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대신 실시간 채팅 ‘타임톡’ 바뀐 지 열흘
다른 이들 의견 보기 어려워 공론의 장 붕괴
커뮤니티 중심으로 “진보적 여론 형성 위축”
“총선 전 방송 장악·인터넷 여론 통제” 의심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뉴스 댓글이 사라진 지 10일이 지났다. 다음을 운용하는 카카오는 8일 댓글을 없애고 뉴스 게시 뒤 24시간 동안만 채팅을 허용한 ‘타임톡’을 도입했다. 이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회비판적인 여론 형성이 크게 위축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댓글을 보며 기사를 평가하고 잘못된 정보를 수정하거나 보완하는 ‘집단 지성의 장’이 사라졌다고 비판한다.
진보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클리앙에는 타임톡 도입을 성토하는 글이 여럿 올랐다. 한 누리꾼은 ‘DAUM 댓글창 사실상 무력화’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는 “찬반 순 의견이나 댓글이 많이 달린 의견을 보는 기존 기능이 사라져서 댓글 여론을 파악하는 게 불가능해졌습니다. 과연 누구에게 이득일까요”라고 썼다.
타임톡은 채팅 방식이기 때문에 너무 빠르게 지나가 이용자 간의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기사에 대한 다른 이용자의 전반적 의견을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다음은 네이버에 비해 진보 성향의 이용자가 많다. 이번 조치가 이들의 여론 형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다음 댓글 대신 타임톡이라고요’라는 글을 올린 누리꾼은 “다음 뉴스들은 댓글 부대 밀려와도 항상 순식간에 뒤집힐 정도로 깨시민들의 댓글이 공감 많이 받으며 항시 상단에 노출됐다”며 “댓글 여론 밀려버리니 아예 댓글을 타임톡으로 해서 여론 차단해버리는 어이없는 짓”이라고 썼다. 이 지적처럼 ‘추천수’가 많은 댓글을 통해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고 논의를 통해 건전한 비판을 이어가는 순기능이 있었다.
카카오 측은 타임톡 도입 취지에 대해 일부 댓글이 과대 대표되거나 부적절한 댓글이 사라지지 않는 기존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타임톡으로 더 많은 이용자들이 편하고 부담 없이 댓글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타임톡에서 표현의 자유가 더 위축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커뮤니티 보배드림의 한 이용자는 ‘Daum도 떠나야 할 때가 됐네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재명 조작 여론조사 기사에 타임톡 달았더니 어마무시한 제재가 왔네요. 댓글도 없애더니, 몇십 년을 함께한 다음도 떠나야 할 때가 된 듯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영구 활동 제한’ 조치를 받은 화면을 갈무리해 올렸다. 조치에는 규제 대상이 된 표현이 ‘내 사는 대구에만 전화 돌렸냐? 참 대단하다. 벌써 오염수 쳐묵 했냐?’라고 표시돼 있다. 표현의 수위에 비해 제제가 과도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누리꾼도 “타임톡이라는 AI 기반의 댓글창이 생긴 것 같은데, 웬만한 욕설이나 비판적인 문구는 바로 차단해 버리네요”라고 적었다.
이용자가 예전에 작성한 댓글을 찾으려면 별도 신청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로그인을 거쳐 ‘이전 댓글 백업 신청’ 페이지에 접속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지나야 댓글 작성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고 입력한 이메일 주소로 받아볼 수 있다. 신청 기간은 9월 5일까지다.
이용자들은 다음의 댓글 정책 변화가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한 누리꾼은 “네이버는 정복됐다. 다음도 정복됐다. 그런데 그거 아나? 프랑스혁명도, 동학농민운동도, 독립운동도 인터넷이고 SNS고 아무 매체 없을 때 일어난 일”이라고 꼬집었다.
현 정권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유리한 여론 지형 형성을 위해 전방위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시 MBC노조는 정권의 방송 장악 의도를 노골화한 것으로 규정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면직→방통위 장악→MBC 이사진 교체→친정권 성향 MBC 경영진 임명’ 과정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방송에 이어 포털 사이트에서도 이런 ‘여론 새판짜기’가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 몇 달 새 페이스북에서도 정권 비판 게시물이 과도하게 삭제되거나, 이런 게시물에 공감하는 ‘좋아요’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 언론 시장은 보수 매체가 일방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댓글은 비판적으로 기사를 수용하는 공론의 장이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토론을 통해 보도의 잘잘못을 가리는 기능이 사라졌다. 일방적 보도가 진실화 혹은 사실화되는 부작용을 독자들이 그대로 떠안게 됐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최근의 MBC 압수수색 등에 대해 “MBC 등을 민영화하고 경제 권력이 들어오면 방통위를 통해 민영 언론사를 통제하는 식의 언론 지배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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