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속 태풍' 무장 반란…푸틴 미래에 관심 집중

미국‧유럽 언론들 "푸틴 약점 노출…리더십 타격"

중국 관영언론 "푸틴, 반란 정리…강력한 억제력"

 

러시아 군 수뇌부를 겨냥해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24일(현지시간) 점령 중이던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 준비를 하고 있다.  2023.06.25. [EPA=연합뉴스]
러시아 군 수뇌부를 겨냥해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24일(현지시간) 점령 중이던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 준비를 하고 있다.  2023.06.25. [EPA=연합뉴스]

러시아 용병 그룹의 무장 반란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하루가 지났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끈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수도 모스크바 200㎞까지 진격해 러시아 군과의 유혈 충돌이 우려됐으나 결정적 순간에 프리고진이 철수에 동의하면서 막을 내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4일 TV 연설을 통해 "등에 칼을 찔렸다" "반역자"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공언하고 프리고진도 러시아 군 수뇌부에 대한 응징을 호언장담했던 점을 감안하면 싱거울 만큼 극적인 반전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푸틴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심복인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반란을 접도록 프리고진을 설득했다. 벨라루스로 가는 것을 조건으로 프리고진과 반란에 가담한 바그너 용병들을 일절 처벌하지 않고 신변안전을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을 돌린 경위에 대해 프리고진은 이날 오디오 메시지를 통해 러시아인끼리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유혈사태를 피하는 게 책임자 처벌보다 중요했다"고 말했다. 중재를 맡은 벨라루스 대통령실도 같은 설명을 내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9월 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러·중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직전 '한계가 없는 협력'을 다짐했다.  2022.9.16 EPA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9월 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러·중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직전 '한계가 없는 협력'을 다짐했다.  2022.9.16 EPA연합뉴스 

'찻잔 속 태풍' 무장 반란…푸틴 미래에 관심 집중

세계의 관심은 이번 사태가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에 주는 영향에 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그 영향의 정도는 반란을 주도했던 프리고진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프리고진 자신 외엔 다들 몰랐던 사태 초기에는 서방 언론 위주로 푸틴을 직접 겨냥한 '무장 쿠데타' 가능성도 제기했으나 금방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프리고진의 '과녁'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러시아 군 수뇌부였다. 푸틴에게 경질을 요구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작년 2월 '특별군사작전'이란 이름 아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 초기부터 프리고진은 쇼이구 장관을 비롯한 러시아 군 수뇌부와 심한 갈등을 빚어왔다.

공공연히 불만도 표출했다. 국방부가 의도적으로 식량과 탄약 등 물자 공급을 해주지 않고, 용병들이 최전선에서 희생을 감수하면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지원을 해야 할 러시아군의 진격은 더디고 심지어 자신들의 전공마저 가로챘다는 게 프리고진의 주장이다.

정규군과 용병 간 갈등이 증폭되자 쇼이구 장관은 최근 모든 비정규군에 국방부와 정식 계약을 맺도록 결정했다. 프리고진이 거부하자 러시아 국방부는 대신 람잔 카디로프가 이끄는 체첸 특수부대 아흐마트와 용병 계약을 했고 푸틴 대통령도 쇼이구에 힘을 실어주었다.

게다가 프리고진의 주장에 따르면,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에 있는 바그너 그룹의 후방 야전 캠프를 미사일과 헬기, 포 등으로 공격했다고 한다. 이것이 그가 무장 반란을 감행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UPI 연합뉴스 자료 사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UPI 연합뉴스 자료 사진]

미국‧유럽 언론들 "푸틴 체제 균열…리더십 타격"

이번 사태를 두고,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언론들은 푸틴이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고 통제력을 상실할 위험에 처했다는 관측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사태 초기에 미국 뉴욕타임스는 1999년 12월 31일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임명된 이후 푸틴 대통령이 이처럼 극적인 도전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고 했고, CNN도 "푸틴이 그동안 유지해 온 독재 체제의 궁극적 장점인 완전한 통제력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프리고진이 철수한 후에도 서방 언론의 논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가까스로 넘겼지만 푸틴 체제에 균열은 시작됐고 또다른 위기가 촉발될 공산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워싱턴포스트는 취약함을 들킨 푸틴이 러시아 엘리트들이나 러시아 내 체첸공화국, 타타르공화국 등의 지도자들로부터 도전받을 수 있다고 봤고, 월스트리트저널도 이번 사태가 푸틴 대통령을 상대로 한 추가적인 음모의 가능성을 높였다고 썼다.

영국 더타임스는 푸틴이 전례 없는 굴욕을 겪었다고 했고, 독일 슈피겔도 푸틴이 '배신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되면서 최대 굴욕에 직면했고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했다고 주장했다.

 

로스토프나도누를 점령한 바그너그룹 탱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주민들. [AP 연합뉴스자료사진]
로스토프나도누를 점령한 바그너그룹 탱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주민들. [AP 연합뉴스자료사진]

중국 관영지 "푸틴, 반란 정리…강력한 억제력"

그러나 중국 관영 매체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중국 정부 입장을 사실상 대변하는 인민일보 계열의 글로벌 타임스는 25일 일부 전문가를 인용해 이번 사태가 푸틴의 권력에 거대한 타격을 가하고 리더십의 약점을 드러냈다는 서방 언론의 주장은 "희망 사항"이라고 일축했다.

이들 전문가는 프리고진이 푸틴의 리더십을 겨냥해 '진짜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니라고 봤다. 그의 최우선 관심사는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고자 푸틴 대통령의 주목을 끄는 것이었다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철수 결정은 그의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푸틴 체제의 약점이 노출됐다는 서방 언론의 지적에도 다른 견해를 보였다. 24일 오전 TV 연설에서 푸틴이 단호한 조치를 공언하고 짧은 시간에 반란을 정리한 사실은 크렘린이 강력한 억제 능력을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 크렘린의 권위는 더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인민대의 왕 이웨이 교수(국제관계학)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서구 정치인들이 바그너의 반란을 '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러시아가 혼돈에 빠져 푸틴이 통제력을 잃으면서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길 희망하거나, 러시아가 약화되고 분열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왕 교수는 주장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에 투입된 러시아 군부대를 방문하고 있다. 쇼이구 장관은 바그너 용병단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 군 지도부 경질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킨 이후 이날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등장했다. 2023.06.26. 연합뉴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에 투입된 러시아 군부대를 방문하고 있다. 쇼이구 장관은 바그너 용병단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 군 지도부 경질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킨 이후 이날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등장했다. 2023.06.26. 연합뉴스

중국 관영지 "푸틴, 전쟁 종식 서두를 것" 전망

그러나 글로벌 타임스는 반란이 24시간 안에 끝났지만 러시아의 정치 상황과 러시아군의 안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신문은 푸틴 대통령의 장래와 관련해 풀어야 할 과제로 △ 용병 등 비정규군과 러시아 군 간의 오래된 갈등 해결 △ 푸틴의 리더십이 약화됐을 것이란 외부의 의구심 해소 △ 질서 강화 등을 들었다.

또한 이번 사태를 통해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국내 문제와 갈등은 더 축적되는 만큼, 전쟁을 끌어선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봤다.

왕 교수는 "이번 사건들로 인해 푸틴은 유사한 리스크를 피하고자 전쟁 종식을 서두르는 한편,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과 같은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의 대표적 관변 언론인인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장은 25일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계정에 올린 글에서 "이번 군사 반란은 앞으로 러시아 정국에 충격과 영향을 주고,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군의 안정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후 전 총편집장은 이어 '바그너 그룹이 크렘린궁의 정치적 권위에 큰 구멍을 내고 푸틴 권력 쇠락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서방 여론은 떠들고 있는데, 이런 외부의 인식을 어떻게 불식하고, 질서를 공고히 하느냐는 분명히 푸틴이 직면한 시험대라고 덧붙였다.

한편, 반란 사태가 정리된 이후 하루가 지나도록 푸틴 대통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프리고진도 장악했던 로스토프나도누를 떠날 때 차 안에서 군중의 환호에 화답하는 모습이 SNS에 공개된 것을 끝으로 벨라루스 도착 여부 등 행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프리고진과 갈등을 빚었던 쇼이구 국방장관은 26일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에 투입된 러시아 군부대를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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