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84%는 병립형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한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지난 5월 17일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선거제개편 공론화 500인 회의가 학습숙의과정 전후에 두 차례 실시한 선거제 관련 설문조사의 총 20개 문항과 조사결과를 전면 공개했다. 지난 13일 공론화회의 종료시점에 5개 핵심문항과 조사결과를 공개한 데 이어 숙의전후 조사결과 전부를 20장의 비교표에 담아 보도자료 형식으로 공표한 것이다. 숙의 전 설문조사는 막 구성이 완료된 500인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5월 1일과 2일 양일에, 숙의 후 설문조사는 5월 13일 모든 숙의토론이 종료된 후 현장에서 실시됐다. 시민참여단 500인 가운데 1, 2차 설문조사와 학습숙의과정에 모두 참여한 469인의 응답결과가 집계됐다.

선거제개편 설문조사결과, 두 개의 상반된 큰 그림

국회 정개특위의 보도자료는 “국민 84%,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를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판단해서 큰 제목으로 뽑고 바로 아래에 핵심적인 조사결과라고 판단하는 3개를 작은 제목으로 열거했다. 첫째, “비례대표 의원 수 확대의견은 숙의 전 27%에서 숙의 후 70%로 43%p 증가”; 둘째, “의원정수에 대한 의견은 현행유지 29%, 축소 37%, 확대 33%로 나타나”; 셋째, “중대선거구제보다 소선거구제 선호가 두텁게 나타났으나 도농복합형 선거제도는 과반수가 찬성”이 그것이다. 의원정수는 지금처럼 300석으로 묶어두되 비례대표 의석을 다만 몇 개라도 늘리고 도농복합안으로 가자는 것이 공론화로 확인된 국민의 뜻이라는 것이다. 국회정개특위의 의도와 지향을 잘 드러내는 보도자료 편집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내가 제목을 뽑았다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현행 연동형비례대표제 유지·강화 의견이 과반수(52%)로 병립형 회귀의견(41%) 눌러”를 큰 제목으로 올리고 소제목 3개를 첫째, 소수대표가 용이하도록 권역단위 비례대표제보다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를 과반수(58%)가 선호; 둘째, 비례대표 의원 수 확대에 압도적 과반수(70%)가 찬성하며 축소의견(10%) 쏙 들어가; 셋째, 의원세비 등 감축 시 의원정수 확대에 과반수(55%) 찬성으로 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설문조사 결과로 확인된 국민의 뜻은 의원세비와 보좌진을 줄여서 의원정수를 늘리되 모두 비례대표로 채우고 현행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살리라는 것이다. 동일한 설문조사 결과를 갖고도 무엇을 보고 싶은지에 따라 그림이 이렇게 달라진다.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시민참여단 선거제도 개편 공론조사에서 참여자들이 분임 토의를 하고 있다. 2023.5.6. 연합뉴스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시민참여단 선거제도 개편 공론조사에서 참여자들이 분임 토의를 하고 있다. 2023.5.6. 연합뉴스

국회정개특위의 해석, 원점부터 틀렸다

이쯤에서 어떤 그림이 전체적으로 사실에 더 부합하는지 궁금해 할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국회 정개특위 그림이 틀린 그림이다. 원점에서부터 틀렸다. 국회 정개특위는 이번 공론화 작업의 제일 큰 성과로 “국민 84%,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조사결과를 꼽는다. 국민의 84%가 개편대상이라고 입을 모았다는 나쁜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와 결합된 연동형비례대표제, 즉, 2020년 개정선거법의 국회의원선거제도라는 것이 국회 정개특위의 해석이다. 국회 정개특위는 그래야만 선거제개편 논의를 새롭게 진행할 정당성을 획득하고 그래야만 도농복합안으로 개편할 정당성도 획득한다. 그러나 정개특위의 해석은 틀렸다. 국민의 84%가 개편필요를 체감한 선거제도는 지난2020년 총선 때도 적용된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가 병립해온 혼합선거제도다.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설문조사 문항 3번, “지금 시행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는 “지금 시행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냐고 묻는데 “지금 시행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라는 표현을 듣고 500인 시민참여단이 떠올린 선거제도가 무엇인지가 관건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 시행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2020년 개정선거법의 혼합식 50% 연동형비례대표제이지만, 바꿀 필요가 있다는 측이나 없다는 측이 떠올린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과연 2020년에 도입되었다가 위성정당에 의해 무력화돼 아직까지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혼합식 50% 연동형비례대표제인지는 불분명하다. 아니다. 내가 너무나 방어적으로 표현했다. 실제로는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아니라는 것이 매우 분명하고 확실하다. 시민참여단은 ‘현재 시행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문항을 ‘253석 소선거구제와 47석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로 운영돼온 2020년 개정선거법 이전의 병립형 선거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느냐’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100%다.

국민 84%가 바꾸자는 선거제도, 연동형이 아니고 병립형이다

2020년 개정선거법의 혼합식 50%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 대비 초과의석은 그대로 둔 채 부족의석에 한해서만, 그것도 50%만, 보충해준다는 의미에서 이중제약이 붙은 불완전한 연동형비례대표제다. 그럼에도 현행 혼합식 50% 연동형비례대표제는 253개 소선거구를 유지함으로써 국회의원의 책임성은 책임성대로 확보하면서도 병립형비례대표제를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일대 전환함으로써 선거결과의 대표성과 비례성, 다양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선거제 개혁의 최고봉이었다. 1987년 민주화 개헌 이래 이만큼 중대한 정치개혁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국회 정개특위의 해석이 맞는다면 시민참여단의 절대다수(84%)가 16시간의 학습숙의과정을 거치고 나서도 위의 의미를 모른 채 혼합식 50% 연동형비례대표제가 개혁대상이라는 거짓주장에 현혹됐다는 뜻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국민의 학습능력과 집단지성이 그 정도도 분간하지 못할 만큼 수준이 낮지 않다. 시민참여단은 16시간의 학습숙의과정을 거치면서 전문가그룹이 선거제도의 3대원칙이라고 정식화한 대표성과 비례성, 책임성 원칙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현행 혼합식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게 쉽지 않았다. 2020년 개정선거법의 혼합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유리하게 바뀐 숙의 후 설문조사결과들이 그 증거다. 첫째, 비례대표의석을 늘리자는 데 압도적 과반수(70%)가 찬성한 조사결과, 둘째,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를 해야 한다는 데 과반수(58%)가 찬성한 조사결과, 셋째, 의원지원액 동결로 증원비용을 충당할 경우 의원정수 확대에 과반수(55%)가 찬성한 조사결과, 넷째, 현행법의 연동률을 지금처럼 50%로 유지하거나 더 늘려야한다는 데 과반수(52%)가 찬성한 조사결과는 하나같이 국민의 84%가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바꾸자는 데 공감했다는 국회 정개특위의 독단적 해석이 틀렸다고 말해준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500인 시민참여단의 84%가 2020년 개정선거법의 50%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바꾸자는 주장에 동의했다는 국회 정개특위의 해석은 위와 같이 과반수 의견으로 비례성을 강화하자는 설문조사결과들과 양립할 수 없다. 숙의 후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과거의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는 입장은 41%밖에 되지 않고 52%는 2020년 개정선거법의 비례성을 유지하거나 더 강화하자는 입장이다. 나아가서 55%는 의원세비와 보좌진인건비를 축소한다면 그만큼 의원정수를 늘려도 좋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볼 때 500인 시민참여단이 바꿀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 선거제도는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아니고 지금까지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정치문화를 만들어낸 병립형비례대표제다. 거대양당과 현역의원의 기득권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국회(정개특위)가 기득권에 눈이 멀어 헛다리짚었다.

숙의 전에도 현재 시행되고 있는 선거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무려 77%에 달했다는 사실도 우리의 해석을 지지한다. 아직 공식적인 학습숙의과정이 시작하기도 전에 평범한 일반시민의 77%가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선거제도가 과연 거대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즉시 망가뜨린 탓에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현행 50% 연동형비례대표제였을까? 아닐 것이다. 일반시민들은 지난 총선에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동형비례대표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시민들의 77%가 고쳐야한다고 믿은 선거제도는 지난2020년 총선을 포함해서 오랫동안 경험했던 소선거구(84%)+비례대표(16%) 병립형 선거제도임에 틀림없다. 일반시민들도 지금처럼 소선거구 중심 병립형 선거제도를 지속해서는 무조건 반대만 일삼는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정치를 극복할 길이 없다는 사실에 이미 눈 뜬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숙의자료집의 수상한 현행연동형 언급회피, 이유는?

2020년 개정선거법의 혼합식 50%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숙의자료집에서도 전혀 설명대상이 아니고 다시 되살릴 길이 없는 좀비처럼 취급된다. 숙의자료집은 2020년 개정선거법의 혼합식 50%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어떤 장점을 기대하고 입법되었으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2020년 개정선거법이 위성정당으로 무력화되었지만 엄연히 현행법으로 살아있다고 밝히지도 않는다. 위성정당금지조항을 입법해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살릴 경우 선거제의 3대원칙에 비춰볼 때 많은 장점이 있다고 알려주지 않는다. 숙의자료집을 다 읽고 나도 현행법상의 선거제도가 무엇이며 무엇이 문제라서 선거제개편 논의를 하는지가 전혀 뚜렷하지 않다.

실은 위성정당금지조항을 신설해서 거대양당의 위성정당만 막으면 현행선거제도를 써보지도 않고 다시 바꿔야 할 문제가 딱히 없다. 전문가그룹이 내놓은 선거제평가 3대원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국회전원위에서 다뤄지고 설문조사 문항에도 들어간 3개의 선거제 개편방안은 현행법의 혼합식 연동형비례대표제보다 나을 게 없다. 문제는 현행법의 연동형 혼합선거제도를 부각시킬수록 선거제 개편을 추진할 명분과 이유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여야 지도부와 국회 정개특위의 딜레마였을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든 현행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사문화된 법으로 폐기하고 현행 연동형 선거제도에 비해 거대양당의 기득권을 덜 침해하는 새 선거제도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런데 현행법의 소선거구 기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미흡할지언정 대표성, 비례성, 다양성 강화효과가 확실하고 책임성에서도 소선거구를 그대로 두기 때문에 흠잡을 수 없다. 숙의자료집이 2020년 개정선거법의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매우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시야에서 가급적 배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무엇을 할 것인가?

위에서 몇 가지 근거를 댔듯이 시민참여단의 84%가 바꿀 필요가 있다고 응답할 때 떠올린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로 253명을 뽑고 나머지 47명만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제로 뽑는 2020년 이전의 혼합식 병립형비례대표제로 봐야 정확하다. 개탄스럽게도 국회정개특위는 거꾸로 해석한다. 국민의 84%가 병립형비례대표제를 고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이번 공론화 조사결과를 얼토당토않게 2020년 개정선거법의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바꾸자는 압도적인 국민의사로 홍보하며 2020년 개정선거법을 폐기하고 거대양당에 유리한 선거제개편을 합리화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요컨대, 국회 정개특위의 설문조사결과 해석은 출발점부터 잘못됐다. 국민들은 학습과 숙의를 거치면서 과반수가 현행 연동형선거제도를 지지하게 된 것이 분명한데도 국회 정개특위는 거대양당과 현역의원의 기득권유지차원에서 현행 연동형선거제도를 버릴 결심을 굳혔기 때문에 공론화조사결과를 아전인수 격으로 잘못 해석했을 것이다. 문제는 국회 정개특위의 잘못된 공식해석이 현재의 정치적 역학구도와 이해관계로 뒷받침되기 때문에 향후 국민의 뜻으로 둔갑해서 입법추진지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국회 정개특위는 거대양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거대양당의 기득권 침해요소가 다분한 현행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되살리지 않고 거대양당의 기득권 강화에 유리한 도농복합안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선거제개편이 이런 경로를 밟게 된다면 거대양당, 특히 민주당이 힘의 논리와 이익의 논리를 추종하며 깨어있는 국민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잘못 해석된 국민의 뜻을 빙자한 도농복합안을 저지하고 이번 설문조사결과로 확인된 숙의시민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시민사회가 고강도 비상을 걸어야 할 때다. 이번 공론화 설문조사결과로 드러난 숙의시민의 뜻은 의원특권 해소를 전제로 의원정수를 확대하고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서 소선거구와 결합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실시하라는 것이다. 국민의 뜻이 드러났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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