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의 '문제없다' 결론, 낭보처럼 전하는 신문들

'100만 유로 뇌물설' 등엔 전혀 질문 던지지 않아

의혹 검증 노력 안 보이는 한겨레, 양비론만 반복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사실상 '승인'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보고서 결론을 전하는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온통 환영 일색이다.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 일본 정부, 한국 정부와 거의 한몸이 돼서 그에 반대하거나 위험성을 제기했던 이들과 마치 전쟁을 치르듯 보도해왔던 이들 신문에게 IAEA의 결론은 승전보와도 같은 소식인 듯하다. 소리 없는 환호성이 들리는 듯한 이들 신문의 지면에는 '경축!'이라는 플래카드가 함께 나붙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조선일보의 <IAEA "일본 오염수 방류 문제 없다"> 중앙일보의 <"후쿠시마 방류, 국제기준 적합">이라는 대문짝 제목을 위시해서 5일자 이들 신문의 기사들의 내용은 그간의 논지를 감안하면 예상된 반응이다. 지면에 희색만면한 표정이 거의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이들 언론에는 오염수가 문제가 없는 것은 물론 '생명수'라도 되는 듯하다. '폐수 투기 이상무' 결정을 학수고대한 것 같은 논지이며 제목이다.

도쿄로부터의 '낭보'를 전하는 소식과 함께 실린 것은 "이제 최종 판결이 내려졌으니 더 이상 질문 따위는 하지 말라"는 훈계이며 경고다. 불안감과 의혹을 제기하는 얘기들은 '괴담'으로 몰겠다는 엄포다.

조선일보 사설은 "특히 민주당이 총력을 기울여 바닷물과 수산물 오염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어 국민 불안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면서 야당 때문에 국민이 불안해한다고 지적하고는 "국민은 과학적 설명과 괴담성 선동을 혼동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야당으로 인한 불안, 괴담과 선동에 빠지지 말라는 기세등등이 보인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는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의 발표를 4일부터 속보로 보내오면서 "2년간에 걸친 평가" "적합성은 확실하고 기술적 관점에서 신뢰할 수 있으며 이번 보고서는 '과학적'으로 답을 낸 것이다"는 말을 그대로 중계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원자력 문제에 관한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IAEA의 안전성 평가를 못 믿겠다는 야당의 태도는 무책임하다"라는 비판과 함께 "그렇다고 야당 주장을 ‘괴담’이라고 몰아붙이며 수산시장 수조의 물까지 먹는 여당의 대응 자세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라며 여당도 꾸짖고 있는데, 이런 정도의 '억지 균형'이나마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4일 기자회견에는 수백 명의 기자들이 있었지만 100만 유로 이상의 뇌물성 자금이 오고갔으며 사전에 일본 정부의 요구에 맞게 최종보고서가 수정됐다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더탐사의 구체적 의혹 제기에 대해 묻는 질문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특히 수십 명의 일본 주재 한국 특파원들이 기자회견장에 있었지만 단 한 명도 그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질문을 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성역이나 위험물이어서 감히 하지 못하거나 폭탄처럼 터질 게 두려워 묻지 못한 것인가.

 

 4일 일본 도쿄의 일본기자클럽에서, 이날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에 관한 IAEA 최종보고서를 발표한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7.04. EPA 연합뉴스
 4일 일본 도쿄의 일본기자클럽에서, 이날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에 관한 IAEA 최종보고서를 발표한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7.04. EPA 연합뉴스

도쿄 기자회견 몇 시간 전에 서울에서 민들레와 더탐사의 기자들이 외신들을 상대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그 같은 의혹에 대해 질문을 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지만 끝내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그 질문은 기자회견 동안 질문 기회를 얻지 못한 더탐사 권지연 기자에 의해서 회견이 끝난 뒤에야 이뤄졌다. 권 기자가 회견장을 나서는 그로시를 뒤쫓아 경호원들의 방해 속에서 등 뒤로 질문을 던진 것이 의혹을 추궁하는 유일한 질문이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에 대한 한국언론의 보도는 많은 국민들에게 이제는 실망을 넘어 의문으로, 의문을 넘어 마치 초현실적 풍경을 보는 듯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원전 오염수보다 더 오염된 것이 한국언론이라고 해야 할 수밖에 없다.

오염수 의혹은 이제 '언론에 대한 의혹'이 되고 있다. 기자회견장의 한국 기자들의 질문하지 않는 모습은 언론의 존재로써 오히려 언론의 부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에 다름아니다.

일본 정부가 범하려고 하고, 한국 정부가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는 '핵폐수 투기 강행'은 일본 자국민은 물론, 이웃나라인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 나아가 인류 전체에 대한 국제적 비행, 최소한 비행이 될 가능성이 적잖은 사안이다. 인류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유린하는 행위이다. 현재의 인간과 생물계뿐만 아니라 후세에까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은 행위다. 게다가 오염수 투기와 관련된 검증 과정에서 거액의 대가성 돈이 오갔다는 심각한 의혹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기된 상황이다. 이런 사안에서 한국 언론이 보이고 있는 관대함과 외면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사건과 사안들에서 사소한 의혹에 대해 머리카락 한 올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내려고 하는 한국언론의 집요함, 사냥꾼 기질은 어디로 갔는가.

이른바 '보수' 매체들에 대해서야 두말할 나위 없지만 한겨레는 어떤가. 한겨레의 보도는 조선, 중앙 등과는 다른 측면에서 의문을 낳는다. 한겨레는 4일자 지면에서 '일 오염수 방류 보증서 쥐여준 IAEA'라고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의혹을 검증하려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자회견장에서 그에 대해 질문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한겨레의 지면에서는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일본 정부가 최종보고서를 사전에 입수했으며 조율했다'는 의혹에 대해 따지는 보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신문은 IAEA의 최종보고서에 대한 여야의 반응을 전하면서 각각 ‘아전인수식 공방전’에 나섰다고 쓰고 있다. 여당이 “이제 괴담 정치를 중단하라”고 주장한 것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이 국제원자력기구 보고서를 '핵폐수 안전성 검증을 못한 깡통 보고서'라고 비판한 것을 나란히 세우면서 야당이 최종보고서를 '깎아내리는 것'이 소모적인 정쟁을 벌이는 듯이 쓰고 있다. "하지만 일본 국내와 국제사회의 반대 여론과 불신이 여전히 깊어 방류 뒤에도 갈등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해 방류를 벌써 기정사실화하고 있기도 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긴 하지만 적당한 비판을 하는 정도로, 의혹의 진상을 파헤치는 작업도 적당한 정도로 하겠다는 것인가. '적당한 비판' '적당한 진실'이라는 새로운 원칙을 세운 것인가.

일본과 윤석열 정부, IAEA의 위험무모한 행위를 조선일보 등 한국의 이른바 '보수' 언론이 필사적으로 돕고 있는 가운데, 이들 언론을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돕는 또 다른 한국언론들이 '검은돈 수뢰 의혹'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는 IAEA 사무총장의 7일 방한을 마치 개선장군의 행차로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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