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당제 기반 넓히자'는 취지 이론적으로 맞지만
21대 민주당 표로 당선된 시대전환 '어깃장 행보'
차기 국회서도 유사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 없어
개혁입법 위한 민주당 다수 의석 확보가 중요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3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선거 제도 개혁’을 통한 정치 개혁을 주장했다. 현행 선거법에서 비례성을 강화해 다당제 기반을 넓혀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러나 이 의원의 주장이 이론적으로 맞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개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21대 국회에서 드러난 연동형 비례제의 양상이 보여주고 있다.
이 의원은 “선거법 협상이 돌고 돌아 한 가지 쟁점으로 좁혀졌다”면서 “촛불 이전의 병립형 선거제 또는 현행 연동형 비례제에서 비례 위성정당만 금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선거법 개악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자고 한다”면서 “양당 카르텔과 기득권을 지키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정치 개혁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 “(민주)당도 스스로 기득권이 되었다는 오명을 벗고, 대한민국도 증오 정치로부터 벗어나는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의 주장은 정치학 교과서적이며 옳은 지적이다.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이보다 더 훌륭하기 어렵다. 당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021년 11월 “위성정당 창당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데 대해 당의 후보로서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면서 ‘위성정당 방지법’ 도입을 약속했다.
그런데 21대 국회를 거치면서 ‘연동형 비례제’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다른 정당에 투표했다가 이들의 의견이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보다 더 민의를 잘 반영하기 위해 비례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했는데 실상은 반대로 민의를 왜곡한 것이다.
통계적으로 정확한 규모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에 비례 대표는 정의당에 표를 준 상당수 유권자가 있었다. 정의당에 준 1표의 의미는 진보적 견인의 의미가 컸다.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에 대해서는 ‘1표라도 더 얻어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의 차이’를 인식한다는 의미의 투표였다. 그런데 민주당 계열 정당이 늘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개혁 의제에 대해 국민이 몰아 준 힘을 통해 과단성 있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봐 왔다. 그래서 정의당과 같은 진보 정당을 통해 민주당을 보다 선명한 개혁 노선으로 견인하려는 목적에서 비례는 정의당에 투표한 것이다.
그런데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이 보여준 모습은 이러한 투표자의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에 대해 당론으로 가결을 정한 뒤 영장이 기각되자 ‘한동훈 검찰 책임론’을 제기하며 태세 전환했다. 앞서 김건희 특검법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지역구 민주, 비례 정의> 투표 계층은 민주당에도 실망한 적이 있지만 민주당보다 정의당에 실망한 적이 훨씬 많았다.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는 더불어시민당에 투표한 유권자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시민당은 사실상 민주당의 위성정당이었지만 다른 군소 정당과 함께 구성한 연합정당이었다. 이 가운데 시대전환이 있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그를 원내에 진입시킨 유권자들의 뜻과는 다르게 의정활동을 했다. 현재 국민의힘 입당론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 사례까지 밝히지는 않겠다.
만약 위성정당이 없는 연동형 비례제가 된다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비례표를 사표로 만들지 않기 위해 민주당이 아닌 다른 정당에 투표해야 할 것이다. 현재 민주당 지지층에서 거론되는 정당은 기본소득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등이다.
이들 정당이 현 집권 세력에 반대하는 야당으로서의 포지션에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민주당과 정서적 일치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 22대 국회에서 야권이 다수 의석을 차지해 주요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한다면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20대 국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의 입법 과정을 기억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과 민주당이 협력해 소위 '4+1 협력체'를 통해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여러 정당이 협의하는 과정에서 법안이 많이 약화됐다. 만약 민주당이 거대 의석을 가진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추진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공수처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
22대 국회는 여러 산적한 개혁 현안을 갖고 있다.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개혁 성과를 내려면 민주당이 ‘영끌’로 한 석이라도 더 확보하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일부 의원들은 강서구청장 선거 이후 민주당 총선 승리에 대한 기대감에 도취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발 끈을 동여매고 사력을 다해 뛰지 않으면 질 수도 있는 것이 총선이다. 특히 기본소득당, 진보당, 사회민주당이 핵심 개혁 의제 논의에서 다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21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민주당 지지자가 찍어준 표로 국회의원이 된 뒤에 이와 다른 행보를 보이는 ‘민심 왜곡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탄희 의원이 ‘촛불 이전’의 제도라고 명명한 병립형 제도의 관철을 주장하는 이유다.
이 의원은 또 ‘증오 정치’를 언급했다. 증오 정치는 양당제가 다당제로 변한다고 갑자기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강조하는 ‘힘에 의한 평화’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 상대방 진영의 반격이 두려워 상호 간에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힘에 의한 평화’다. 누가 집권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22대 국회에서는 개인에 대한 보복성 인적 청산 보다는 보수와 진보 진영 집권 시 힘의 균형을 맞추는 제도와 시스템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진정한 ‘증오 정치’의 청산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거시적 역사를 조망하면 지금 아직 ‘촛불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2016년 촛불 혁명 이후 문재인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내 이에 대한 ‘반동’ 또는 ‘대당’ 권력인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22대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점하게 된다면 가장 중요한 작업은 대당 권력에 의해 되돌려진 ‘미완의 촛불 혁명’을 마무리하며 정권 교체를 예비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당제 실현을 위한 선거 제도 개혁보다 우리 국민의 삶에 더 절박한 과제일 것이다. 이탄희 의원의 말처럼 “스스로 기득권이 되었다는 오명”이라고 여기지 말고 민주당은 과감한 개혁을 위해 병립형 선거제를 관철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PC)’은 “내가 옳았다”는 자기만족의 수준이 아니라 권력 투쟁을 뚫고 실현될 때만이 그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 본 기자 칼럼은 기자 개인의 의견으로 시민언론 민들레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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