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악의 없는 도청" 발언에 여론 부글부글
"대통령실과 백악관 압수수색 해야"
"대통령실 대응, 박정희 때와 비슷"
"대통령 잘못 뽑은 결과가 이렇게 치욕적"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도청을)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일정 협의차 지난 11일(현지 시각) 미국을 방문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김 차장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인 지난 11일(한국 시각)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기자들에게 “(도청 관련) 공개된 정보 상당수가 위조됐다”며 “거기에 대해서 양국 평가가 일치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김 차장의 이 발언들은 불난 나라에 부채질한 꼴이 됐다. 울고싶은 국민의 뺨을 때린 격이 됐다. 더군다나 부채질하고 뺨 때린 당사자가 대한민국 안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안보실 차장이다. 아니나다를까, 김 차장의 발언이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김 차장의 발언을 두고 12~13일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서는 성토와 규탄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미국 백악관 압수수색 하라”
김주대 시인은 12일 “악의를 가지고 (도청)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말은 (도청을) 당했다는 정황은 발견했다는 얘기”라며 “도둑맞은 걸 알고는 있으니, 발견을 축하한다”고 비꼬았다.
김 시인은 “검찰은 용산 대통령실과 국가정보원 그리고 미국 백악관을 압수수색 해야 한다”는 요구도 했다. 역시 비꼬는 말이다. 김 시인은 “빨랫줄에 널어놓은 속옷이 아니라 입고 있던 속옷을 도난당한 대통령, 나체 상태로 미국 방문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애처롭다”는 한탄도 했다.
“불수능 언어영역보다 어려운 문제였는데 답안지 냈다”
이기주 엠비시 기자는 김태효 차장의 ‘미국의 도청, 악의 가지고 한 정황은 없어’ 발언 관련 기사를 링크하고 <화자(話者)의 의도를 파악하시오>라는 풍자 글을 올렸다. “역대급 불수능 언어영역보다 어려운 문제였는데 이 분들은 미국을 만나기도 전에 답안지를 냈다”며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이라더니 벌써 의도까지 파악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대응, 박정희 때와 비슷한 것 아닌지 걱정”
최승호 뉴스타파 피디(전 엠비시 사장)는 페이스북에 박정희 정권 당시, 미국이 청와대를 도청했을 때 박동진 한국 외무부 장관이 주미 대사 리처드 스나이더에게 “제발 미국 정부가 청와대 도청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해달라”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미국보다 더 오버해서 유출된 문건이 위조됐다고 하는 한국 대통령실은 아마도 미국 정부가 ‘모든 문서는 위조된 것이고 기밀 유출이나 한국 대통령실 도감청은 없었다’고 선언해주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윤석열 대통령실의 대응 자세가 박정희 때와 비슷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왜 도청 당한 한국 대통령실이 나서서 부인하나?”
엠비시 송요훈 기자는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자 그의 형 이상득(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자 국회부의장)이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이명박은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했다가 미대사관이 본국에 보고한 외교 문서가 위키리크스에 유출되어 뼛속이 드러났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CIA가 도청을 했다는 기밀 문서가 유출됐고, 미국도 도청은 없었다고 부인하는 것도 아닌데, 왜 도청을 당한 한국의 대통령실이 나서서 아니라고 하는 건가? 외국에서 보면 뭐라고 할까?”라고 물었다.
“미국 원하는 정보 자발적으로 전달하는 최고위층 수 없이 많을 것”
전우용 역사학자는 12일 “미국과 한국은 ‘비대칭적 동맹관계’인데다가 전시작전권을 미군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군사 외교 문제에 관한 정보는 거의 공유한다”며 “미국은 한국 내정에 관한 기밀 정보들도 어렵지 않게 입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원하는 정보를 자발적으로 전달하는 각계의 최고위층 인사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라는 ‘폭로’도 했다.
그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굴욕적인 자세’를 보이는 건, 대개 ‘더 큰 피해’를 우려하기 때문”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NSC 기밀 정보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하는 게 대체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윤석열 정권, 고민 없이 매국 행각에 직진”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는 12일 촛불행동 논평으로 <‘김태효’, 반드시 잘라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김 대표는 김 차장이 “기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묻지 말라’며 ‘같은 주제로 물어보신다면 저는 떠나겠다. 됐습니까’라는 식으로 오만방자를 떨었다”고 비판하며 “김태효는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으며 미국의 한미일 군사동맹 체제 강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진 자”라고 상기시켰다.
김 대표는 또 “윤석열 정권은 일체의 고민이나 제동 없이 대일 대미 매국 행각에 직진하고 있다”며 “미국이 강력히 신뢰하는 김태효에게 윤석열이 전권을 맡기다시피 하는 것도 바로 같은 맥락”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민주당은 (도청 문제를) 집요하게 따져 들어가야 한다”며 “맨날 말만 크게 꺼내놓고 정작은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언제까지 듣고 있을 것이냐?”고 꼬집었다.
“주권침해 미국, 주권포기 윤석열 성토” 발언하자
우희종 전 서울대 교수는 13일 “큰 외침에 뒤따르는 실질적 대안을 위한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절실하다”며 시민들에게 오는 15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인근에서 열리는 <‘주권침해 미국, 주권포기 윤석열 성토’ 시민발언대> 행사 참여를 독려했다.
우 전 교수는 12일 “미국 도청 내용이 상당수 위조라서 한국 정부로서 할 말이 없는 정도라면 지금까지 축적된 미국의 동맹국 도청 실력이 겨우 그 정도라는 것?”이라고 물으며 “지나가는 소가 웃겠다”고 개탄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일본 대변 정부’라는 사실은 확인했다며 ‘미국 수호 정부’인지도 궁금해 했다.
“김태호 궤변에 숨긴 진실 12개”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12일 <김태호 궤변에 숨긴 진실>을 12개로 나눠 해석했다. 요약해보자.
1. 애초에 인정하고 (외교적 수사로) 항의나 유감만 표시했어도 진작 끝날 일을 덮으려고 보니 일이 더 커지는 셈이다. 정권 추락의 가속도를 달아준 격이다.
2. 어제(11일)까지의 대통령실 입장은 “터무니없는 거짓”이라는 것이고, 김태효도 “공개된 미국의 정보문건은 상당수 위조가 되었다”고 주장을 했다. 김기현이나 태영호는 제 3자 개입설을 주장했다. 일관성은 분명한 집단이긴 하다.
3. 그런데 눈치없는 미국은 도청 자체는 바로 인정을 해 버렸다.
4. 피해국가인 우리는 도청사실을 부인했는데 가해국가인 미국은 인정을 했으니 우리 입장만 더 망가지는 꼴이 되었다. 미국이 우리를 두 번 죽인 셈이다.
5. 그래도 한미 정상회담은 해야겠고 벌써 백악관 만찬에 나올 음식과 술이 무엇인지 궁금한 윤석열이나 미국에 무슨 옷을 입고 가서 돋보일지, 어떤 사진을 찍어서 기자들에게 배포할지 고민하는 김건희의 기대감을 지켜본 김태효는 이 문제로 한미 간의 외교적 대립이 생기면 안되니까 매우 고민이 되었다.
6. 결국 오늘(12일) 김태효는 말을 바꿨다. 그의 고심이 잔뜩 담긴 워딩이었다. “미국이 악의를 가지고 도청을 했다는 정황은 없다.”
7. 내용을 보니 과연 뼛속 깊은 매국노임은 분명하다. 이런 X이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 정책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8. 김태효의 궤변에서도 진실은 찾을 수 있다. 어제까지 인정하지 않던 도청 사실을 이제 공식적으로 인정을 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9. 다만 미국이 우리에게 한 짓은 ‘착한 도청’이라는 것이다. 악의를 갖지 않았으면 선의를 가지고 도청을 했다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10. 나도 윤석열 대통령실에 한 가지 제안을 해 보겠다. 대통령 집무실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자. <나혼자 산다>와 같은 관찰 예능처럼 대통령이 뭘 하고 지내는지 국민들은 선의를 가지고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11. 만약 그것을 거부한다면 대통령 집무실이나 윤석열 집이나 김태효 방구석에 몰카를 설치하면 어떨까? 김태효의 논리대로라면 설치한 사람은 악의가 없이 단지 윤석열이나 김태효가 일 하는 모습이나 일상생활을 보면서 그들을 응원할 목적이라고 하면 이건 무죄가 되는 것이 아닐까??
12. 그래도 한 가지 충고를 해 줄까? 사과의 타이밍을 놓치고 계속 거짓과 억지를 부리니 일이 점점 꼬이는 것이다.
류근 시인은 “도청 당하고도 미국 편들면서 국민 협박하는 자들을 보면, 의붓아버지한테 지속적으로 성폭행 당하고 있는 딸에게(…) 어디 가서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고, (…)어린 딸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던 친모 얼굴이 떠오른다”고 분개했다.
“대통령 잘못 뽑은 결과가 이렇게 치욕”
트위터에도 관련 발언이 쏟아졌다. “선의를 갖고 하는 도청도 있냐? 지하철 몰카 찍다 걸린 것을 ‘악의는 없었다’고 감싸는 격” “(미국이) 도청했다잖아. 심지어 앞으로도 계속 할 거래. 일본도 미국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우스울까. 대통령 잘못 뽑은 결과가 이렇게 치욕스럽습니다” 등의 글이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안내문의 ‘열린 대통령실’?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열린 대통령실’이라는 항목이 나온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자 ‘소통하는 열린 대통령실’ 구현하기 위한 것입니다.”라는 안내문도 보인다.
이제 이 안내문을 ‘미국에 열린 대통령실’ ‘미국 CIA와 소통하는 열린 대통령실’로 고쳐야 하지 않을까. 용산 집무실 이전이 ‘열린 대통령실 구현’이었다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정부조직법 제15조(국가안보실) ①항은 ‘국가안보에 관한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국가안보실을 둔다’이다. 이것도 바꾸면 어떨까. ‘국가도청에 관한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국가안보실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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