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눈]데뷔 10주년 들든 분위기 속 살풍경
‘블랙리스트 홍보대사’ 항의 작가들 들어내기 만행
넷플릭스 드라마 볼 수 없고, 전두환 미화 전시도
정권의 비판적 문화예술에 대한 침공의 신호탄인가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와 지난해 미국 포천 보도에 따르면 BTS가 한 해 활동으로 관광, 유통, 미술 등 국내 각 생산 분야에 유발한 효과는 연평균 4조 1400억 원, 부가가치는 연평균 1조 42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를 기준으로 지난 10년간(2014~2023년) BTS 활동이 가져다 준 경제적 파급력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41조 8600억 원이다.’(6월 13일자 조선일보)
‘서울 국제도서전의 개막식 행사장. 두 팔을 붙잡힌 송경동 시인이 밖으로 끌려 나옵니다. 한국작가회의 등 9개 문화예술단체 회원들이 행사장에 들어가려다 제지당했습니다. “내 몸에 손대지 마!”’(6월 14일 MBC 뉴스데스크)
하루 사이 문화예술계에서 벌어진 극과 극의 풍경이다. 전 세계 팬들이 BTS의 데뷔 10주년에 환호하는 잔치 속에 윤석열 정권은 문화예술계에 ‘등창’을 냈다.
작가들은 14일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깊이 관여한 오정희 소설가가 서울국제도서전의 얼굴이 된 것에 항의했다. 그러자 정권은 김건희 여사가 도서전에 참석한 것을 명분으로 예술인들을 행사장에서 끌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작가들은 문화예술 행사를 방해하는 물건이고 짐짝이 됐다.
문화계는 올 것이 왔다고 느끼고 있다. 정권이 사회 비판적 목소리의 첨병인 예술계를 탄압하는 신호로 본다. 문화를 정권의 입맛에 맞게 이용하려는 움직임의 시작으로 의심한다.
신호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1일부터 청와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여기 대통령들이 있었다’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전두환을 미화했다. 전두환의 소품을 전시하며 ‘차분하고 느긋했다… 되찾은 4시간 여유 있게 즐겨’(1982년 1월 6일자 동아일보)라는 당시 통금 해제 조치를 찬양한 기사를 나란히 게시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를 상징하는 곳에서 열리는 전시에서다.
온 국민을 소파 위에 붙들어두는 넷플릭스. 여기서는 상영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심이 피어오른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다룬 일본 드라마 ‘더 데이스’를 한국에서는 볼 수 없다. 남극을 비롯해 70여 개국에서 볼 수 있는데…. 오비이락인가?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를 앞둔 시점이다. 대통령의 4월 방미 때 넷플릭스는 대단한 투자를 약속한 것처럼 국민을 호도했다.
BTS가 비틀스를 넘어섰다고 국뽕에 으쓱하지만 한류가 열매를 계속 맺으려면 토양이 건강해야 한다. 문화는 간단치 않다. 현 정권의 ‘돌격 앞으로’ ‘밀어붙여’ 구호와 어울리지 않는다. 복잡 미묘하고 섬세하며 중층적이다. BTS의 성공 비결만 봐도 그렇다. 중소 기획사 소속으로 인기를 얻지 못했던 초창기 BTS를 우뚝 세운 것은 진심이었다.
‘너란 감옥에 중독돼 깊이/니가 아닌 다른 사람 섬기지 못해/알면서도 삼켜버린 독이 든 성배…’
BTS ‘피 땀 눈물’의 가사처럼 아미들은 그들 나름의 언어에 담긴 젊은 고뇌와 성찰에 공감했다. 문화소비자들은 BTS를 키우겠다며 주체성을 발휘했다. 소비자가 기획자 혹은 창작자가 되는 마법이 BTS를 빌보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세웠다. 공감, 성찰, 주체성 같은 곰삭은 가치가 문화의 엔진인 것이다.
오정희 작가는 작품 속에 이런 가치를 담아왔다. ‘부단한 자기성찰과 사색의 세계를 구축해가는’(조회경, 우리문학연구), ‘소외되고 억압받는 여성의 삶 속에서 여성으로 살아가야 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김혜영, 현대소설연구), ‘자기 성찰의 공간으로 재영토화하는’(이정희, 여성문학연구) 작가였다. 문단의 대표 여성작가 중 한 명인 그가 블랙리스트 관여에 대해 사과도 없이 국제도서전의 얼굴이 돼 나타난 것은 이율배반이다. ‘문화 강국 코리아’를 외치는 한류 팬에 대한 도발이다.
지식산업의 공장 역할을 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도 마찬가지다. 출협의 홍태림 정책팀장이 오 작가의 홍보대사 위촉에 반대해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런데도 출협은 위촉을 강행한 이유에 대해 “이미 배포한 홍보물을 폐기하기 어려워 해촉할 수 없었다”는 변명을 내놓았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문화산업에 대해 ‘미묘하고 이상한 산업’이라고 했다. 효율성만 추구해서는 정작 파괴력 있는 상업적 성공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창의력은 억압을 벗어난 자유, 자기 성찰, 타인에 대한 공감 같은 ‘이상한 것들’에서 출발한다.
보수 정권만 들어서면 문화는 탄압의 대상이 된다. BTS의 성공을 비틀스의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영국 음악의 미국에서 대성공)’에 빗대 ‘코리안 인베이전’이라고 한다. 성공의 바탕에는 자유를 먹고 사는 ‘통제 안 되는’ 예술인들이 있다. 정권이 이들을 억눌러 이득을 취하려는 순간 문화는 죽는다. 서울국제도서전 사태가 문화예술계 탄압의 돌격 명령이 아니길 바란다. ‘윤’s 인베이전(침공)’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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