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 책임 복지부 장관도 ‘마시겠다’ 발언

정부 고위관계자 잇따라 음용 ‘커밍아웃’ 눈쌀

여당도 친원전론자 불러 ‘폐수 안전하다’ 홍보

ALPS 여과 문제 계속 드러나는데도 마시겠다?

전문가 “상식 논리를 저버린 정부·여당의 과학”

왼쪽부터 한덕수 국무총리,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지영미 질병관리청장. 2023.6.23. 연합뉴스 자료사진
왼쪽부터 한덕수 국무총리,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지영미 질병관리청장. 2023.6.23. 연합뉴스 자료사진

신현영(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태원 참사 유가족께서 후쿠시마 원전수에 대해서 이런 친전을 보내셨어요. “원전수가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안전한지 여부는 10년, 20년이 지나 환자가 생겨야 논란이 종식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이미 안전하다고 떠든 자와 안전하지 않다고 받아친 사람은 없고, 병든 국민만 남아있을 겁니다. 참담한 건 누군가 씌운 과학이라는 프레임입니다. 국민의 안전에 해가 될 수 있다면 안전히 확인될 때까지 막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장관님, 후쿠시마 오염수를 정화해서 기준에 맞으면 총리께서는 마시겠다고 하셨거든요? 장관님께서도 후쿠시마 오염수 마실 수 있겠습니까?

조규홍(보건복지부 장관) 총리께서 말씀하신 것은 후쿠시마…

신현영 설명하지는 마시구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규홍 과학적으로 처리된다는 거 하나, 그 다음에 WHO(세계보건기구) 음용 기준을 충족한다면 후쿠시마 바닷물이라고 해가지고 별 차별적으로 대우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현영 그래서 마시겠습니까?

조규홍 예,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원님, 지금도 우리나라 바닷물이 안전하다고해서 바닷물 먹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신현영 오유경 처장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총리님 답변, 장관님 답변. 본인도 그런 조건이 마실 수 있겠다?

오유경(식품의약품안전처장) 우리 국민이 해수를 마실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총리님과 장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과학적으로 처리돼서 기준에 적합하다면 마실 수 있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고. 저도 총리님과 장관님의 생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신현영 지영미 처장님은 어떠세요?

지영미(질병관리청장)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과학적으로 방법이 처리가 되고 국내 기준에 맞다면 마실 수 있는 그런 조건은 충족한다고 생각이 들고, 해수는 마실 일은 없겠지만 마셔야 된다면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현영 의사로서, 전문가로서, 질병관리청장으로서 마실 수 있다고 답변하신거죠.

지영미 전제조건 말씀드렸습니다.

22일 오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조규홍 건복지부 장관과 오유경 품의약품안전처장,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이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의 질의에 답한 내용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핵 폐수 해양 투기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한덕수 국무총리가 핵 폐수를 ‘마실 수 있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킨 데 이어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잇따라 마실 수 있다고 발언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핵 폐수 음용 논란은 국책연구기관에서 ‘음용수로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려 일단락됐음에도, 핵 폐수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정부·여당에서 계속해서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6.22. 연합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6.22. 연합뉴스

후쿠시마 안전성 강조하려 마신다는 정부·여당

핵 폐수 음용 논란은 지난달 1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원자력학회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웨이드 앨리슨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희석되지도 않은 후쿠시마에서 가져온 물 1리터가 있다면 바로 마셔볼 수 있다”는 발언에서 시작됐다 . 앨리슨 교수는 국민의힘이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해서도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10리터도 마실 수 있다’고 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세미나를 주관한 원자력연구원의 주한규 원장이 지난달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후쿠시마 핵 폐수를 음용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는 “후쿠시마 오염수는 음용수 기준을 훨씬 넘기 때문에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라며 “오염수의 삼중수소 농도가 평균 62만 베크렐(Bq)인데 음용수 기준은 1만Bq이다”라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원도 지난 1일 보도확인자료를 내고 ‘희석 전 오염수’는 “상시 음용하는 식수로 적합하지 않음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또한 앨리슨 교수의 발언에 대해서도 “개인의 의견으로 연구원의 입장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남인순 의원의 대정부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6.14.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남인순 의원의 대정부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6.14. 연합뉴스

그러나 12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마실 수 있다’고 발언하면서 다시 음용 논란이 촉발됐다. 한 총리는 민주당 김성주 의원이 “WHO 음용 기준은 1만 Bq라며 총리는 안전이 검증되면 마시겠나. 안 마시겠죠?”라고 묻자 “기준에 맞다면 저는 마실 수 있다”고 했다. 한 총리는 김 의원이 “우리가 한번 공수를 해올까요?”라고 하자 “예, 그렇게 하시죠”라며, 일본 정치인들도 하기 힘든 발언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했다. 행정부를 총괄하는 총리가 이 같이 발언하면서 일종의 정부 입장처럼 굳어진 듯하다. 복지부·식약처·질병청 등 국민 건강과 밀접한 기관장들이 핵 폐수 음용을 말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앨리슨 교수를 초청한데 이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이자 친원전론자인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를 공개 특강에 초대해 핵 폐수의 ‘안전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정 교수는 문재인 정부 당시 탈원전 정책을 반대한 대표적인 친원전론자다. 2019년 열린 토론회에서 “초미세먼지가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 피폭보다 폐암에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2021년에는 월성 원전의 대규모 삼중수소 누출 사고와 관련, 주민들 소변의 삼중수소 농도가 바나나 6개와 멸치 1g 수준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정 교수는 지난 20일 국민의힘 의원총회 특강에서 “(핵 폐수를) 너나 먹으라는 논리, 그렇게 안전하면 (일본에) 보관하지 그러냐는 논리는 무의미한 논쟁”이라며 “안전한 것을 방류하는 데 왜 (한국에서) 반대하느냐”고 했다. 또 “티끌이 태산이 되려면 티끌을 태산만큼 모아야 한다. 티끌은 모아도 티끌”이라며 “피폭량은 장기간 작은 양이 쌓여도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저보고 (핵 폐수를) 너나 먹으라 하면 저는 먹겠다.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후쿠시마 방류 안전한가?'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 2023.6.20. 연합뉴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후쿠시마 방류 안전한가?'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 2023.6.20. 연합뉴스

“상식의 논리 저버린 정부·여당의 과학”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발언대로 국민이 바닷물을 마실 리는 없지만, 핵심 문제는 핵 폐수에 의한 해양 생태계 오염이다. 핵 폐수의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축적됐을 때 미치는 영향은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된 게 없다. 관련 연구도 부족하며,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규정된 포괄적 환경영향평가도 이뤄지지 않았다.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후쿠시마 오염수 음용 발언’이 국민의 공분을 부르는 이유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단순히 마실 수 있냐, 없느냐의 문제로 바꾼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후쿠시마 핵 폐수 해양투기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음에도 핵 폐수를 ‘마실 수 있다’며 마치 안전하다는 듯이 발언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전제로 내세운 다핵종처리설비 ALPS의 여과 능력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입수한 일본 문건에 따르면 지난 2020년 핵종 여과과정을 거친 ALPS의 J1 탱크군에 담긴 핵 폐수의 스트론튬-90의 농도가 리터당 10만 베크렐(Bq/L)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기준치(30Bq/L)의 3000배를 초과한 것이다(6월 22일자 <IAEA, 일본정부 돈받고 '핵오염수 절대안전' 결론?> 기사 참고).

정부도 16일 후쿠시마 원전 핵 폐수 관련 일일 브리핑에서 “도쿄전력이 공개하고 있는 저장탱크 내 오염수의 핵종별 방사능농도 자료 중에서 스트론튬 농도의 최댓값이 리터당 43만 3000 베크렐(Bq)이 검출됐다”며 “검출치가 일본 배출기준인 리터당 30베크렐(30Bq/L)의 1만 4433배이고, 한국 배출기준인 리터당 20베크렐(20Bq/L)의 2만 1650배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힌 바 있다.

ALPS가 성능 자체도 의문이다. 민주당 이정문 의원실이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확보한 ‘ALPS 주요 고장사례 및 조치사항 리스트’ 자료에 따르면 후쿠시마 ALPS는 △2013년 6월 △2014년 3월 △2014년 6월 △2014년 9월 △2018년 9월 △2020년 △2021년 8월 △2022년 7월 등 8차례 고장이 있었다. 고장은 필터 이상으로 인한 탄산염 유출, 틈새 부식 등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난해 7월엔 현재 주로 가동 중인 증설 ALPS(A계열) 흡착탑 내 pH(수소이온농도) 변화로 인해 스트론튬-90 농도가 상승하기도 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주요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 고장사례 리스트. 2023.6.16. 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실 제공.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주요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 고장사례 리스트. 2023.6.16. 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실 제공.

ALPS의 고장 사례도 계속 나오고 있다. 김성일 원자력안전기술원 방사선·폐기물평가실 책임연구원은 지난 21일 후쿠시마 핵 폐수 관련 일일 브리핑에서 “2021년도에 헤파필터라고 하는 배기필터 고장이 1건 발생했는데, 그것으로 인해 다른 배기필터를 전수 검사했더니 전체 25개 중 24개에서 고장이 났다”고 밝혔다. 8차례의 ALPS 고장사례 중 1건을 세부적으로 살펴봤더니 24건의 고장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데도 국민 건강과 안전을 책임질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과학적으로 처리된(ALPS에서 처리된)’ 핵 폐수를 마실 수 있다는 식으로 발언하는 것은 국민 기만이며 불안을 키울 뿐이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정부·여당의 연이은 핵 폐수 음용 발언과 관련해 “과학 위에 상식이 있다. 상식의 논리를 저버리는 과학은 없다. 정부·여당에서 자꾸 과학적, 과학적 이야기하는데 그전에 상식적인 점부터 갖추고 이야기해야 한다”며 “핵 폐수를 마신다는 이야기가 상식적이지 않은 왜곡 정보다. 그들 스스로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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