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회 전 정부 말만 듣고 '준비 완료' '이상 무' 보도
'경제효과 6천억' …대통령 부부 화보사진 홍보도
파행 시작되자 정부 여당 '전 정권 탓' 주장 받아쓰기
'이제부터 정부가 챙긴다?' 민망한 윤 정부 구하기
“삼성 없었으면 어쩔 뻔” 낯부끄런 '삼성 찬양' 보도
전세계 150여개국 4만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한국을 방문한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국제적인 망신을 사고 중단됐다. 참가자들은 폭염에 의한 탈진, 더러운 화장실, 부실 급식, 코로나 감염, 의료진 부족, 편의점 바가지 요금에 성범죄까지 이어진 악몽을 겪었다. 잼버리는 ‘유쾌한 잔치’ ‘즐거운 놀이’라는 뜻이라는데, 한국 정부의 부실 준비·부실 관리로 전세계 청소년들에게 이번 잼버리는 ‘불쾌하고 괴로운 추억’으로 남게 된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과 BBC, 프랑스 르 피가로, 독일 포커스, 로이터통신, AP통신 등 해외 유명 언론들이 ‘국가적 수치’ ‘끔찍’ ‘악몽’ ‘사과해야’ 등의 표현으로 이번 새만금 잼버리를 보도했다. 비싼 돈을 들여 자녀를 한국에 보낸 해외 참가자 부모들이 항의하는 글도 SNS와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참가비 환불 소송을 벌이겠다는 부모도 등장했다.
국민들은 기가 막힐 뿐이다. 코로나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로 기억되는 한국에서 단지 정권이 바뀌자 일어난 일이라 더 그렇다. 1천억 원이 넘는 세금을 써가며 치른 국제행사가 결국 나라 망신시키고 끝나게 생겼다. 그렇다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기가 막혀 하는 국민을 대신해, 세금을 잘 못 쓴 정부에게 언론이 책임을 정확히 따져 물을 일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나라 망신시키는 동안 언론은 또 무얼 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정부의 잼버리 준비와 관리 상태를 사전에 제대로 감시하고 경고했는가? 행사 파행의 원인과 책임을 정확히 짚었는가? 수습 방안을 올바르게 제시했는가?
‘잼버리 준비 이상 무’ ‘경제효과 6천억’ 받아쓰기
국내 언론들은 이미 새만금 잼버리 대회 시작 전부터 무책임한 정부의 등 뒤에 올라탔다. 여러 언론들은 대회가 시작되기 직전 윤 정부의 ‘대회 준비 완료’ ‘준비 이상 없음’이라는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기했다.
“청소년들의 문화올림픽 새만금 잼버리 준비완료!”(KBS, 7.30), “이상민,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 찾아 현장 안전 점검”(YTN, 7.29), “전 세계 청소년 4만3000명 모이는 새만금 잼버리 준비 이상 무”(세계일보, 2023.7.25.), “보름도 남지 않은 새만금 잼버리 장마 직격탄…전북도 만반의 준비중”(전북일보, 7.19) 등의 기사다.
일부 언론, 특히 전북도민일보 등 지역언론에서는 폭염과 폭우 가능성, 기반시설 공사 부족을 지적한 적이 있긴 하다. 시민단체와 도 의회에서는 대회 준비 부실 우려 지적, 심지어 일정 축소나 대회 중단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언론은 대회 주최 측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 김현숙 여가부 장관, 한국스카우트연맹 관계자의 말만 듣고 ‘모든 준비가 차질 없이 완료되었다’는 기사를 쏟아낸 것이다.
개영식에 참석한 대통령 부부 화보 찍기에 매달렸고, ‘경제효과가 최대 6천억 원에 달한다’는 홍보성 기사를 그대로 보도했다. 취재를 통한 감시보다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관급 보도자료’ 받아쓰기가 더 우선이었던 것이다.
교묘한 ‘현 정권 책임 덮기’와 ‘전 정권 책임론’
개영 하루 만에 행사 파행의 실상이 드러나자 국내 언론들도 이를 보도하기 시작했지만, 참가자들의 SNS, 외신 보도, 행사 주최측의 발표에 주로 의존할 뿐 좀 더 자세하고 정확한 현장 취재 보도는 찾기 힘들었다.
자칫하면 수많은 청소년들의 건강과 안전이 위험에 빠질 상황이었지만, 그런 현장을 담은 영상과 참가자들의 인터뷰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자들의 현장 접근 봉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여 정부 발표만으로 현장 소식을 전하는 것은 기자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행사 파행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자 패닉에 빠진 정부와 여당이 ‘전 정권 책임론’, ‘지자체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윤석열 정부의 상습적인 ‘전 정권 탓’ 책임 회피를 언론은 다시 받아쓰기에 나선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전북의 부실 준비로 잼버리가 위기에 빠졌으니 이를 바로잡고 책임 묻겠다’는 국민의힘 주장이 여러 언론에 그대로 실렸다.
교묘한 왜곡을 통해 정부의 책임회피·책임전가를 강조한 언론도 있다. 문화일보 8월 7일자 “민주당 이원택 ‘잼버리 기반시설 구축, 문 정부가 했어야’” 기사다. 마치 민주당 의원도 이번 잼버리 파탄 책임이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처럼 보도한 기사다. 그러나 이 원택 민주당 의원 발언의 취지는 ‘문재인 정부가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부분은 평가할 필요가 있지만 폭염 대책, 생수 공급 등(행사 준비 부실)은 윤석열 정부 하에서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이었다. 발언 내용 일부를 잘라내 전체 맥락을 교묘하게 왜곡하는 못된 왜곡보도 관행의 사례다.
행사 파탄났는데 '이제부터 정부가 챙긴다?' 민망한 '윤정부 구하기'
‘전 정권 책임론’으로 행사 파탄의 책임을 정쟁화한 이른바 ‘친윤 언론’들은 윤석열 정부 구하기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조선일보 8월 5일자 “이제부터 정부가 챙긴다…잼버리 달려간 총리·장관들” 기사는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전 정부와 지자체가 잘못해서 파행 참사가 났지만, 이제는 윤석열 정부가 나서서 수습한다는 뜻이다. 이어진 조선일보 기사는 “윤 ‘잼버리에 한국 관광프로그램 긴급 추가’ 지시”, “새만금 잼버리서 코리아 잼버리로”, “새만금 떠났지만 잼버리는 계속된다” 등이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 당시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폄훼하고 추위와 노로바이러스 문제를 끄집어내 집요하게 정부의 행사 관리 허점을 물어뜯던 모습과는 대조된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 조직위원장은 여가부 장관, 행안부 장관, 문체부 장관,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 그리고 지역 국회의원이다. 윤 정부의 장관들은 취임 1년여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하다가 이제 와서 ‘이제부터 챙기겠다’고 하는 것인지, 파탄난 세계 야영대회가 도대체 어떻게 계속된다는 것인지 묻지 않는다.
머니투데이는 이미 파탄난 새만금 잼버리를 살리는 것이 윤석열 정부를 살리는 길이라고 보았던 것일까? 미국·영국 등 여러 나라가 야영지 철수를 결정하고 대회 중단 여론이 국내외에서 제기되었는데도 8월 4일부터 “잼버리 아이들, 밤에 시끄러울 정도로 재밌어”, “외국 대원들 ‘더위 적응, 한국 잼버리 재밌어’…어른들 ‘걱정’”, “활기 넘치는 잼버리장, 폭염에도 웃고 노래하는 대원들”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같은 시각 외신에서는 “잼버리 철수사태, 한국정부에 큰 타격”(영국 가디언), “국가적 수치: 한국에서 스카우트 잼버리가 악몽으로 변하다”(프랑스 르 피가로)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난데없는 ‘경찰특공대’ 사진, “삼성 없었으면 어쩔 뻔” 삼성 찬양 기사도
온열 탈진과 더러운 위생, 부족한 의료진 등 ‘망신 뉴스’가 외신에서 잇따라 터져 나올 때, 국내 한 매체는 “경찰특공대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이상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사진 기사를 포털에 투척했다.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특공대원들이 장갑차를 세워놓고 새만금 잼버리 대회 현장을 지키고 있다는 내용이다. 폭염에 지쳐 쓰러진 전세계 4만여 청소년 스카우트들이 한국 정부가 보낸 경찰특공대원들 덕에 ‘이상 없이’ 무사했다는 메시지일까?
더 낯부끄러운 기사도 있다. 8월 7일자 한 경제신문 “삼성 없었으면 어쩔 뻔…난장판 잼버리 구원투수로 등판”이라는 기사다. 부제는 “기업 지원 줄이어…때마다 삼성이 뒷수습”이다.
정부가 잼버리 파탄 수습에 나서자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이 현장에 냉수와 의료지원을 하겠다고 나섰다는 기사다. 고마운 일이다. 대기업들의 지원은 정부의 부실 준비로 악몽같은 야영장 생활을 하고 있었을 스카우트들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에 대한 반응은 ‘땡큐 삼성’보다는 ‘낯부끄럽다’가 더 많다. 이렇게 노골적인 ‘삼성 찬양’은 자주 보기 힘든 기사다.
오늘날 한국 언론이 신뢰를 잃고 조롱받는 이유는 특정 정치세력과 자본권력의 ‘기관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많다. 언론의 윤석열 정부 구하기와 삼성 찬양은 이번 새만금 잼버리 국제 망신만큼이나 부끄러운 우리 언론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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