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7월 27일은 한반도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국가보훈처는 22개 유엔 참전국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제기념식을 개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70년이 되도록 분단극복은커녕 전쟁을 법적으로 끝내지 못하고 적대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념하기보다 부끄러워해야 할 날일지 모른다.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앞둔 지난 6월 28일, 자유총연맹 창립기념식에서 윤 대통령은 뜬금없이 종전선언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세우며, "북한이 다시 침략해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다”며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한 가짜평화 주장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종전선언 발언은 지난 정부의 정책 비판을 넘어 사실을 왜곡한 가짜뉴스이자 근거 없는 괴담이다. 윤석열은 대통령 후보 시절에도 종전선언에 반대했지만, 그때는 '반국가적'이 아니라 '시기상조'라는 점을 들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단정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다.

이것은 대통령의 발언 이튿날,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가 나서서 "지난 정부나 특정 정치세력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며 "윤 대통령 메시지는 일관되지만 메시지는 시간과 장소, 상황(TPO)에 따라 뉘앙스는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라며 무마를 시도했다. 대통령실이 스스로 윤 대통령의 발언이 잘못됐음을 고백한 것이다.

평화체제에 무관심한 윤석열 정부

정전협정, 정전체제의 정전(military armistice)은 '적대행위의 잠정적, 일시적 중지'를 의미한다. 한·미는 물론 북한도 정전협정을 '정치회담을 통해 전쟁을 법적으로 완전히 종결하기 이전에 군사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적대행위를 중지시키는 협정'에 불과하며 정전체제를 '기술적으로(technically)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보고 있다.

한국전쟁을 법적으로 완전히 종결하기 위해서는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공고한 평화 상태'라는 표현으로 평화체제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4자회담에서 본격적으로 평화체제 구축 방안이 논의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핵 문제가 제기되면서 평화체제 문제가 복잡해졌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는 뿌리가 다른 문제지만, 2005년 7월 북한 외무성이 핵무기 포기 조건으로 평화보장체제의 제공을 요구하면서 양자가 연계되어 추진되었다. 마침내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 포기 대가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하였다.

헌법 제4조에 규정된 통일을 추구하기 위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이다.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과제로 들어가 있고,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도 포함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평화체제를 '평화공존을 지향하는 신평화구조'로 바꾸었으며, 윤석열 정부는 평화체제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 등 헌법이 부여한 책무조차 소홀히 하고 있다.

종전선언 = 유엔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는 가짜뉴스

종전선언의 공식 명칭은 ‘종전을 위한 평화선언’이다. 존 볼턴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일주일 전까지 종전선언을 '언론 점수를 딸 기회'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미 정부 당국자도 "북한이 원하는 관계 개선의 한 가지 조치인 종전선언을 상징적이고 가역적인 성격으로 끝까지 쥐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평가한 바 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전에 볼턴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종전선언의 대가로 핵·미사일 신고를 요구해야 한다고 문턱을 높인 탓에 '6‧12 북미 공동성명'에 종전선언이 결국 포함되지 못했다. 그 대신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추후에 종전선언을 논의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인 2019년 2월 26일, 미국 VOX뉴스는 다음과 같이 종전선언을 담은 제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 초안을 공개했다. “북‧미는 한국전쟁을 상징적으로 끝내기 위해 평화선언에 잠정 타결하였다(the two sides have reached a tentative deal on a 'peace declaration' symbolically ending the war).”

미 의회에서도 종전선언 추진 움직임이 있었다. 하원(2019.7)과 상원(2019.9)은 "종전선언의 추진을 촉구"하는 내용이 포함된 '2020 국방수권법'을 채택했다. 반국가세력이 종전선언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미 행정부와 의회 모두 종전선언에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종전선언이 채택되면 유엔사 해체나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진다는 것도 가짜뉴스다. 법적 구속력이 없어 종전선언이 채택돼도 정전협정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밥 우드워드 기자의 저서 <격노>에 따르면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이나 친서를 통해 주한미군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거론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만, 종전선언이 채택될 경우 유엔사 해체나 한미동맹 흔들기에 이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없지 않았다. 이는 종전선언의 법적 성격을 분명히 해 두면 된다. '빈 협약'(1969) 제2조 제1항 (a)는 조약에 대해 "국가 간에 서면 형식으로 체결되고 국제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국제적 합의이다.(…)그 명칭을 어떻게 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효력을 발생하기 위한 요식 절차를 명시하지 않으면 '조약에 준하는 성격'을 가질 수 없으며 실제로 국내의 비준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법적 효력이 생기지 않는다.

종전선언은 비핵화 첫 조치이자 평화체제 입구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은 해상경계선과 외국군 철수 문제에 부딪쳐 진전되지 못했다. 여기에 북핵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복잡해졌다. 이 때문에 단번에 평화협정으로 가기보다 비핵화 프로세스를 감안한 잠정협정의 중간과정이 필요했다. 외국사례를 보더라도 '시나이협정Ⅰ·Ⅱ'이나 '캠프데이비드 협약' 등 잠정협정을 거쳐 평화협정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잠정협정은 종전선언 구상으로 나타났다.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폐기 단계 진입을 촉진하기 위해, 기존 논의되던 '잠정협정→평화협정'의 2단계 구상을 활용해 ‘잠정협정’이 ‘종전선언’으로 바뀌어 제기됐다. 그리하여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10·4 남북정상선언’(2007)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6자회담 9·19공동성명 채택 이후 북한 핵시설의 가동중단·봉인에 이어 불능화·신고를 마무리하고 최종 단계인 폐기·검증 협상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북·미 수교나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안전보장이 비핵화 이후로 미뤄지자, 북한은 안전보장도 받지 못한 채 핵능력만 노출되지 않나 하는 안보 우려 때문에 폐기 단계 진입을 주저하고 있었다.

김정일이 핵 폐기 단계에 진입하는 결단을 내리도록 하기 위해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안전보장 방안으로 나온 것이 종전선언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치적 차원의 종전선언을 채택하면 완전한 비핵화까지 체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은 종전선언과 함께 비핵화에 착수하고, 비핵화 완료와 동시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2단계 방안인 것이다.

2007년 남북정상이 합의했던 종전선언 구상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부활했다. '4·27 판문점 선언'은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한다"고 합의하였고,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관련국들 사이에서 실행되고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종전선언 채택과 비핵화 착수의 선후 문제를 놓고 미국과 북한이 이견을 보였고,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종전선언을 '신뢰조성을 위한 선차적 요소'라고 주장하며 적대정책 포기를 협상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그 뒤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재개되는 가운데, 종전선언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입장 차이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은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적대정책 철회의 방안으로 대북 제재 완화와 함께 종전선언을 다시 꺼내들었다. 2020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의 시작은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밝혔다. 이 때 나온 '종전선언'은 비핵화를 위한 첫 상응조치였던 기존 입장과 달리,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전제조건 충족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종전선언을 비핵화 상응조치가 아니라 신뢰조성 조치로 격하시키는 데 불만을 드러냈다. 미국은 비핵화 협상의 재개를 위해 종전선언 카드를 써버릴 경우, 북한이 단계별 비핵화의 상응조치로 유엔사나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한·미가 대북 전략구상에선 근본적으로 일치"한다면서도 "종전선언의 정확한 순서와 시기, 혹은 조건 등에서 다소 시각차가 있다"고 밝혔던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임을 주장하며 일체의 비핵화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현시점에 종전선언을 재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의미도 없다. 그렇다고 한반도 비핵화의 필요성에서 나온 종전선언의 유용성이나 협상전략 상의 발언을 꼬투리 잡아 비난을 퍼붓는 것은 국가지도자가 취할 자세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가짜뉴스와 괴담을 퍼뜨리기보다 통일로 가기 위한 '평화 프로세스' 복원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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