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선거제개편 딜레마와 탈출구 ②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김진표 국회의장은 도시지역은 중선거구로 바꾸되 농촌지역은 소선거구를 유지하자는 이른바 도농복합안의 뒷배라고 알려졌다. 그는 국회전원위가 끝나고 나서 “여야를 초월해서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고, 지역소멸에 대응하며,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선거제개편을 해내야 한다는 공감대를 확인했다”는 소감을 내놨다. 이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도농복합안을 미는 고도로 계산된 발언이다. ‘대표성과 비례성’ 제고를 위해 도시지역에선 소선거구제를 중선거구제로 바꾸되, ‘지역소멸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농촌지역에서는 소선거구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영호남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6개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것이 도농복합안의 3대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전원위를 거치면서 여야 간에 국회의장이 나열한 공감대가 형성됐는가?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공감대?

전원위에서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와 적대적 양당정치를 극복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공감대가 확인됐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김진표 의장은 이를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표현했지만 중선거구제와 대선거구제는 성격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양자를 ‘중대선거구제’라는 하나의 용어로 퉁 치는 건 몹시 부적절하다. 실제로 소선거구제를 중선거구제로 극복할지, 대선거구제로 극복할지가 제일 중요한 쟁점사항이다. 예를 들어 2명에서 5명을 뽑는 중선거구에서는 후보가 아무리 많아도 유권자가 1표만 던지고 최다득표순으로 당선자를 낸다. 당선자가 4,5명일 경우 꼴찌로 붙는 후보는 득표율이 10%밖에 안 될 수도 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5일 오후 영등포 다목적 배드민턴 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관계자들이 비례대표 투표용지 개표를 하고 있다. 2020.4.15 연합뉴스

최소 6인 이상을 뽑는 대선거구제가 되면 유권자들은 후보 1인을 찍는 대신 지지정당이나 후보명부를 찍는 방식으로 비례대표제를 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에선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당별로 당선자수가 먼저 정해지고 정당명부의 우선순위에 따라 그 수만큼이 당선된다. 예를 들어, 10명을 뽑는 대선거구에서는 정당투표에서 40%를 획득한 정당은 자당후보명부의 4순위까지, 30%를 획득한 정당은 자당후보명부의 3순위까지, 20%를 획득한 정당은 자당후보명부의 2순위까지, 10%를 획득한 정당은 1순위만 당선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유권자들의 표심이 의회에서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다. 비례대표제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을 뽑는 대선거구가 필요하다. 대선거구가 5~12인 선거구, 시도선거구, 권역선거구, 전국선거구로 커질수록, 다시 말해서 하나의 선거구에서 더 많은 대표자를 뽑을수록 더 정확하게 표심을 비례적으로 대표할 수 있다.

위에서 중선거구제에선 선거구마다 2~5인을 뽑고 대선거구제에선 6인 이상을 뽑는 것처럼 말했다. 중선거구제는 보통 2~4인을 뽑고 5인 이상을 뽑으면 대선거구라고 칭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국회의장자문위가 낸 3개의 개편안이 중선거구를 2~5인으로, 대선거구를 6~12인으로 설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도농복합안에 따르면 도시중선거구에선 2인에서 5인을 뽑는다는 것이다. 굳이 4인이 아니라 5인으로 한 것은 ‘중대’선거구라고 뭉뚱거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실은 2~5인 중선거구제가 입법단계에 들어가면 2,3인 선거구가 압도적으로 많고 4,5인 선거구는 시늉만 내는 2,3인 중선거구제가 될 가능성이 99%다. 입법과정을 주도할 거대양당이 제3당 후보의 당선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해서 4,5인 선거구를 피하려 들게 불을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중대선거구제라고 쓰고 2,3인 중선거구제라고 읽어야 하는 마당에 어떤 중대선거구제에 공감대가 있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농촌지역의 소선거구제 유지로 지역소멸 대응 공감대?

국회의장자문위는 전원위에 제출한 문건에서 이번 선거제개편의 목표 중 하나로 지방소멸을 예방하기 위한 지역대표성 강화를 꼽았다. 이미 2~4개 군이 하나의 소선거구로 묶인 농촌지역현실을 감안할 때 농촌지역에서 지금의 광역소선거구 2,3개를 통합하는 중선거구제는 너무나 넓기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서 인구는 적고 면적은 큰 농촌지역에 인구가중치나 면적가중치를 부여함으로써 농촌지역을 대표할 국회의원을 다만 몇 명이라도 더 만들어내자는 제안으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농촌지역에서는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그대로 유지해야만 지역대표성도 살리고 지역소멸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농촌)지역대표성 강화는 이전의 선거제개편논의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목표이자 제안이다. 지역소멸위기에 빠진 군 단위 농촌지역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일단 타당한 법적목표가 될 수는 있다. 캐나다나 영국처럼 면적가중치를 적용하는 입법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주장은 국회의장이 선호하는 도농복합안, 즉, 도시 중선거구제와 농촌 소선거구제 복합안을 옹호하기 위한 논거로 급조된 측면이 강하다. 구미선진국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농촌인구가 5%미만으로 떨어진지 반세기가 훨씬 넘는다. 구미에서도 농업대표성과 지역대표성을 살리기 위해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제일 효과적인 방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를 바꾸고 농민당을 원내 진출시키는 것이었다. 스웨덴이나 덴마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게 아니라면 농촌지역대표성은 농업전문가나 농업경영인에게 비례의석을 줘서 확보해온 게 일반적인 역사였다. 이번의 농촌지역대표성 강화논리는 거꾸로 농촌지역의 소선거구제 유지논리로 쓰인다는 점에서 몹시 이례적이고 실효성이 의심된다.

권역별비례대표제 여야 초월 공감대?

전국을 서울, 영남, 호남, 충청 등 대체로 6개 권역으로 나눠 인구비례나 의석비례로 권역별 비례의석수를 정한 후 권역별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당별로 비례의석을 나눈다는 것이 권역별비례대표제다. 현재 비례의석수는 총47석으로 정해져 있고 이것을 늘릴 엄두를 못 내고 있으므로 6개 권역으로 나눌 경우 평균 8석, 적으면 6석, 많으면 10석이 될 것이다. 전국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정할 경우에도 연동형과 병립형이 있듯이 권역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정할 경우에도 연동형과 병립형 두 가지가 있다. 권역별 총의석(지역구의석+비례의석)을 권역별 정당득표율에 따라 먼저 정당별로 나눈 후 그 정당의 권역별 지역구의석수를 차감하고 나머지를 비례의석에서 조정해주는 것이 연동형이라면, 권역별 비례의석수만을 대상으로 권역별 정당득표율에 따라 나눠주는 것이 병립형이다. 연동형에서는 정당득표율이 병립형에서와 달리 비례의석을 나누는 데 사용되지 않고 전체의석을 나누는 데 사용되고 비례의석은 정당득표율 대비 부족의석을 보충해주는 조정의석으로 사용된다.

권역별비례대표제라고 할 때 병립형인지 연동형인지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영남의 경우 지역구 65석, 비례의석 10석으로 권역의석수가 총75석에 이를 전망이다. 민주당이 영남에서 정당득표율 25%를 올릴 경우 지역구에서 한 석을 못 건져도 민주당은 ‘100% 연동형’아래서는 19석, ‘50% 연동형’아래서는 9석을 조정의석으로 갖는다. 같은 조건이라도 ‘병립형’아래서는 2석이나 3석밖에 갖지 못한다. 호남은 지역구 28석, 비례 5석, 총33석이다. 국힘당이 정당지지율 10%를 기록하고 지역구에서 전패할 경우 ‘100% 연동형’아래서는 3석을 얻고 ‘50% 연동형’ 아래서는 1,2석을 얻는다. 병립형에서는 1석도 얻지 못한다.

거친 계산이지만 이러한 영호남 시나리오는 국힘당이 어째서 권역별 연동형비례대표제에도 반대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해도 병립형으로 하지 않으면 국힘당이 영호남에서만도 상대적으로 5,6석을 손해 보는 구조다. 요컨대, 연동형에 대해선 손해 볼 게 분명한 국힘당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병립형에 대해선 다당제 전환효과가 없어서 민주당이 반대해야 맞다. 국회의장의 주장과 달리 권역별 비례대표제에도 두 당이 공감대를 이뤘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더 근본적으로 국힘당 의원들 중에는 2020년 개정선거법에 악담을 퍼부으며 의원정수 감축과 비례대표제 폐지를 주장한 이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인지라 국회의장이 여야를 초월해서 확인하였다는 공감대는 하나같이 그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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