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 전야 같아…3차 대전까지 5∼10년 남아"

미국·중국·유럽·인도 '4대국 세계 질서' 구축 제안

키신저 "공존 원하면 중국 체제 교체 추구 말아야"

'한계 없는' 군사용 AI…"미·중 AI 군축 대화해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키신저 전 장관이 2020년 1월 21일 독일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에서 열린 아메리카 아카데미 어워드 시상식에 참석한 모습. 2023.01.12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키신저 전 장관이 2020년 1월 21일 독일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에서 열린 아메리카 아카데미 어워드 시상식에 참석한 모습. 2023.01.12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리는 어느 쪽도 정치적으로 양보할 여지도 없고 그래서 평형 상태를 흔들기만 하면 파국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고전적인 제1차 세계대전 전야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양쪽 모두 상대가 전략적 위험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강대국 간 대결의 길을 가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최근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인류의 운명은 미국과 중국의 공존 여부에 달려 있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AI)을 감안하면 돌파구를 찾는데 5∼10년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제3차 세계 대전을 경고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테크놀로지와 경제 부문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려는 미·중의 경쟁이 갈수록 격렬해지는 점을 거론한 뒤 AI가 미·중 대결을 더욱 부채질할 것을 우려했다.

오는 27일로 100세를 맞이하는 그는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그 후임 제럴드 포드 대통령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을 지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외교 고문, 특사 등을 맡는 등 국제외교가에서 전설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971년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해 당시 저우언라이 총리와 관계 개선을 논의했고 마침내 1979년 미·중 수교를 이뤄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키신저 "미·중, 인류 평화에 최대 위험 요인"

키신저 전 장관은 "중국과 미국이 전면전의 위협이 없는 공존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당면 현안인 대만과 우크라이나 전쟁, AI 등의 문제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가장 시급한 현안으론 대만 문제를 꼽았다. 그는 언제 무력 충돌을 빚을지 모를 만큼 대만 상황이 악화된 주된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1972년 당시 닉슨 대통령이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마오쩌둥 국가주석과 '100년' 간은 현상을 유지하기로 일정한 양해가 있었지만, 50년 만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에서 중국의 양보를 얻어내고자 그것을 뒤집었고, 조 바이든 대통령도 표현은 다르지만 트럼프를 따르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우크라이나식 전쟁이 벌어지면, 대만은 파괴되고 세계 경제는 황폐해지고, 중국 역시 비용을 치르면서 내부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현실적 타개책으로 미·중 양국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점진적으로 신뢰와 실무적인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미국 대통령이 중국 국가주석에게 불만 사항을 나열하지 말고 "우리는 인류를 파괴할 능력이 있는 만큼 지금 평화의 최대 위험 요인은 우리 둘"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중 양국은 기존의 대만 관련 입장을 견지하되, 미국은 병력 배치에 신중을 기하고 대만 독립을 지원한다는 의심을 사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죽음의 백조' B-1B 2대가 참가한 한미 연합공중훈련. 2023. 03.19 [미 태평양공군] 시민언론 민들레
'죽음의 백조' B-1B 2대가 참가한 한미 연합공중훈련. 2023. 03.19 [미 태평양공군] 시민언론 민들레

키신저 "공존 원하면 중국 체제 교체 추구 말아야"

키신저는 미국이 중국과 공존하고자 한다면 '체제 교체'(regime change)를 추구해선 안 된다면서, 일각에서 중국이 패배하면 민주주의적이고 평화적인 체제가 될 것이라 믿지만, 자신은 그런 전례를 본 적이 없고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면 내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중국을 몰아붙여 해체하는 게 미국의 이익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파국을 일으킨 판단 실수"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보호 계획도 마련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문을 열어 놓은 점을 거론하며 서방에도 책임을 물었다. 또한 키신저는 "우크라이나는 가장 전략적 경험이 부족한 지도부를 가진, 세계 최고로 무장한 나라가 돼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중 양국이 대화해야 할 중요한 분야로 AI를 꼽았다. 그는 "우리는 전례 없는 파괴의 세계에 살고 있다"며 "군사 역사를 보면 지리의 한계, 정교함의 한계 등으로 모든 적을 완파할 능력이 있었던 적이 없다. 이제는 그런 한계가 없다. 모든 적은 100%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23일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찍은 고도의 인공지능 ChatGPT와 운용회사 오픈AI 로고. 2023.01.23. AFP 연합뉴스
지난 1월 23일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찍은 고도의 인공지능 ChatGPT와 운용회사 오픈AI 로고. 2023.01.23. AFP 연합뉴스

'한계 없는' AI 군사적 활용…"미·중 AI 군축 대화해야"

키신저는 지금 AI를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미·중 양국이 억지력의 수단으로 일정 정도 AI의 능력을 군사적으로 활용하되, AI가 초래할 위협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핵군축과 유사하게 AI 군축을 위한 걸음마를 떼야 한다고 제안했다.

키신저는 미국 외교의 문제점도 비판했다. 그동안 미국은 모든 주요 대외 개입을 세계를 '자유롭고 민주적인 자본주의 사회'라는 자신의 이미지로 세계를 개조해야 하는 운명의 표현으로 묘사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도덕적 원칙들이 이익을 짓밟는 일이 너무 잦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인권을 예로 들었다. 인권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대외 정책의 중심이 되어선 안 되며, 다른 나라에 인권을 강요하는 것과 인권을 침해하면 우리(미국)와의 관계가 나빠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히로시마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2023 05. 19 [AP 연합뉴스]
히로시마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2023 05. 19 [AP 연합뉴스]

미국·중국·유럽·인도 '4대국 세계 질서' 구축 제안

키신저는 실용주의를 강조하며 인도를 예로 들었다. 그가 만났던 인도 정부의 한 고위 인사는 외교 정책의 경우 한 나라를 거대한 다자 구조에 묶어 놓기보단 현안들에 따라 '비영구적 동맹'(non-permanent alliances)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인류 역사를 보면 무시무시한 충돌 후에 진보가 이뤄지는 사례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의 미·중 대결은 그 성격이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런 두 강대국의 대결은 군사적 충돌을 낳지만 미·중 대결은 "상호 확증적 파괴와 AI를 보면 지금은 보통 상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바람직한 세계 질서와 관련해 키신저는 "(미국에) 유럽과 중국, 인도가 합류할 수 있는 룰에 기초한 세계 질서를 창조하는 게 가능하다"며 "그 실용성에 주목한다면 그 결과는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파국 없이 끝나고 진보를 이뤄낼 수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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