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시절 이동관 대변인 'VIP 격려 필요 언론인' 선정
중앙 박보균, 동아 배인준, 서울 이동화, 문화 이병규
'보수·우파 대변, 대통령 기사 부각, 보도 적극 협조'
'언론 마사지 전문가' 이동관은 방통위원장 후보에
'권력비판' 본령 버리고 '정권홍보'…부끄러운 민낯
언론인은 비판을 본업으로 한다. 비판은 언론인의 숙명이라, 욕을 먹더라도 언론인들은 무언가 비판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비판의 주요 대상, 최종 대상은 권력이다. 권력을 비판할 자유와 권한은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총칼을 휘두른 권력을 비판하다 해고되고 감옥 간 언론인들에게 시민들은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반대로, 권력에게 아부해 칭찬받고 상 받는 언론인을 우리는 부끄러워한다. 정상적인 언론인이라면 스스로도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실이 정권에 협조적인 언론인들을 별도로 선정하고 대통령이 이들에게 ‘전화격려’를 해줄 것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최근 공개한 ‘VIP 전화격려 필요 언론인’ 제목의 청와대 대변인실 작성 보고서를 보면, 이동관 대변인실은 정권 첫해인 2009년 7~8월 ‘VIP(대통령)가 전화로 칭찬·격려해 줄 언론인’으로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중앙일보 박보균 편집인, 동아일보 배인준 논설주간, 서울신문 이동화 사장, 문화일보 이병규 사장 등이 선정됐다.
이 언론인들이 ‘VIP 격려 대상’으로 선정된 사유로는 △보수·우파 목소리를 충실 대변 △정부 정책에 지지와 조언 △대통령에 우호적 스탠스 △좌파정권의 잔재 청산 주력 등이 기재되어있다. ‘대통령 동정과 정부 시책에 대한 기사를 부각시키거나 기획기사 및 사설 보도 협조 요청에 적극 호응했다’는 언론인도 있다.
요약하면, 정권에 대한 비판은커녕 누구보다 적극 협조해준 언론인들이니 대통령이 전화로 칭찬·격려를 해 주어야한다는 보고서다. 각 보고서 뒤에는 선정 사유를 입증해주는 각 언론인들이 칼럼이나 기사도 첨부되어 있다.
‘격려 대상’ 언론인 각각의 선정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박보균 중앙일보 편집인의 경우 ‘편집국장 시절에는 친박성향으로 분류되었으나 대기자를 거치며 VIP(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동조·지지로 성향 변화’ ‘중앙선데이 세상탐사 칼럼을 통해 VIP 국정운영과 정부 정책에 대해 지지와 고언을 해왔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동아일보 배인준 논설주간은 ‘황oo 논설실장과 함께 동아일보 논조를 이끌고 있는 인물, 기명 칼럼 및 사설을 통해 균형잡힌 시각으로 VIP 국정운영, 정부 정책에 대해 조언과 고언’을 한 것으로 적혀있다. 이런 선정사유를 뒷받침해주기 위해 첨부된 배 논설주간의 사설로는 ‘의회민주주의 짓밟는 언론노조의 국회난입’ ‘언소주(언론소비자주권행동) 행패에 기업도 소비자도 굴복 않는다’ 등이 있다.
서울신문 이동화 사장에게는 ‘취임 이후 정부투자 매체로서의 정체성 확립 및 지면 건전화를 위한 노고를 치하, 지속적인 노력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한 뒤 ‘10년간 경영·편집 전반에 뿌리내린 구 좌파정권의 잔재 청산에 주력 – 노00 사장 측근 및 문제 인사를 비편집부서로 발령, 현업에서 배제’했다는 ‘공(功)’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 또 ‘좌파세력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논조 시정을 위해 노력’했다고도 덧붙였다.
이동관 대변인실은 ‘문화일보가 보수우파의 목소리를 충실히 대변한다’고 칭찬하면서, ‘특히 이병규 사장 등 경영진과 편집진은 VIP에 대해 우호적인 스탠스, VIP 동정·정부 시책에 대한 기사를 부각시키거나 기획기사 및 사설 보도 협조 요청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응’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공영방송 장악과 비판언론 탄압으로 악명 높았던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실이 한편으론 정권에 협조적이고 호의적인 언론인들을 따로 분류하고 관리했다는 사실을, 놀라운 일이라고 해야 할지 놀랍지도 않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가 얼마전 자신의 입으로 말한 ‘특정 진영과 정파의 이해에 바탕한 논리, 주장을 전달하는 언론, 즉 언론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공산당 기관지’를 골라서 대통령에게 격려하라고 보고한 셈 아닌가?
언론을 민주주의 발전과 권력의 견제 기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 유지의 도구로 보는 언론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권을 잡으면 한편으로 언론탄압, 다른 한편으론 권언유착으로 언론을 유린하고 여론을 호도하던 우리나라 지배 세력 – 지금의 ‘국민의힘’으로 불리는 정당과 그 지지세력 –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이 일을 주도한 이동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15년여 만에 다시 나타나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할 차기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내정된 사실은 더 참담하다. 언론 ‘마사지’ 전문가, 언론장악의 달인다운 모습이다.
‘영광스럽게’ 대통령 격려 대상으로 선정된 언론인들의 면면과 선정 사유를 보면 부끄러움은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한국의 이른바 ‘주류 매체’ 혹은 ‘주요 종합일간지’의 편집인, 논설주간, 사장 등 고위 간부급 이상 언론인들이다. 이 가운데는 윤석열 정부의 언론 분야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의 현직 장관이 된 분도 있다. 이런 주류 언론사의 고위급 언론인들 아래서 후배 기자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권력 비판? 할 말은 하는 신문? 중립·객관·공정을 지키는 언론? 시민들이 위임한 권력 비판이라는 고귀한 언론의 본령 앞에서, 차라리 입을 다물어 주길 바란다. 언론 불신을 넘어 언론을 회피하고 있는 시민들은 이제 놀라움도, 실망도 아닌, 그저 궁금할 뿐이다. ‘베리 임포턴트 퍼슨(very important person)’, VIP에게서 칭찬과 격려를 받으신 언론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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