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사기 떨어지니 비판도 하지 말라"
윤석열 정부 후쿠시마 일일 브리핑 '점입가경'
독일 연구기관 발표 논문 내용도 '가짜뉴스'
일본에 유리한 분석 결과만 인용해 '사실'
"한국이 왜 이렇게 나서서 일본 대변하나"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19일 일본 후쿠시마 '핵 폐수'를 언급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핵 폐수' 용어를 자제해 달라고 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위험성을 감추기 위해 '처리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 대응해 국내에서는 '핵 폐수' '핵 오염수'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조차도 한국 정부가 마치 '괴담'처럼 취급하는 모습이다. 연일 '일본 정부를 대변하냐'는 비판을 받는 한국 정부가 갈수록 태산인 행보를 고수하고 있다.
송상근 해양수산부 차관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일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이 없었음에도 작정하듯 "(브리핑을) 마무리하기 전에 한 말씀드리겠다"며 "어제 '핵 폐수'라는 용어가 나왔지만, 핵 폐수라는 말은 우리 바다가 심각하게 오염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단어 선택은 우리 국민분들께 과도하고 불필요한 걱정과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소비 위축에 따라서 우리 어업인분들과 수산업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며 "과도한 용어는 자제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송 차관이 언급한 '핵 폐수' 용어는 지난 17일 부평역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규탄대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한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울산시당이 지난 13일 후쿠시마 오염수를 '핵 오염수'라고 표현한 민주당 울산시당 인사를 고발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이 같이 비판했다.
"울산에 민주당 당원이 '핵 오염수'라고 표현했다고, 국민의힘에서 고발했다는 보도가 있던데, 혹시 보셨습니까 여러분? 그래서 제가 묻겠습니다. '처리수'입니까, '오염수'입니까, '핵 폐수'입니까, 여러분! '핵 오염수'라고 해서 고발을 한다고 하니까 앞으로는 아예 '핵 폐수'라고 불러야 되겠습니다. (…) 핵폐기물은 핵에 노출되었거나 노출될 위험이 높은, 그때 당시 입었던 옷, 그때 삽질했던 삽, 이런 것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명확하게 핵물질에 노출됐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싸고돌았던 지하수가 오염수입니까 핵 폐수입니까. 명백하게 핵폐기물입니다, 여러분. 자 이제 핵 오염수가 아니고 핵 폐수라고 했으니, 제가 고발당할 차례군요!"
정부 고위당국자가 자진해서 야당 대표의 용어 사용까지 지적하는 것은 일본 정부를 대변하냐는 비판을 스스로 자초하는 부적절한 발언이다. 도쿄전력은 핵종의 농도를 저감하는 ALPS 설비를 통해 나온 폐수를 '처리수'라고 부르면서 마치 안전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핵 폐수, 핵 오염수 등의 용어는 일본 도쿄전력이 '처리수'라고 부르며 속이는 것(「후쿠시마 오염수의 진실」, 탈핵신문미디어협동조합·반핵의사회, 2023년 6월)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시민사회에 널리 통용되고 있다.
아울러 송 차관은 핵 폐수 용어가 "우리 바다가 심각하게 오염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이러한 단어 선택은 우리 국민분들께 과도하고 불필요한 걱정과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소비 위축에 따라서 우리 어업인분들과 수산업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국민들이 불안을 느끼는 근본 원인은 일본이 국제사회 반대에도 핵 폐수를 해양 투기하는 것임에도, 일본 정부를 비판하진 못하면서 국내에만 책임을 돌리는 꼴이다.
일본에 유리한 연구결과만 '과학적 사실' 주장
일본 대변하면서 "일본 대변한다고 하지 말라"
후쿠시마 핵 폐수 해양 투기가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것은 일본을 포함해 국제사회 어느 곳도 핵 폐수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예측하지 못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가장 보수적으로 평가해야 하지만, 정부는 일본 정부를 대변하듯 일방적으로 '안전하다'고 국민을 세뇌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특히 자신들의 브리핑에 대해선 '과학에 기반했다'고 설명하면서도, 세계적인 연구기관의 연구에 대해서도 '가짜뉴스' '괴담' 취급하고 있다. 객관성을 위해서 다양한 연구결과를 참고해야 하지만, 취사 선택한 결과만 '과학'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송 차관은 이날 일일 브리핑에서 후쿠시마 오염수의 국내 유입 시기와 관련, 지난 2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발표한 해양확산 시뮬레이션 결과를 인용해 "삼중수소는 4~5년 후부터 우리 바다로 유입되어 10년 후 우리 바다의 평상시 삼중수소 농도의 약 10만분의 1 수준인 0.001 세제곱미터당 베크렐(Bq/㎥) 내외에 도달한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핵 폐수를 투기해도 안전하다는 의미다.
송 차관은 그러면서 "해당 시뮬레이션은 0~200m 표층의 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수심 200~500m 물은 대만해협을 통해 제주 근해를 거쳐 동해로 유입되는 데 5~7개월 걸린다(지난달 30일, YTN라디오)"는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의 분석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정부가 지목한 서 교수의 분석은 핵 폐수 해양 투기와 관련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독일 헬름홀츠 해양연구소 연구를 인용한 내용이다. 헬름홀츠해양연구소가 공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후쿠시마 핵 폐수가 투기될 경우 세슘은 200일 내 제주도에, 280일이면 동해 앞바다에 도달한다. 중국 칭화대도 400일 안에 한국 영해 전역이 영향을 받는다는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에 어떤 조건으로 수행했느냐에 따라 내용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정부는 일본 정부에 유리한 분석(한국 정부가 수행한 분석)만 인정하고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 연구마저 '가짜뉴스' 취급한 것이다.
서 교수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지금은 방류가 되면 어떻게 해야할지 대비를 해야할 때이지, 표층수 삼중수소 농도를 가지고 말 장난할 때가 아니다"라며 "시뮬레이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고, (정부의 발표는) 기상이변 등을 포함한 시뮬레이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마치 한 가지만 정답인 것처럼 해석해선 안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정부 브리핑은 국민들을 상대로 하는 것 아닌가"라며 "국민들에게는 알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이러한 일방적인 발표에 대해 '일본 정부를 대변한다'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정부는 자기합리화에 바쁜 모습이다.
박구연 국무1차장은 지난 16일 2차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의 대변인이냐'는 비판에 "국민들께 안전상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 등을 지금 면밀히 살피고 있는데 이분들의 사기를 너무 떨어뜨리는 지적"이라고 했다. 국민들의 비판이 공무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니 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는 이날도 '정부의 책임 방기'라는 비판에 대해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 기조로 해서 우리 바다와 수산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왔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가 왜 이렇게 나서서 일본 대변하나"
민주당은 이날 정부의 후쿠시마 일일 브리핑에 대응해 '후쿠시마 오염수 1일 1질문 브리핑'을 열었다. 민주당은 매일 정부 브리핑 이후인 오후 1일 1질문 브리핑을 열고 국민과 소통한다는 계획이다. 질문도 당 홈페이지 등을 통해 사전에 수렴할 예정이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정부의 일일 브리핑에 대해 "채팅창, 댓글에 국민이 보이는 반응은 왜 우리 정부가 이렇게까지 나서서 일본 정부 논리를 대변하는가, 오염수 방류는 일본 이익을 위한 것일 뿐 우리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는데 왜 우리가 앞장서 옹호하고 정당성을 강변하는가였다. 이게 바로 평범한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라며 "일본 정부가 다른 방법을 두고도 가장 값싼 해양 방류를 선택한 건데 자국 비용을 아끼기 위해 선택한 비용을 우리는 비판적으로 엄정하게 따져 묻기는커녕, 걱정하는 사람들을 예민증 환자나 괴담 유포자로 매도하고 있다. 정녕 대한민국 정부가 맞는가"라고 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원내대책단 부단장을 맡은 송기호 변호사는 이날 1일1질문 첫 브리퍼로 나서 "일반적이고 통상적으로 운영되는 원자로에서 검증 절차를 거친 냉각수가 아니라 전혀 통제되지 못한, 지금도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한 오염수가 문제의 출발인데, 오염수가 현재 어떤 상태이고 현재 어떤 핵종이 있는지 기본적으로 모른다. 일본의 환경영향평가서도 그런 불확실성을 스스로 전제하고 있다"며 "(정부가) 불확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지만 이런 구조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오염수에 어떤 핵종이 있고 어떤 게 심각하고 어떤게 괜찮은지 오염수 자체의 핵종에 대한 정보가 요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