍보에 대한 비중을 크게 늘리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해외 순방 시에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아세안, G20 참석차 동남아 순방에 나섰던 지난해 11월 해외 체류 기간 김 씨 단독 사진은 104건으로 윤 대통령(64건)보다 40건 더 많았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국빈 방문과 다보스 포럼에 참가했던 지난 1월 순방 기간에도 김 씨 단독 사진은 158건으로 윤 대통령(155건)보다 3건 더 많았다.

 

지난 1월 UAE 국빈 오찬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김건희 씨가 걸어 가고 있다. 뒤 쪽으로 박진 외교부 장관,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모습이 보인다. 2023.1.15. 대통령실 사진뉴스
지난 1월 UAE 국빈 오찬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김건희 씨가 걸어 가고 있다. 뒤 쪽으로 박진 외교부 장관,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모습이 보인다. 2023.1.15. 대통령실 사진뉴스

윤 대통령과 김 씨가 함께 참석한 행사에서 김 씨의 단독 사진 숫자가 더 많은 사례도 나타났다. 지난 1월 15일 UAE 국빈 오찬 행사장 스케치 사진은 윤 대통령보다 김 씨가 행사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구성이었다. 전체 18건의 사진 가운데 11건이 김 씨 단독 사진이었고 윤 대통령 단독 사진은 2건에 불과했다. 특히 김 씨가 박진 외교부 장관, 추경호 경제 부총리를 대동하고 가운데에서 걷고 있는 사진은 보는 이들에게 김 여사가 정권 실세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지난해 11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왕국 총리 방한 오찬 행사에 참석한 김건희 씨. 2022.11.18. 대통령실 사진뉴스
지난해 11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왕국 총리 방한 오찬 행사에 참석한 김건희 씨. 2022.11.18. 대통령실 사진뉴스

지난해 11월 18일 방한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왕국 총리의 공식 오찬 행사에서도 전체 18장의 사진 가운데 김 씨를 단독 조명한 사진이 4장으로 윤 대통령(2장)보다 많았다.

국정 홍보보다 김건희 유명인사(Celebrity) 만들기

대통령실의 사진뉴스는 역사의 기록이자 국정 홍보의 정수다. 한 장의 사진이 수백 개의 리포트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에 구도와 등장인물, 사회적 가치까지 고려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제작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김 씨를 다루는 사진 뉴스에서는 이러한 고려보다는 김 씨 개인을 돋보이게 하거나 주목받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지난 3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김건희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2023.3.24. 대통령실 사진뉴스
지난 3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김건희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2023.3.24. 대통령실 사진뉴스

문제가 된 순천만국가정원 관련 사진은 윤 대통령과 김 씨가 함께 참석한 행사였음에도 김 씨에만 초점을 맞춘 사진 22장을 별도로 게시했다. 지난달 24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는 김 씨가 눈물 흘리는 장면 7장을 연달아 게시하기도 했다. 행사의 맥락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김 씨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지난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스페인에서 김건희 씨가 한국인 식료품점 주인과 대화하고 있다. 2022.6.30. 대통령실 사진뉴스
지난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스페인에서 김건희 씨가 한국인 식료품점 주인과 대화하고 있다. 2022.6.30. 대통령실 사진뉴스

지난해 6월 30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스페인에서 한국인 식료품점에 간 사진도 현지를 방문한 어떠한 맥락과도 연결되지 않는 메시지가 없는 사진이다. 가게에 방문해 주인과 대화하는 장면은 대통령실 홍보 기능을 김 씨 신변잡기 수준으로 전락시킨 것이었다.

 

지난 1월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김건희 씨가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며 군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2023.1.11. 대통령실 사진뉴스
지난 1월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김건희 씨가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며 군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2023.1.11. 대통령실 사진뉴스

지난 1월 11일 김 씨가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자리는 유명 인사의 차원을 넘어선 대중정치인의 풍모가 엿보였다.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며 밝게 웃는 장면, 군중이 저마다 손에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 장면 등은 선거 유세 목적으로 방문한 대중정치인을 방불케 한다.

 

지난해 11월 김건희 씨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던 어린이를 안아주고 있다. 2022.11.12. 대통령실 사진뉴스
지난해 11월 김건희 씨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던 어린이를 안아주고 있다. 2022.11.12. 대통령실 사진뉴스

수혜자를 봉사 활동사진의 도구로 활용하는 ‘빈곤 포르노’

지난해 11월 12일 김 씨가 캄보디아를 방문해 심장질환 아동을 위로하면서 찍은 사진은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으로부터 ‘빈곤 포르노’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장 최고위원은 “세계적으로 의료 취약 계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빈곤 포르노에 대한 비판과 규제가 강력해지고 있다”라면서 “가난과 고통은 절대 구경거리가 아니다. 그 누구의 홍보 수단으로 사용돼서도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민영 고려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한적십자사에 기고한 글에서 ‘빈곤 포르노’를 선정적으로 비극과 빈곤을 부각한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상업적인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대통령실의 홍보 사진은 상업적 효과보다는 정치적 부각 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난해 12월 김건희 씨가 '찾아가는 성탄절 희망박스 나눔행사'에 참여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3.12.22. 대통령실 사진뉴스
지난해 12월 김건희 씨가 '찾아가는 성탄절 희망박스 나눔행사'에 참여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3.12.22. 대통령실 사진뉴스

김 씨가 캄보디아 이외의 장소에서 봉사 활동의 수혜자와 함께 사진 촬영에 나선 건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해 12월 22일 ‘찾아가는 성탄절 희망박스 나눔행사’에 참여한 김 씨의 동정을 전한 대통령실 사진뉴스 코너에는 한 할머니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된 건 물론 집 안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총 8장에 걸친 사진으로 이 할머니의 얼굴과 사생활이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설령 당사자가 동의했더라도 이러한 사진을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이 맞는지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난 3월 포항 죽도시장을 방문한 김건희 씨가 한 소녀를 안아 올리고 있다. 2023.3.3. 대통령실 사진뉴스
지난 3월 포항 죽도시장을 방문한 김건희 씨가 한 소녀를 안아 올리고 있다. 2023.3.3. 대통령실 사진뉴스

어린이를 안고 찍은 사진도 다수 등장한다. 지난 3월 3일 포항 죽도시장을 방문한 김 씨는 초등학생으로 추정되는 여자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영부인이 시장 등 현장을 찾아 민생을 살피는 건 문제가 될 일이 아니지만 이런 맥락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여자아이를 들어 올리는 장면이 과연 필요했는지는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12월 20일 한부모 가족 한마당행사에 참여한 김 씨가 한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 5장이 잇따라 게시된 사례도 있었다. 아이와 그 모친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기는 했지만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노출할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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