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선언'에 핵 없는데 '핵기반 동맹' 운운
주변국 자극해 군사적 긴장만 조성…중·러 반발
미국도 '비확산' 방점찍어…윤만 '핵 기반' 주장
6·25 참전, 미군만 언급하고 나머지 참전국 제외
민간인 희생도 언급 없어 편협한 역사 인식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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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6일 한미 동맹을 '핵 기반 동맹'이라고 언급하며 또다시 정치 선동에 나섰다.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체결한 워싱턴 선언은 사실상 한국의 '자체 핵 무장 불가론'을 재확인한 것으로, 북한에 대한 확장억제 정도의 내용에 불과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주변국을 자극하고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통해 "저와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미 핵 자산의 확장 억제 실행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워싱턴 선언'을 공동 발표했다"며 "한미동맹은 이제 '핵 기반 동맹'으로 격상됐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지난달 2일 미국 방문 뒤 주재한 첫 국무회의에서도 "워싱턴 선언으로 한미동맹은 핵 기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업그레이드됐다고 할 수 있다"고 자화자찬한 바 있다. 현충일 추념사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핵 기반 동맹'도 국무회의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된다.
'핵 기반 동맹'이라는데 '핵'은 어디에?
윤 대통령의 '핵 기반 동맹' 발언 배경이 되는 워싱턴 선언은 '확장억제 강화' 정도로 평가된다. '자체 핵 보유'나 '핵 공유'와는 관련이 없다. '앙꼬(팥) 없는 찐빵'과 같다. 워싱턴 선언의 핵심은 핵우산 협의를 위한 핵협의그룹(NCG) 운용이지만, NCG는 이미 작동하고 있는 차관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의 하부조직으로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6월 2일자 <미 전략핵잠함 메인 함 북상…전대미문의 '태풍' 예고> 참조)
특히 미국은 워싱턴 선언에 "윤 대통령은 국제비확산체제의 초석인 핵확산금지조약(NPT)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오랜 공약 및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하였다"는 문구를 넣었다. NPT 탈퇴 없이 한국 핵 무장은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은 NPT 재확인을 통해 한국의 핵 무장론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의 '자체 핵 무장론'을 지지해온 수구매체 <조선일보>조차도 워싱턴 선언을 '핵 족쇄'라고 표현했다.
중·러 반발만 커져…한반도 군사긴장 고조
실질이 이러함에도 워싱턴 선언을 핵 전력과 연계해 발언하는 것은 주변국을 자극하고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발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필리핀해에서 훈련을 한 미 해군 전략햄잠수함 메인 함(SSBN 571)의 한반도 전개가 전망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과의 군사적 긴장 수위가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위 6월 2일자 기사 참조) 실제 중국·러시아 등 주변국 반발도 커지는 상황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 2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 회의에서 겅솽 주유엔 중국대표부 부대사는 "미국이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군사 활동을 계속하고 군대 주둔을 늘렸다"면서 한미 '워싱턴 선언'과 최근 한미 연합훈련을 거론한 뒤 "이는 한반도 비핵화 증진과 평화 유지 목표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러시아 차석대사도 "점점 늘어나는 한미일의 군사 활동이 동북아에서 파괴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며 "긴장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근본 원인은 소위 확장억제라는 개념하에 미국과 그 동맹들이 대북 압력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워싱턴 선언에 대해서도 "군비 경쟁을 자극하고 더 많은 긴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도 부인한 핵… 확장억제·비확산 방점
아울러 윤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을 '핵 기반 동맹'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이미 워싱턴 선언 체결 당시 미국에서 선을 그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정상회담 직후 현지 브리핑에서 "한미 양국이 미국의 핵무기 운용에 대한 정보 공유와 공동 계획 메커니즘을 마련한 만큼 우리 국민들도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처럼 느끼시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미국은 철저하게 이를 부정했다.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김 차장의 발언 뒤 한국 특파원단과 만나 "한국 정부는 워싱턴 선언을 사실상 핵공유라고 설명하는데 이런 설명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냥 매우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우리가 이 선언을 사실상 핵공유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4월 28일자 <깃털보다 가벼운 윤석열의 '자체 핵 무장' 정치 선동> 참조)
미국의 이러한 비확산 기조는 일관적이다. 최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의 발언도 주목할 만하다. 설리번 보좌관은 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군축협회 연례 회의 연설에서 "동맹과 관계를 강화하며 우리는 핵무기의 시대에 미국이 이룬 비확산의 가장 큰 성취는 확장억지라는 점을 상기한다"며 "이는 우리의 너무나도 많은 동맹에게 독자적인 핵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고 했다.
그는 "일례로 지난 4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확장억지를 포함한 양국의 상호 방위 조약은 철통같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워싱턴 선언에 서명했다"고 전하며 "이는 잠재적인 핵 위기 시기를 포함해 한미 양국의 공조를 한층 강화하는 조치이자 비확산이라는 우리의 공동 목표에 대한 약속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의 시각 역시 비확산과 확장억제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핵 기반 동맹'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상당 부분 현상을 왜곡하는 '정치적 선동'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군만 6·25 희생했나…편협한 역사관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추념사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우리 국군 16만 명이 전사했지만, 12만 명의 유해를 찾지 못했다. 6·25전쟁에서 우리 동맹국인 미군도 3만 7000명이 전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 외 나머지 참전국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유엔군 사망자는 4만 1000여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미군을 제외하면 영국·호주·네덜란드·캐나다·뉴질랜드·프랑스·필리핀·터키·그리스·남아프리카공화국·벨기에·룩셈부르크·콜롬비아·에디오피아·노르웨이의 전사자 수는 4000여 명에 달한다.
한국은 그동안 국가보훈처를 통해 각국의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해왔다. 윤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언급했듯이 국가보훈처가 이달 초 '국가보훈부'로 승격했지만, 대통령 스스로가 동맹 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듯 미국만을 언급함으로써 참전국과 참전 용사들에 대한 예우를 그르쳤다.
아울러 대통령은 군인만 언급했지 민간인 희생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전쟁 기간 남·북한을 합쳐서 약 300만 명 가까이 사망·실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들 모두 비극적인 전쟁의 희생자다. 그럼에도 오직 국군과 미군의 죽음만을 기리는 편협한 모습은 대통령의 역사 인식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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