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몇몇 나라 자비에 기대게 하는 경제적 집중이 문제"

8월 남아공 정상회의…글로벌 사우스로 회원국 확대 추진

산유국 사우디·이란·UAE 가입되면 '브릭스 영향력' 배가

브릭스 은행, 달러 대안 도입 브리핑…자국 통화 결제 추진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9월 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러·중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직전 '한계가 없는 협력'을 다짐했다.  2022.9.16 EPA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9월 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러·중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직전 '한계가 없는 협력'을 다짐했다.  2022.9.16 EPA연합뉴스 

브릭스(BRICS)가 서구 선진국 그룹인 주요 7개국(G7)의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브릭스는 신흥 경제 5개국인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처음에 브릭스는 이질적인 신흥 경제국들의 느슨한 모임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중국의 주도로 더욱 실질적인 틀을 갖춘 그룹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자연스레 브릭스의 존재감도 무시 못 할 정도로 커졌다. 5개국 인구는 32억 명을 넘어 세계 인구 80억 명의 40%가량을 점하고 총면적은 지구 전체의 약 26%를 차지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예측을 인용한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세계 경제성장 기여도에서 2020년을 기점으로 브릭스가 G7을 앞지르고 있다. 브릭스와 G7의 글로벌 GDP(국내총생산) 기여도는 2009년에 25.6% 대 35.1%였으나 2020년엔 각각 31%로 같았다. 2023년 현재는 31.5% 대 30%로 역전됐고, 5년 후인 2028년에는 33.6% 대 27.8%로 격차는 더 벌어진다. G7으로선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브릭스 외교장관회의, 서구 중심 국제 경제질서 재편 요구

글로벌 무대에서 브릭스가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것도 이런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이제는 서방 선진국이 주도해왔던 국제경제 질서의 재편을 요구하기에 이른 셈이다. 경제 규모에 걸맞은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얘기다.

G7은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이다. 이제 G7은 단순히 경제 문제 협의에 국한된 게 아니라 지정학적 사안을 다루는 정치, 안보 협의 그룹으로 변모했다. 이에 반해 브릭스는 경제와 통상, 개발 중심으로 회원국 간 호혜를 추구하는 협력 조직을 지향한다. 이런 면에서 두 그룹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브릭스는 오는 8월 올해 의장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사전 준비를 위해 1일 케이프타운에서 브릭스 외교장관회의가 진행됐다.

2일에는 '글로벌 사우스'(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의 개도국, 저소득국)에서 초대된 15개국의 외교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브릭스 친구 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의 주요 의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국제 경제질서의 재편과 부(富)의 편중 완화, 달러 의존도 축소와 자국 통화 결제, 그리고 저성장·저개발 및 부채 문제로 고통을 겪는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지원과 브릭스 회원국 확대 여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소재 영빈관인 하이데라바드 하우스에서 회담 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날 이틀 일정으로 뉴델리에 도착한 기시다 총리는 모디 총리와 무역과 기술 부문의 양국 협력강화 방안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공동의 우려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2023.03.20. AFP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소재 영빈관인 하이데라바드 하우스에서 회담 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날 이틀 일정으로 뉴델리에 도착한 기시다 총리는 모디 총리와 무역과 기술 부문의 양국 협력강화 방안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공동의 우려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2023.03.20. AFP 연합뉴스

인도 "문제는 몇몇의 자비에 기대게 하는 경제적 집중"

먼저 서구 중심 국제 경제질서의 재편 문제는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이 제기했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브릭스는 "세계는 다극(多極)이고 균형의 재조정이 진행 중이며 낡은 방식으로 새로운 상황들을 타개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핵심은 수많은 나라가 몇몇 나라의 자비에 기대야 하는 경제적 집중"이라고 말해 세계의 부가 서구 선진국에 극히 편중된 현실을 비판했다. 나아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포함해 글로벌 의사결정 구조의 개혁을 촉구했다.

마우로 비에이라 브라질 외무장관도 가세했다. 그는 브릭스는 "개도국의 요구를 반영하는 다극적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데 필수불가결한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했다.

회의 직후 발표한 공동성명도 브릭스 외교장관들이 "유엔헌장의 원칙과 양립할 수 없고 누구보다 개도국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일방적 강압 조치들에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괘씸죄에 걸린 나라들을 상대로 일방적 제재를 '남발'한다는 공통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달러 지폐 묶음 옮기는 은행 직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달러 지폐 묶음 옮기는 은행 직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브릭스 은행, 달러 대안 도입 논의…자국통화 결제 추진

회의에서는 또한 '브릭스 은행'으로 불리는 신개발은행(NDB, 총재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에서 현재 국제무역에서 사용되는 미국 달러를 비롯한 서구 주요 통화의 '대안'을 도입하는 문제에 대해 브리핑이 있었다. 브릭스는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자 회원국 간 교역 시 자국 통화 결제를 적극 추진 중이다.

이와 관련해 공동성명은 "장관들은 브릭스 회원국 간은 물론 다른 교역 파트너들과의 무역·금융 거래에서 자국 통화의 사용을 권장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브릭스 '공동통화' 도입 문제는 개념적 수준에 머물고 있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달러 대안을 검토하는 목적에 대해 날레디 판도르 남아공 외무장관은 러시아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그들(미국 등 서방국)의 일방적 제재를 초래한 이슈와 전혀 상관없는데도 '2차 효과'로 인해 우리가 그 제재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하이에 본부를 둔 NDB는 개발도상국들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자는 취지에서 2015년 설립됐다. 초기 수권 자금은 1000억 달러였다. 서구의 이해를 반영한 IMF와 세계은행(WB)이 개발 프로젝트 진행 시 개도국에 가혹한 경제적, 정치적 조건을 내걸고 있다는 오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현재 회원국은 브릭스 5개국에 방글라데시, 이집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우루과이 등 9개국이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2일 열린 '브릭스 친구 회의'에 참석한 외교장관들 2023 06 02. 타스 연합뉴스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2일 열린 '브릭스 친구 회의'에 참석한 외교장관들 2023 06 02. 타스 연합뉴스

중국 "브릭스, 소수 배타적 모임과 대조"…G7 비판

브릭스 회원국 확대 문제도 핵심 주제 중 하나였다. 기존 회원국 모두가 찬성이었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을 대신해 이번 회의에 참석한 마자오쉬 외교부 부부장은 개도국과 신흥 경제에 대한 지원을 위해 회원국 확대를 지지한다면서 "브릭스는 포용적인 블록으로 일부 소수 국가의 배타적 모임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룰 것"이라고 말해 G7을 겨냥했다.

주목할 만한 이벤트는 2일 열린 '브릭스 친구 회의'다. 아프리카에서는 아프리카연합(AU) 의장국인 코모로와 이집트,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가봉, 부룬디, 기니바시우가 참석했다.

중동에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UAE, 아시아에선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그리고 중남미에선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쿠바 등이 초대받아 참석했다.

이 모임에는 브릭스 가입을 신청한 사우디와 이란, UAE 외에도 가입 의사를 직·간접으로 밝힌 나라가 다수 포함됐으며 그 밖에도 튀르키예와 바레인, 나이지리아, 알제리, 베네수엘라 등이 브릭스 가입에 관심을 보인 나라로 거론된다.

주브릭스 남아공 대사는 "20개 이상의 국가가 공식, 비공식으로 가입 의사를 밝힌 상태"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특히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와 이란, UAE의 공식 가입이 이뤄지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브릭스의 비중과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미국과 서방의 가속화하는 경제·압박에 노출된 중국으로선 '든든한 우군'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반색할 만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에서 5번째)이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세션에 참석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고 대러시아 제재 강화를 호소하기 위해 전날 일본을 방문했다. 2023.05.21. AF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에서 5번째)이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세션에 참석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고 대러시아 제재 강화를 호소하기 위해 전날 일본을 방문했다. 2023.05.21. AFP 연합뉴스

G7, 히로시마 정상회의부터 글로벌 사우스에 접근

G7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게 됐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식량 부족과 에너지난, 인플레와 달러 긴축에 따른 외환 위기 등을 겪게 된 글로벌 사우스 나라들에서 미국 등 서방 진영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마음이 점차 중국을 비롯한 브릭스 쪽으로 기울자 마침내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19~21일 히로시마에서 진행된 G7 정상회의가 그 첫 번째 이벤트였다. 과거와는 달리 G7 정상회의에 8개국을 초청했다. 한국과 인도, 호주, 동남아국가연합(ASEAN) 의장국 인도네시아, AU 의장국 코모로, 태평양도서국포럼 의장국 쿡아일랜드, 브라질, 베트남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보도에 따르면, 올해 G7 의장국이었던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 몇 달간 인도와 이집트, 모잠비크, 가나, 케냐, 싱가포르 등을 찾았고, 하야시 요시마사 외상은 중남미 지역을 돌았다.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국임을 자처하는 인도에 기시다는 지난 3월까지 4번이나 찾아가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만났다. '삼고초려'에 가까운 정성이 아닐 수 없다.

두 회의를 비교해 보면, 브릭스 원년 멤버인 브라질과 인도,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이집트, 코모로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모임에는 물론 이번 브릭스 외교장관희의에도 참석한 셈이다. 자국의 이익에 따라 양다리를 걸치는 나라들이 있는 것이다.

 

30일(현지시간) 브라질리아에서 개최된 남미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2023 05 30. AFP 연합뉴스
30일(현지시간) 브라질리아에서 개최된 남미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2023 05 30. AFP 연합뉴스

룰라 "이념 분열 끝내자…'남미국가연합 재건' 추진

G7과 브릭스와는 별도로 글로벌 사우스에 해당하는 남미 국가들의 독자적 결속 움직임도 가시화됐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주도해 그동안 '이념'에 따라 사분오열됐던 남미 국가들을 다시 묶어 남미국가연합(우나수르·UNASUR) 재건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30일 브라질리아에서 개최된 남미 12개국 정상회의가 그 첫 걸음이다. 룰라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념이 우리를 분열시키도록 방치했다"며 분열을 끝내고 다시 통합의 길로 나아가자고 호소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룰라는 중국, 러시아와 친밀감을 과시하면서 달러 의존도 축소의 선봉에 서 있기도 하다. 미국으로선 신경 쓰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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