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북대서양에 있어야"…도쿄사무소 개설 반대
마크롱 '국익 우선 외교'에 미국 난감, 중국 반색
프랑스가 끝까지 반대하면 도쿄 사무소 개설 불가
6월말 EU 정상회의, 7월초 프-독 정상회담 주목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국익 우선 외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이 서방 동맹국과 우방국들을 하나로 묶어 반중국 전선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미‧중 갈등 개입을 거부하고 있다.
'70년 동맹'이란 명분 아래 일방적 경제적 피해를 감수한 채 미국을 맹신하면서 반중 전선의 돌격대를 자청해온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번에 마크롱은 유럽의 군사협력기구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東進)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 미국의 글로벌전략에 따라 나토와 일본이 야심 차게 준비해온 나토 도쿄연락사무소 개설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으로선 펄쩍 뛸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가 끝까지 반대하면 도쿄 사무소 개설 불가
나토 관할 지역 밖의 외국에 사무소를 개설하는 사안은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북대서양위원회에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해 프랑스가 끝까지 반대하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작년 6월 마드리드 정상회의를 계기로 나토는 '글로벌 나토'를 내세우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진출을 꾀하고 있다. '명분'을 만들고자 기존의 러시아와 함께 중국도 '서구의 공동안보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대만과 남중국해 유사시를 염두에 둔 포석임은 물론이다.
나토는 또한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아시아·태평양 4개국을 끌어들이면서 미국과 합세해 군사‧안보 측면에서 대중 압박을 시도 중이다.
나토 도쿄 사무소는 바로 이들 나토 파트너국 정부 및 군과의 '접촉거점'이다. 중국이 '아시아판 나토'의 신호탄이라고 반발하는 것도 그래서다.
나토와 일본은 지난해 미국의 요구에 따라 5년 내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인상을 결정한 바 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어떤 나라는 입으로는 자유와 개방을 표방하고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수호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다양한 군사 블록을 구성하고 나토의 아시아‧태평양 동진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미국을 겨냥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앞서 한국은 지난해 11월 나토 브뤼셀 본부에 대표부를 개설했으며, 일본도 대표부를 개설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7월 리투아니아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할 말은 하는' 마크롱, 나토가 왜 동쪽으로 가나?
나토가 '왜 동쪽으로 가야 하는가'라는 게 마크롱의 문제 제기다. '러시아(구소련) 억제'란 창설 목적과 '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이름에 맞게 북대서양 지역 안보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그래서 그 범위를 아시아‧태평양으로 확장하는 일은 잘못이라고 여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주 한 콘퍼런스 연설에서 나토의 지리적 범위를 "북대서양" 너머로 확장해선 안 된다면서 "만일 나토를 압박해 그 범위와 지리를 확장하도록 한다면 우리는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6일 자 보도 내용이다.
실제로 대서양조약(1949년)을 보면, 제 5조(집단방위)는 그 범위를 '북대서양지역'(North Atlantic area)으로 한정하고 있고, 제 6조에는 집단방위의 책임 범위를 '유럽과 북미, 튀르키예, 북회귀선 북부의 대서양 도서에 위치한 회원국 영토에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3일 유럽과 아시아는 "서로의 안보에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다"고 말했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지난주 "아시아의 일은 유럽에 중요하고 유럽의 일도 아시아에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마크롱 '국익 우선 외교'에 미국 난감, 중국 반색
마크롱이 '지리적 범위'를 들어 반대했지만, 속내는 격렬해지는 미‧중 갈등, 특히 긴장이 고조되는 대만 관련 싸움에 끌려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FT에 따르면 나토 내부의 논의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프랑스가 "나토와 중국 간 긴장을 초래하는 것"은 모두 꺼린다고 말했다.
앞서 마크롱은 지난 3월 중국 국빈 방문 기간에 동행 취재하던 폴리티코 등과의 인터뷰에서 지론인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역설했다.
인터뷰에서 마크롱은 "유럽은 미국 의존도를 줄여 대만 관련 미‧중 대립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두렵다고 우리가 미국의 추종자일 뿐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압박이 무서워 억지로 대만 문제에 끼어들게 되면 '속국'이 될 수 있다고까지 했다.
당시 이 발언을 두고 미국과 나토는 물론 유럽연합(EU), 독일에서도 날 선 비판들이 나왔다. 그러나 마크롱은 네덜란드를 방문 중이던 4월 12일 "동맹이 된다는 것이 우리 스스로 생각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동맹이 곧 속국"은 아니라고 한술 더 떴다.
나토 도쿄 사무소 개설에 프랑스가 반대한다는 보도에 대해 나토는 "계속 검토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관련 언급을 피했고,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나토 내에서 다양한 고려 사항이 검토되고 있다. 예단해 언급하는 걸 삼가하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중국은 반색하고 나섰다. 왕원빈 대변인은 6일 브리핑에서 "대부분의 역내 국가들은 지역에서 각종 군사 집단을 만드는 것에 반대하며, 나토가 그 촉수를 아시아로 뻗치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국 관영지 글로벌타임스는 마크롱의 나토 동진 반대가 미국에 불만을 지닌 다른 유럽국을 대변한 "분별 있고 용감한" 행동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6월말 EU 정상회의, 7월초 프-독 정상회담 주목
마크롱 대통령의 향후 행보도 주목거리다. 마크롱은 엘리제 조약 60주년을 맞이해 다음 달 2~4일 프랑스 대통령으로선 23년 만에 독일을 국빈 방문한다.
엘리제 조약은 1963년 1월 22일 프랑스와 독일이 긴 세월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을 위해 맺은 조약이다.
그는 독일 방문 기간에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한편 올라프 숄츠 총리와도 회동해 유럽과 글로벌 현안에 관해서도 논의한다.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EU의 쌍두마차인 프랑스와 독일이 미‧중 패권 경쟁에서 포지션을 어디에 정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여서다.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의 줄서기 압박에 거리를 두고 대중국 정책과 관련해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기로 합의할 수 있느냐가 초점이다.
바로 직전인 6월 말에는 EU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다. 이 자리에서 27개 회원국의 다양한 입장을 추슬러 EU의 단일한 대중국 전략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
지난달 12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EU 외교장관이사회에서는 △ 선별적 디커플링(공급망 배제) △ 대만 유사시 관여 △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철수 요구 등이 담긴 대중국 전략문서 초안을 돌렸다. 단일한 전략을 채택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이 초안의 내용이 어느 정도 변경될지 등도 국제적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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