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 결론 무조건 따르라는 것이야말로 반과학적

과학의 근간과 본질은 끊임없는 반증의 제시 허용

과학이 아닌 유사신앙, 맹종적 미신이라 해야 마땅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문제가 없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보고서에 대해 "과학적 결론이니 무조건 따르라"는 한국 정부와 언론이 절대진리처럼 내세우고 있는 '과학'은 얼마나 '과학적'인가. 아니, 그 이전에 그 과학은 과연 '과학'인 것인가. 

정부는 IAEA의 결론에 대해 반론이나 의문을 제기하면 괴담이라며 유언비어 대하듯 단속령을 내리고, 가짜뉴스 신고 센터까지 설치해 처벌하려고까지 하며 다수의 언론은 이를 충실히 보도하면서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결론이니 오로지 믿으라는 바로 그 주장이야말로 사실은 진짜 '괴담'이다.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7.7 연합뉴스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7.7 연합뉴스

IAEA의 최종보고서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 IAEA라는 기구의 성격 자체가 제기하는 한계, 그로부터 비롯되는 이번 보고서 결론에 대한 의문이 크지만 그런 점들은 일단 차치하자. 다만 정부와 언론이 떠받드는 ‘과학’이니 '과학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만 따져보자. 

'과학'이라는 것에 대한 권위의 부여는 근대 이후 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이지만 '과학'이라는 말이 씌우는 주술과 후광은 한국에서 특히 완강한 수준이다. 이는 과학 중에서도 특히 과학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자연과학이 이른바 '근대화'와 함께 서구로부터 유입돼 온 한국의 최근세기 역사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과학'은 철저히 전문가적 영역이라는 믿음과 함께 한국인들에게 오랫동안 굳어진 결과이다. 특히 이번 후쿠시마 오염수 사안에서 이는 더욱 맹렬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종보고서 발표에 대해 여당의 대변인은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는데, 이 ‘겸허’하게 라는 말부터가 '과학'이라는 이름의 권위 앞에선 그저 고개를 숙여야 온당하다는 듯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자 국민들에게 그같은 순응을 과학에 대한 바른 태도인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과학적'이라는 말을 빌려 되돌려 준다면 이같은 인식이나 행태들은 과학적인 것이 아님은 물론 오히려 지극히 ‘반과학적’이다. 무엇보다 "과학자들이 작성한 최종보고서를 믿지 않으면 문명국가가 아니다"라는 무모한 주장이 기반하는 과학관은 실은 과학의 본질적 성격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과학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부정하는 반과학적인 것이며, '문명적'이기는커녕 오히려 ‘과학 문맹(文盲)’적인 태도다.

과학은 무엇보다 끊임없는 사실 검증의 과정이다. 반박과 반증 제시의 기회가 열려 있지 않다면, 과학적 과정이랄 수 없다.  하나의 사실에 대한 끊임없는 가설과 이설(異說) 제기를 통해 처음에는 가설이었던 것이 이론으로, 확증적인 진리로 더욱 근접해가는 과정이 곧 과학의 과정이다. 어떠한 과학적 사실도 그것은 잠정적 사실, 유보적 사실이며 임시적 진리일 뿐이다. 항상적으로 확정된 진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다만 유력한 진리, 유력한 과학적 사실이 있을 뿐이다. 좀 더 진실에 가까운 사실, 진리에 가까운 임시적 진리가 있을 뿐이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가 '반증 가능성'을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구획기준으로 삼은 것에 그같은 과학의 본질적 요건이 담겨 있다.

그것이 과학에 요구되는 절차에서의 '과학적인 것'이며, 이는 단지 과정적 절차로서뿐만 아니라 그 과정과 절차 자체가 사실은 곧 과학이며 과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근간이며 본질이다.

이번 최종보고서가 과학적인 요건에서 결여한 또 다른 결함은 최종보고서 작성에 관여했다고 IAEA가 주장하는 이들이 제대로 '과학자로서 참여했느냐'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11개 국의 과학자들이 1년에 서너 차례 며칠씩 회의와 참관에 참여해 보고서를 검토한 것을 과연 '면밀한 과학적 검증'이라고 볼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인정하더라도 그러나 그것은 '부분의 과학'일 뿐이다. 즉 원자력 분야 학자들이라는 한 분과의 과학에 불과한 과학자들일 뿐이다. 원전 오염수의 대량 해양 투기 시 해양 및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종합적이고 다층적 분석을 해낼 수 없는 이들에 의한 반쪽의 과학 검증에 지나지 않는다. 원전 과학을 넘어선 생물학, 의학 등의 통합적 검증, 현재의 영향을 넘어선 미래의 장기적 영향까지를 포괄하는 분석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것이었다. 이는 '일부의 과학적 사실(주장)로써 과학 전체의 결론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으로서는 결격이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정부와 한국언론 다수가 보이고 있는 모습은 위와 같은 이유들로 과학이라기보다는 신앙에 가깝다고 해야 옳다. 그것도 종교다운 종교가 아니라 맹목적 신앙에 불과한 것이다. 신앙과 종교에서도 '의심을 통한 믿음'이라야 높은 가르침으로서의 '종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저급한 신앙일 뿐이다. 

정부와 언론은 과학의 영역에 정치가 개입하지 말라고 하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과학적 사실은 발생하는 것이면서 또한 발견되고 해석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절대 유일한 해석이 있을 순 없다. 이 점에서 과학은 정치와 근본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과학에 대한 정치의 개입을 끊으려는, 불가능한 봉쇄와 차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제대로 해석하는 것, 그리고 그 사실과 해석은 일정한 한계 내에서의 사실이며 해석일 뿐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IAEA의 최종보고서에 과학적인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부의 과학적인 사실'이며 '잠정적 사실'일 뿐인 그 결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 대해 정치의 불순한 개입인 듯 내몬다면, 실은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정치적인' 주장이며 태도인 것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참된 의미의 정치가 객관적으로 갖춰야 할 것, 무엇보다 의견과 의견 간의 논의와 경쟁이라는 정치의 본질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가 아닌 비(非)정치이며, 비정치를 넘어 정치를 막는 반(反)정치가 될 뿐이다. 

이는 그와 같은 논리를 펴는 다수의 언론들이 거의 같은 이유에서 언론 아닌 비(非)언론, 비언론을 넘어 반(反)언론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보도에서 한국의 언론은 다른 어느 사안들보다 더욱 뚜렷하게 이같은 정치의 종교화와 유사한 '언론의 종교화' 양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와 유력언론들이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에 과학적이라는 수식을 붙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신앙의 이름으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확히는 한국적인 신앙, '신앙이라는 이름의 미신으로'라거나 '맹목적 신앙의 이름으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는 정부와 언론에 의한 과학이라는 이름의 반(反)과학, 유사신앙에 대한 진짜 과학을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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