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가안보실 도청 내용을 포함한 미국 국방부 기밀문서 불법 유출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는 21살 나이의 매사추세츠 주 방위군 공군 정보작전 비행대대 소속 잭 테이세이라(Jack Teixeira) 일병이었다. 메릭 갈랜드 미 법무장관은 13일 "테이세이라가 국방 기밀정보를 불법으로 제거, 소지, 전송한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체포 구금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테이세이라 일병은 체포된 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14일 보스턴 연방법원에 전격 기소됐다.

체포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전격 기소

기소 이유는 스파이법상의 국방정보 무단(불법) 보관 및 전송, 그리고 기밀문서나 자료 무단 제거 및 보관이다. 사태를 신속하게 처리해 미국의 정보수집체제를 위태롭게 하고 동맹국과의 관계를 심대하게 손상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이번 기밀정보 유출 사건의 파문을 재빨리 가라앉히려는 의도가 역력해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나라 안팎에 큰 충격파를 몰고 온 한국 국가안보실 도청 내용에 대해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이라고 단언한 대통령실의 반박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주장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또 그 도청 내용이 “상당수 위조”된 것이라고 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말도 더욱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터무니없는 거짓’이야말로 터무니없다?

'상당수'가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지부터 알 수 없는 모호한 말이지만, 상당수가 위조된 것이라는 말은 곧 전체 가운데 위조되지 않은 것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걸 전제로 한 말이어서, 강한 어투와는 달리 완전 부정은 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처음부터 받아 왔다.

문제의 문건에 당사자로 나오는 김성한 전 안보실장도 ‘일부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또한 ‘일부’라는 애매모호한 말 때문에 오히려 일부를 제외한 보도 내용은 모두 사실이란 말이냐는 반응을 불렀다. 따라서 ‘터무니없는 거짓’이라는 대통령실의 공식 해명 내용과 ‘상당수가 위조’라는 김태효 1차장의 얘기는 우선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았다.

그런데 테이세이라 일병의 체포, 기소로 유출된 한국 관련 기밀정보 내용이 “터무니없는 거짓”, “상당수가 위조”라는 한국정부의 주장이야말로 터무니없는 거짓이요 위조였을 가능성이 농후해진 것이다.

한국 관련 기밀정보 자체는 ‘진짜’

14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보기관의 신호정보(SIGINT) 가로채기(intercept=도청) 등을 통해 수집돼 미국 국방부 합참 쪽이 정리한 유출 문서들 중 한국 관련 기밀정보 자체는 제대로 수집된 믿을 만한 진짜(authentic) 문서다. 다만 그 내용이 정확한지 여부는 더 확인해 봐야 한다. 정확성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은 첩보활동으로 수집된 모든 정보들이 피해갈 수 없는 정해진 코스다.

그런데 수집된 한국 관련 기밀정보들이 신호정보 수집을 통해 얻어진 ‘진짜’라면 국가안보실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사실 자체는 분명해진 것 아닌가. 이는 유출 용의자 테이세이라의 체포, 구금 이유와 기소 이유, 즉 ‘스파이법상의 국방정보 무단(불법) 보관 및 전송, 그리고 기밀문서나 자료 무단 제거 및 보관’으로도 자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미국정부가 국가안보실 등 한국 정부기관에 대한 도청으로 얻은 최고기밀 정보, 특히 외국에 대한 공개 불가 표시가 돼 있는 정보들이 미국 정보기관의 통상적인 내부 규정에 따라 이뤄진 결과물임을 인정하고 있고, 그 내용의 정확성 여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적어도 ‘위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어느정도 분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유출 혐의자 테이세이라는 누구?

이는 유출 용의자 테이세이라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는 주 방위군 공군 말단 정보담당 일병이지만 그런 최고기밀 정보들에 대한 합법적인 접근권을 갖고 있었고,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그런 정보들을 접할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사람이나 기관에게 그것을 소통시키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테이세이라는 매사추세츠 주 서부 케이프 코드의 오티스 주 방위군 기지에 있는 주 방위군 공군 정보작전 비행대대 소속으로, 매사추세츠 주 방위군의 컴퓨터 네트워크 기술자였다. 그의 부대는 전 세계에서의 감시드론 활동을 지원하는 ‘제102 정보, 감시, 정찰 그룹’에 속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가족의 전통에 따라 주 방위군에 2019년에 입대해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최고기밀 데이터에 접근해서 유통시키는 작업을 해 왔다. 그는 이를 위해 인간 첩보활동이나 신호정보 수집(도·감청)으로 획득한 특수정보(Sensitive Compartmented Information. SCI) 등 최고기밀정보들에 접근하고 이를 옮길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최고기밀정보 접근권을 가진 공군 일병

그 권한은 펜타곤과 다른 정부기관에서 600명이 넘는 미군 장성들과 그들의 영관급 보좌관들, 그리고 그들을 돕는 장교들에게 매일 실시하는 세계의 정보 브리핑, 상황 지도와 상세한 분석 등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다. 컴퓨터 네트워크 기술자의 자격으로 그런 접근권을 획득한 그는 주 방위군 일병 컴퓨터 네트워크 기술자에서부터 브뤼셀의 나토 본부 장성들에게까지 제공되는 최고기밀 정보들에 다가갈 수 있었다. 그의 공식 직함이 ‘사이버 교통시스템 담당요원’(Cyber Transport Systems Journeyman)으로, 군 통신 네트워크 작동이 그 주임무였다.

2013년에 <가디언>을 통해 미국 중앙정보국과 국가안보국의 정보 분석자였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외교 안보 군사 등에 관한 방대한 기밀정보를 폭로해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그도 컴퓨터 기술자였다.

테이세이라는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 미국 정보기관이 도청 등으로 통한 첩보활동으로 수집해 분류 정리한 최고기밀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가 입수해서 불법으로 유출한 그 최고기밀정보들에 포함돼 있는 한국 국가안보실 대상 도·감청 기밀정보들은 ‘위조’가 아니었고, ‘터무니없는 거짓’도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해서 수집된 정보 내용의 ‘정확성’은 확인해봐야겠지만, 기밀정보수집 즉 도·감청 자체를 위조나 터무니없는 거짓이라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그런 주장을 의심하게 만든다. 기밀정보수집 자체는 사실이라는 것을 미국정부가 테이세이라 일병의 체포와 구금, 기소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기소 전에도 크리스 머 국방부 보좌관은 “기밀성이 대단히 높은 자료를 포함하고 있는 사례도 있는 것 같다”고 했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관한 정보들은 일부 화상이 수정됐다는 견해도 있지만, 국방부 간부들이 매일 보고받는 서류와 비슷한 양식으로 보고된 것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매체들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문제의 기밀문서들이 인터넷에 업로드된 뒤 일부 수정된 듯하지만 대부분은 믿을 만한 것으로 보인다(they mostly appear to be authentic)고 보도했다.

김성한 실장, 이문희 비서관은 왜 물러났나?

김성한 전 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3월 말에 갑작스레 사임한 것도 이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유출된 기밀정보 문건에는 두 사람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한국 무기(포탄) 지원 요청(압박)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하는 장면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155㎜ 포탄 33만 발을 어떻게 지원할지 논의하는 장면인데, 2월로 추정되는 시기에 이런 논의를 했고, 임기훈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이 3월 2일까지 이에 관한 최종적인 입장을 정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2월이면 지난해 10월부터 게임 관련 앱 ‘디스코드’에 만든 채팅방 ‘터그 셰이커 센트럴’에 테이세이라가 올리기 시작한 기밀문서들이 ‘와우마오’ 등의 서버로도 퍼져나가면서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다. 김 안보실장과 이 외교비서관이 고민한, 전쟁 당사국엔 살상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지를 놓고 폴란드에 대한 직접적인 수출로 출구를 찾으려 했다는 유출 기밀문서 내용은, 그 뒤 미국을 방문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 폴란드 총리가 우크라이나에 한국이 포탄을 공급하게 하려면 바이든 대통령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12일 기사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만일 김 실장과 이 비서관이 결국 미국의 요구에 눌려 한국의 원칙적 규정에 어긋나는 살상무기 공급을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직간접적으로 실행하기로 결정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해서 승인을 받았다면? 그 무렵부터 온라인 SNS 매체들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기밀문서 내용이 문제가 될 경우 윤석열 정부가 지게 될 정치적 부담을 유출문서상의 논의 당사자인 두 사람이 자리에서 물러나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를 미리 끊음으로써 차단하려 하지 않았을까. 추측이지만, 난데없이 블랙핑크 공연 문제와도 얽혔다던 두 고위 외교안보 관리들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코앞에 두고 갑작스레 사임한 뒤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었던 기이한 사태를 이런 식으로라도 연결지어 생각하게 만든다.

채팅방에서 '신화와 전설'이었던 카리스마

미국 최고기밀정보 접근권을 지녔던 테이세이라 일병은 처음에 총기와 비디오 전쟁게임, 밈(memes) 등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20~30명의 10대를 비롯한 젊은 남성들 중심의 채팅방 동료들에게 그 놀라운 정보들을 제공하면서 그들로부터 ‘신화’와 ‘전설’로 존경을 받았다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은 전했다.

2019년부터 매사추세츠 주 방위군 기지 내의 102 정보작전 비행대대에서 근무한 그의 공식직함은 ‘사이버 교통시스템 담당요원’이다. 주 방위군 공군은 미국 공군의 일종의 예비군이다. 테이세이라는 게임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있는 온라인 대화 앱인 ‘디스코드’에 채팅방을 만들어 그가 군에서 빼낸 기밀정보를 올리면서 그들 사이에서 카리스마가 있는 유능한 리더가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채팅방의 나이 어린 그의 추종자(18) 등 멤버들을 취재해 테이세이라와 그들의 관계, 정보 공유와 유출 방법 등을 알아냈다. 이는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이에 따르면, 2020년에 총기와 군복 등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기독교 신앙으로 엮인 몇 명이 SNS 대화(채팅) 앱인 ‘디스코드’에 20여 명을 초대해 채팅방 ‘터그 셰이커 센트럴’(Thug Shaker Central)을 만들었다. 10대를 비롯해 20~30대 남성들이 많았다. <뉴욕타임스> <BBC>에 따르면 그들은 팬데믹 기간 밈(memes)이나 도발적 농담을 주고 받고 한가한 수다를 떨면서 전쟁 비디오 게임, 기도와 영화 얘기들을 하는 정도의 특별할 게 없는 동아리였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오지(OG)로 불린 테이세이라는 세계 정세와 정부가 감추려고 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했다. 2022년에 채팅방 리더였던 OG가 군 기지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기밀 문건들을 올렸다. 그는 하루 중 일정 시간을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시설 속에서 보낸다고 설명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기밀정보들을 몰래 촬영해 유출한 것이다.

그의 투고는 몇 개월에 걸쳐 이뤄졌고, 거기에는 고위 정치가의 주거와 군사력 정보 등이 포함됐다. 그의 추종자였던 18살의 멤버는 이번 사태로 뉴스들이 쏟아지기 전까지는 예지력이 있어 보이던 OG가 제공하는 정보에 감탄했다. 기세 좋고 무기도 능숙하게 잘 다루는 그를 이 어린 친구는 친척 아저씨나 아버지 같은 친근한 존재로 여기고 그가 제공하는 기밀문서를 정당한 것으로 이해했다.

OG는 자신이 올린 정보를 잘 읽어 보라고 멤버들에게 요구했고,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했다. 2022년 말부터 매주 몇 종류씩의 문서를 채팅방에서 공유했으며, 기밀자료를 손으로 쳐 넣는 작업으로 피곤해지면 수백 장의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그는 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전황의 상세한 지도, 우크라이나의 봄 공세에 대한 미국 정보관리들의 비관적 전망, 러시아군 작전에 깊숙이 침투한 미국 정보력, 러시아 정부 내의 내분, 우크라이나 전력시설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영향을 보여주는 위성사진, 우크라이나 방공미사일의 미사일 부족(5월 초까지 고갈), 양쪽 사상자 등에 관한 기밀문서들을 올렸다. 거기엔 한국 도감청 문서들도 들어 있었다.

그의 동료들은 OG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공작원은 아니라고 했다. 정치나 정세 변동을 겨냥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고, 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는 그가 매우 얌전하고 착실한 아이였다고 기억했다.

“미국정부가 무서운 진실을 감추고 있다”

OG는 그들에게 미국 정부, 특히 경찰이나 정보기관이 시민을 억압하는 사악한 기관이라는 견해를 밝히면서 “미국 정부가 무서운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말도 했다. 때로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면서 사격을 하는 동영상도 보여 주었다. 그 그룹에는 유럽, 아시아, 남미 멤버들,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도 있었다.

2월 28일에 이 채팅그룹의 10대 멤버가 디스코드의 다른 서버에 기밀문서를 올렸고, 3월 4일에는 또 다른 서버에도 문서들이 올라갔다. 이로써 수천 명에게 기밀문서들이 공개됐다. 4월 5일에는 텔레그램이나 트위터, 익명의 게시판 4chan 등에도 올렸는데 이들 서버는 주로 러시아에 호감을 지닌 이용자들이 많았다. 그래선지 우크라이나 사상자 숫자를 부풀리는 조작을 하기도 했는데, 양쪽 사상자 숫자가 일부 조작됐다는 보도가 나온 것은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6일에 <뉴욕타임스>가 이들 SNS 상의 기밀문서들을 보도하기 직전 OG는 평소와는 달리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고 동료들은 말했다.

테이세이라는 피신하면서 채팅 동료들에게 “조심하고, 기밀문서 복사물 등 나와 관련될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지우라”는 메시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