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전체주의 세력" 타령하던 윤석열과 대조적
추념사에 '북한' '공산주의' 단어 한 번도 안 나와
"전쟁 걱정 없는 평화" "유공자 특별한 보상" 강조
"독립운동 3대 망하고 친일 3대 흥한다는 말 없게"
윤 정부가 삭감한 광복회 예산도 원상 복구 지시
성남시장 때부터 국가유공자 지원에 각별한 노력
상이군경회 등 보훈단체들로부터 수차례 감사패
경기지사 땐 친일 잔재 청산, 접경지대 평화 주력
현충일 추념식 끝난 뒤 인근 재래시장 깜짝 방문
이재명 대통령은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제70주년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했다. 취임 후 첫 국가기념일 행사 참석이다. 이 자리에는 국가유공자와 유족, 정부 주요 인사, 각계 대표, 시민 등 400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지난달 해군 해상초계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고(故) 박진우 중령, 이태훈 소령, 윤동규 상사, 강신원 상사의 유족들과 지난해 12월 서귀포 감귤 창고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임성철 소방장의 유족들이 초청됐다. 이 대통령은 행사장 안으로 들어서면서 유족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오열하는 유족의 손을 한동안 붙들고 말을 건네거나, 박진우 중령의 어린 자녀를 쓰다듬으며 배우자에게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추념사를 통해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특별한 보상'을 약속하는 한편 '전쟁 걱정 없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이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는 말도 했다. '북한' '공산주의' '공산 세력' 같은 단어는 한 차례로 언급하지 않았다. 재임 3년간 친일 뉴라이트 인사들을 중용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 때마다 '북한 도발'과 '공산 전체주의 세력'에 방점을 찍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며 색깔론이나 일삼던 행태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였다.
이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일흔 번째 현충일을 맞아 거룩한 희생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내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국민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모든 국가유공자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소중한 가족을 잃으신 유가족분들께는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특별히 오늘 이 자리에는 해군 해상 초계기 순직자이신 박진우 중령과 이태훈 소령, 윤동규 상사와 강신원 상사의 유가족분들과 화마에 맞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다 순직하신 임성철 소방장의 유가족분들이 함께하고 계신다"며 "이 자리를 빌려 깊은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 우리 국민께서는 고인들의 헌신을 뚜렷이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국민과 국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기꺼이 자신을 바치고 희생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서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고, 조국을 구하기 위해 전장으로 나선 군장병들과 젊은이들이 있었다. 독재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수많은 분들이 있었다"고 열거했다.
그러면서 "그 고귀한 헌신 덕분에 우리는 빛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숭고한 희생 덕분에 우리나라는 전쟁의 상흔을 딛고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빛나는 용기 덕분에 오랜 독재의 질곡에서 벗어나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주의 모범 국가로 우뚝 섰다"며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분들이 아니었으면 결코 이루지 못했을 눈부신 성취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풍요와 번영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보훈은 희생과 헌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자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다. 모두를 위한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면서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이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 국가와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 합당한 보상으로 돌아오는 나라, 모두를 위한 헌신이 그 어떤 것보다 영예로운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울러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이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품격을 더할 수 있도록 예우는 더 높게, 지원은 더 두텁게 할 것이다. 국가를 위한 희생에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지게 할 것"이라며 ▲참전유공자의 남겨진 배우자가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지원 강화 ▲국가유공자의 건강한 삶을 위해 집 근처에서 제때 편리하게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빈틈없는 보훈의료체계 구축 ▲군 경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현실화해 국가유공자와 제대군인의 헌신에 합당한 예우 등 구체적인 보훈 정책까지 소개했다. 대선 공약집에도 담긴 내용이다.
국가유공자만이 아니라 군 장병, 소방관, 경찰관 등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이들에 대한 복무 여건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그 많은 분들의 노고 또한 잊지 않을 것이다. 밤을 지새우며 나라를 지키는 군 장병들과 재난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 범죄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경찰관들의 헌신 덕분에 오늘도 우리 국민들께서 안심하고 일상을 누리는 것"이라며 "제복 입은 시민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오직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복무 여건도 개선하겠다. 제복 입은 민주시민들이 국민을 지키는 동안, 대한민국이 군 장병과 경찰, 소방공무원들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서 지켜온 나라가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오늘을 누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공동의 책무다. 전쟁 걱정 없는 평화로운 나라, 일상이 흔들리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그 거룩한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가장 책임 있는 응답일 것"이라며 "든든한 평화 위에 민주주의와 번영이 꽃피는 나라, 자부심과 긍지가 넘치는 그런 대한민국으로 보답하자. 언제나 국난 앞에서 '나'보다 '우리'가 먼저였던 대한민국의 저력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단언했다.
이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영전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면서 "모두를 위한 특별한 희생과 헌신을 가슴에 단단하게 새기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윤석열 정부에서 삭감된 광복회 예산에 대해 빠른 원상 복구 조치도 취했다. 현충일 추념식을 마친 뒤 퇴장하는 과정에서 한 참석자가 삭감된 광복회 예산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자 곧바로 정부 관계자에게 원상 복구를 당부했다. 국가보훈부는 입장문을 내고 "광복회, 재정 당국과 협의를 거쳐 추가경정예산(추경) 등을 통해 필요한 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는 2025년 광복회 예산을 전년도 32억 원에서 6억 원이 삭감된 26억 원으로 책정했다. 당시 이종찬 광복회장이 윤 정부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강행,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추진 등을 강하게 비판하자 예산으로 보복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광복회는 지난해 9월 성명을 내고 "광복 80주년 사업을 위한 광복회관 기념물 설치와 독립운동사 편찬사업 등 6억 원을 (보훈부에) 신청했으나 전혀 반영하지 않았고, 광복회 학술원 예산 6억마저 삭감해버렸다"며 "정부가 광복 80주년의 주역인 독립유공자와 후손을 보훈의 기억 속에서 아예 지우려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반발했었다.
이 대통령은 지자체장으로 일할 때부터 국가유공자 예우 및 친일 잔재 청산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성남시장 시절엔 독립유공자를 최고로 예우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도화해 '독립유공자 예우 및 지원 조례'를 만들었다. 정부 차원의 예우와 별도로 성남시에 거주하는 생존 애국지사에게 보훈명예수당 30만 원(종전 5만 원)을 지원하고 모든 행사에서 가장 상석에 모시도록 한 것이다. 사망 위로금도 100만 원(종전 20만 원)으로 상향 책정했다. 또 광복회 성남시지회 운영 보조금으로 연간 5000만 원을 지원하고 보훈단체 회원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는 등 행정적·재정적 뒷받침을 해줬다.
다른 국가유공자들에 대해서도 성남시 차원에서 별도의 보훈명예수당을 지급하도록 했다. 보훈유공자 초청 행사를 열고 보훈유공자단체에 대한 운영비 지급 등 실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성남에서 당시 이재명 시장이 통합진보당과 정책 연대를 했다는 이유 등으로 전국 단위의 극우단체들이 '종북 척결 대회'를 개최했을 때 정작 성남시 보훈단체들은 참석을 거부하거나 미온적으로 반응했다. 심지어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6·25 참전 유공자회, 무공수훈자 중앙회, 독립유공자협회 등 대표적인 보훈안보단체들이 이 시장에게 잇따라 감사패를 수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경기도지사 시절엔 취임 이듬해부터 "생활 속 깊이 뿌리 박힌 친일 문화를 청산하겠다"며 도내의 친일 잔재 전수조사와 청산 작업을 병행했다. 이에 따라 2020년 8월 경기도 차원에서 ▲친일 인물 257명 ▲친일 기념물(기념비 및 송덕비) 161개 ▲친일 인물이 만든 교가 89곡 ▲일제를 상징하는 모양의 교표 12개 등 도내 '일제 잔재'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기도 홈페이지 역대 도지사 소개란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구자옥(1대), 이해익(2대), 최문경(6대), 이흥배(10대) 등의 소개 약력에 친일 행적을 부기한 일화는 유명하다. 경기북부 접경지대 도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접경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드는 일에 힘을 쏟기도 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현충일 추념식이 끝난 뒤 인근 재래시장을 깜짝 방문해 주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배우자 김혜경 여사와 함께 오전 11시쯤 동작구 사당동의 남성사계시장을 약 23분간 방문했다. 추념식을 마치고 한남동 관저로 돌아가던 중 '관저에 아무것도 없다'며 이 대통령이 즉석에서 방문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시민들이 생활하는 일상 공간을 찾아 소통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김 여사와 함께 음식과 식료품을 파는 가게에 들러 몇 가지 먹거리를 사고 상인 및 주민들과 격의 없이 악수하거나 대화했다. 물품을 비닐봉지에 담아 직접 들고 다니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이 대통령이 황인권 경호처장을 임명하면서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신변 경호를 주문한 만큼 경호처는 '열린 경호, 낮은 경호'에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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