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납북자 문제, 한국 반대 잠재울 '신의 한 수'

일본, 남북한 분리 대응…한반도 문제 개입 신호탄

북한은 정찰위성 발사 계획 일본 통보 '남한 패싱'

윤 정부, 대미‧대일 올인 외교 한계…남북 소통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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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악수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전날 화상 브리핑을 통해 이번 회담에서 3국의 군사 협력 강화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대응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2023.05.21. AP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악수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전날 화상 브리핑을 통해 이번 회담에서 3국의 군사 협력 강화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대응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2023.05.21. AP 연합뉴스

우려했던 일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친일' 윤석열 정부를 활용해 '목의 가시'와도 같았던 불법적 강제동원(징용) 등 일제의 전쟁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받은 일본 정부가 교전권을 가진 공격적 군사 대국화를 다그치는 한편, 한반도 문제에는 미국의 '후견' 아래 한국을 제치고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상황 말이다.

그 신호탄이 바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전격적인 북‧일 정상회담 제안이다. 북한은 일단 일본인 납북자 문제 등과 관련한 '일본의 변화'를 요구했지만, 외무성 부상의 담화를 통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매우 이례적일 만큼 신속히 '화답'하는 모양새다.

윤 정부가 출범 이후 '힘의 의한 평화'를 내세우며 역대급 한미 연합연습 등 극단적 남북 대결로 치닫는 것과 맞물려 북한이 대남 소통 채널을 전면 차단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기시다가 북‧일 정상회담을 제안한 계기는 지난 27일 일본인 납북자의 귀국 촉구 국민 대집회에서였다. 여기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조기에 실현하기 위해 북한과 고위급 협의를 갖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납북자 문제' 해결을 회담 추진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다.

'조건부 수용'을 내비친 북한 담화를 접한 기시다는 "직접 맞선다는 각오로 납북자 문제에 임해왔고, 이를 구체적으로 진전시키고자 한다"고 말해 몸소 나서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북한 김정은, 딸 주애와 '군사정찰위성 1호기' 시찰.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자료사진] 
북한 김정은, 딸 주애와 '군사정찰위성 1호기' 시찰.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한국 반대 잠재울 '신의 한 수'

납북자 문제는 북‧일 관계 정상화의 1차 장애물이다. "납치 문제 해결 없이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는 없다"는 게 역대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일본 정부는 1970∼1980년대 일본인 17명이 북한으로 납치됐으며, 그중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방북 후 일시 귀환 형태로 귀국한 5명을 제외한 12명이 여전히 북한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문제의 12명 중 8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아예 북한에 온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지금은 풀어야 할 납치 문제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외무성 담화에서 일본이 전제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납치 문제와 북한의 자위권을 놓고 문제 해결 운운한다"면서 그런 식이면 "괜한 시간 낭비"라고 말한 데서 북한의 입장을 엿볼 수 있다.

'남은 12명의 납북자' 문제는 일본과 북한이 다투면 될 사안이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기시다가 북‧일 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내세웠느냐다.

일본 국민을 상대로는 정부가 자국민 보호를 위해 '가해자'인 북한과의 만남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연출하고, 이 사안을 명분으로 북한과 만난다면 한국이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계산했음 직하다. 납북자 문제는 한국을 우회해 공개적으로 북한과 만날 수 있는 '신의 한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육군3공병여단과 미2사단/한미연합사단 예하 공병대대가 6일부터 17일까지 경기도 연천군 일대 훈련장에서 실시중인 FS/TIGER 연합도하훈련에서 연합장비 및 차량이 연합부교를 이용해 강을 건너고 있다. [육군 제공] 연합뉴스
 육군3공병여단과 미2사단/한미연합사단 예하 공병대대가 6일부터 17일까지 경기도 연천군 일대 훈련장에서 실시중인 FS/TIGER 연합도하훈련에서 연합장비 및 차량이 연합부교를 이용해 강을 건너고 있다. [육군 제공] 연합뉴스

서울 정상회담 내내 '납북자 리본' 단 기시다

총리 취임 후 지난 7일 처음으로 방한한 기시다는 '납북자 구출 운동'을 상징하는 푸른 리본을 가슴에 달고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했으며, 뒤이은 한일 정상회담과 공동기자회견 자리에서도 떼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이 문제를 부각하고자 정교하게 '복선'을 깐 셈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의 노력을 다시 한번 지지했고, 기시다는 사의를 표했다. 이렇게까지 말한 마당에 기시다가 납치 문제를 풀고자 북한과 만난다고 할 때 윤 대통령으로선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북‧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고위급 협의'가 언제, 어떻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향후 교섭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어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멀지 않아 '교섭'이 있을 것임을 내비쳤다.

또하나 주목할만한 일이 있다. 북한이 29일 군사 정찰위성 발사 계획을 국제해사기구(IMO)와 일본에 먼저 통보한 부분이다. 윤 정부는 통보를 직접 받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북 소통 채널이 단절된 상황에서 일본과 북한은 물밑에서 소통해오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019년 6월 판문점 회동 장면(연합뉴스) 2021.5.12 [외국문출판사 화보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019년 6월 판문점 회동 장면(연합뉴스) 2021.5.12 [외국문출판사 화보 캡처.

일본, 남북한 분리 대응…한반도 문제 개입 신호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북한과 일본이 고위급 협의에 이어 정상회담을 향해 속도를 높이면 한국은 '소외'될 우려가 크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언제가 됐든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납북자 문제는 물론, 북한의 핵‧미사일, 양국 경제협력, 일본의 식민지 배상과 국교 정상회 등과 같은 수많은 광범위한 문제들이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북‧일이 다룰 의제들은 모두 한국의 운명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그런 점에서 자칫 한국의 운명을 북한과 일본에 내맡기는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 막상 이런 상황이 현실화한다면 윤 정부는 북‧일 간의 협상 진행 상황을 일본으로부터 '귀동냥'을 해야 하는 '외통'으로 내몰린다.

기시다 정부는 그랜드 디자인에 따라 치밀하게 움직인다고 봐야 한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후견 아래 중국과 맞서는 동아시아의 맹주로 우뚝 서는 그림이다. 북‧일 정상회담 제의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납북자 문제에서 출발하지만, 미국을 대리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도 직접 관여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확보해 나가는 시나리오다.

이 과정에서 일본이 당연히 '사전에' 한국과 긴밀하게 협의할 것으로 윤 정부는 기대하겠지만, 실망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북한과 협상하면서 필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에 한해서 협의하고 기본적으론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독자적으로 움직일 것이란 얘기다.

 

29일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하마기리 함이 다국적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욱일기의 일종인 자위함기를 게양한 채로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했다. 한국 정부가 주최하는 다국적 훈련(이스턴 엔데버 23)은 한국, 미국, 일본, 호주 등이 참여한 가운데 31일 제주 동남방 공해상에서 열린다. 2023.5.29 . 연합뉴스
29일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하마기리 함이 다국적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욱일기의 일종인 자위함기를 게양한 채로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했다. 한국 정부가 주최하는 다국적 훈련(이스턴 엔데버 23)은 한국, 미국, 일본, 호주 등이 참여한 가운데 31일 제주 동남방 공해상에서 열린다. 2023.5.29 . 연합뉴스

윤 정부, 대미‧대일 올인 외교 한계…남북 소통 시급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한국의 북한 지역에 대한 '영토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영토고권은 영토 안의 모든 사람과 물건에 대한 지배권으로 영공과 영해에도 미친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돼 있지만,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북한을 한국과는 별개의 나라로 본다는 얘기다.

지금처럼 남북 간 소통이 단절된 채 극한 대치를 이어가면 남북 모두 '루저'가 된다. 일본은 남북한을 '대치'시켜 놓고 자국의 필요에 따라 양쪽을 적절히 밀고 당기면서 관리해 나가는 '분할 지배'(divide and rule) 전략을 구사할 개연성이 높다.

과거 일제 강점기 때와 마찬가지로 일본이 남북한과 한반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남북 모두 한반도 문제의 '주인'으로서 지금이라도 소통 채널을 가동해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무한한 '선의'를 가지고 일제의 과거사 족쇄를 풀어준 뒤, '북한-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과 싸우는 최전선에서 '자유의 전사'로 좌충우돌하고 있을 때 일본은 겉으론 강경한 척하지만, 뒤로는 다양한 소통 채널을 유지하며 국익을 챙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라도 윤 정부는 북‧일 정상회담 제의에 담긴 기시다의 '의도'를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아무리 잘 해줘도 대등한 파트너가 아닌 '종속 변수'로 여긴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가치 외교'와 '자유'를 내걸고 대미, 대일 관계에 '올인'하는 단선적 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맹'이라고 알아서 상대방의 '국익'을 챙겨주지 않는 게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적은 위험하다. 그러나 미국의 친구는 치명적이다." 국제외교가에서 전설적 인물로 통하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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