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59분 대통령'이지만 곤혹스런 질문은 회피
출입기자단과 '김떡순' 오찬 간담회가 회견 대체?
한담‧덕담 위주 이벤트였을 뿐…"김치찌개" 운운
신년회견 안 하고 출근길 문답 중단 '불통' 심화
'윤비어천가' 조선일보 골라 단독 인터뷰 꼼수도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신년 기자회견도, 출근길 문답도, 취임 1년 기자회견도 안 하는 '불통 대통령'.
회의 1시간 중 59분을 혼자 얘기할 정도로 수다스럽다는 일명 '59분 대통령'이 정작 기자회견은 악착같이 회피하고 있다. 병풍 같은 참모진이나 국무위원들과 달리 기자들에게선 곤혹스러운 질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통령 직선제 이래 최초로 취임 1년이 되도록 야당 지도부와 단 한 번도 회동하지 않는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윤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바깥에서 불편하고 듣기 거북한 훈수도 들어보라"고 적극 주문했지만 '나만 빼고'라는 말은 생략했던 것이다. 불통의 끝을 보여주는 그가 말끝마다 '소통'을 내세우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한 공허한 말장난이자 기만적인 유체이탈 화법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오는 10일 취임 1주년을 맞지만 별도 기자회견은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 출입기자는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일말의 지적은커녕 "대통령실 앞 '용산어린이정원' 개장을 앞두고 지난 2일 기자간담회를 가진 만큼 일주일 만에 비슷한 행사를 진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수긍한다는 듯이 설명했다.
그렇다면 김밥과 떡볶이, 순대 등을 함께 즐겼다는 출입기자단과의 '김떡순' 오찬 간담회가 취임 1년 기자회견을 대체할 만한 '비슷한' 성격이었던가. 물론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간의 국정 운영 평가와 향후 비전에 관해 파고들거나 예리한 질문, 비판적 추궁 같은 건 없었다. 대부분 한담과 덕담을 늘어놨을 뿐이다. 이런 식이다.
- 미국 가셔서 재미있는 얘기들 좀 전해 주십시오.
- '아메리칸 파이'를 어떻게 부르셨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 하버드대 갔을 때 질문이 날카롭지는 않으셨어요?
- 대통령께서 역대 대통령분들보다 취임 초기에 지방을 제일 많이 방문하셨는데, 그만큼 지역 발전에 대한 애정을 갖고 계신 것이라고 저희가 분석하고요. 지역을 그렇게 많이 강조하시는 특별한 이유 같은 것을 가지고 계신지요?
- 대구에서 시구하실 때도 연세나 그동안의 커리어에 비춰 봤을 때 공을 잘 던지신다 이런 평가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만찬 노래도 다들 놀랐지 않습니까? 그리고 의회 연설도 다들 놀라는 분들이 많을 테고, 그래서 '스타덤'이 그 전과 비교해서 생기신 것 같은지, 그다음에 스타덤을 실감하고 계시는지요?
- 넷플릭스는 첫 번째 일정이었는데 분위기는 어땠나요?
- 대통령님께서는 우리나라의 모든 고급정보를 다 보고 받으시고 다 아시잖아요? 1년 동안 하시면서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여러 가지 목소리들 중에 참고할 만한 것도 있지만 팩트 자체를 잘 몰라서 그런 것도 많을 텐데 고급 정보, 모든 정보를 다 알고 계시는 입장에서는 어떤 측면에서는 답답하신 것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사실대로 다 이야기할 수도 없고.
이런 한가롭고 낯간지러운 궁금증들이 '기자회견'을 대체할 수는 없다. 윤 대통령 역시 긴장감이라곤 조금도 없이 재담과 깨알지식(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냈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표현)을 마음껏 과시했다.
"기자실에만 있으면서 햇빛을 못 보면 비타민D가 부족해서 건강이 안 좋아집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 '파인그라스'라고 이름을 제가 붙였습니다. 여기에 소나무도 있고 잔디도 있길래, 근데 여기에서 여러분이 햇빛 쬐면서 김밥에 순대 이렇게 드시는 것을 보니까 여러분 아마 오늘 건강에 조금 더 좋아질 것입니다."
"우리 용산 스태프한테 취임 1주년을 맞아서 뭐를 했고 뭐를 했고 하는 그런 자화자찬의 취임 1주년은 절대 안 된다고 해 놔서, 여러분과 그냥 이렇게 맥주나 한잔하면서 얘기하는 그런 기자간담회면 모르겠는데, 무슨 성과 이래 가지고 자료를 쫙 주고서 잘난 척하는 그런 행사는 국민들 앞에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여러분이 지난 1년 많이 도와주셔가지고 굉장히 감사하고, 앞으로 나라를 더 잘 변화시킬 수 있게 여러분과 함께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용산 어린이정원 한번 보고 싶다고 기자분들이 그래서 만들어진 자리라면서요? 너무 많으면 대화하기도 어려우니까 조금씩 나눠 가지고 자리를 한번, 인원이 적어야 김치찌개도 끓이고 하지 않겠어요? 몇백 그릇을 끓이면 맛이 없잖아요. 여러분 고맙고, 햇볕 좀 많이 쐬십시오. 오늘 보기 좋습니다."
"2019년도에 '기생충'을 우리 식구와 보고 나오면서 이런 것은 엽기적인데 이런 것을 보자고 하느냐 이랬는데 오스카상을 몇 달 후에 받더라고요. 그때는 이해를 못했어요. 이번에 미국에 가서 테드 회장하고 얘기하면서 깨달았어요. '기생충'을 보세요. 못사는 사람, 잘사는 사람 다 있어요. 그러니까 스토리가 아주 매력적이라는 이야기예요."
연합뉴스는 취임 1년 기자회견을 안 한다는 해당 기사에서 "윤 대통령은 다만 기자들에게 '조금씩 나눠서 자리를 한번, 인원이 적어야 김치찌개도 끓이고 하지 않겠어요?'라며 소규모 간담회 등 지속적인 소통 의지를 나타냈다"고 전했다. 어떻게든 '지속적인 소통 의지'라고 갖다 붙이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의 맹목적 긍정 덕분에 윤 대통령은 별 부담 없이 '언론 패싱'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윤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대신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시간이 없어서" 새해 기자회견을 생략한 것으로 알려진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3시 30분부터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조선일보와 2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선일보는 이를 1월 2일자 신문 1면부터 5면에 걸쳐 보도했다. 기자회견에서 예상되는 껄끄러운 문답은 피하는 한편, 평소 지면을 낯 뜨거운 '윤비어천가'로 채우는 대표적 어용신문을 만만한 스피커로 선택함으로써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지난해 11월 21일 MBC 출입 기자의 '불미스러운 일'을 이유로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돌연 중단했던 윤 대통령은 이른바 3대 개혁 추진 등 국정 방향을 밝히는 취임 첫 신년사도 기자들 없이 준비된 원고만 읽으며 발표한 바 있다. 물론 별도의 질의응답은 없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를 넉 달가량 남기고 있던 지난해 1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이유로 회견을 취소했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년 1월 중 신년사 발표와 신년 기자회견을 별도로 진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4~2016년 세 차례 신년 기자회견에서 현안에 직접 답했으며 국정농단 사태로 직무가 정지된 2017년 1월 1일에는 회견 대신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신년 기자회견과 시기적으로 가까운 취임 1년 기자회견을 건너뛴 대통령들도 있지만, 둘 다 안 한 역대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 MB의 유산을 다각도로 계승해온 탓인지 윤 대통령은 이마저도 이 전 대통령을 따라 한 셈이다.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지난해 8월 17일 취임 100일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대통령실은 대신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나라가 이렇게 바뀌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배포하고, '바로 서는 대한민국을 위한 대통령의 약속'이라는 영상 5편을 유튜브 윤석열TV를 통해 공개하고, 국정홍보 영상을 송출하는 3D 전광판을 서울 시내 곳곳에 띄우며, KTV를 통해 특집 프로그램을 집중 방영하는 등 '자화자찬'에만 열중하고 있다.
"제가 언론인 여러분 앞에 자주 서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언론과의 소통이 궁극적으로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생각을 하고 앞으로도 민심을 가장 정확히 읽는 언론 가까이에서 제언도 쓴소리도 잘 경청하겠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큰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권력이 부패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국가와 사회의 중요 자산인 다양성 확보에도 언론의 자유는 매우 중요합니다."
윤 대통령이 당선되고 얼마 안 된 지난해 4월 6일 신문의날 기념 행사에 참석해서 했던 말이다. 그의 무수한 허언 중 빙산의 일각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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