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로 보면 한국은 명분 실리 다 잃어
일본은 다 얻은 듯하지만 또다른 시작일 뿐
대중 한미일 삼각공조 큰그림 미국 '웃음'
분단과 전쟁 부른 '샌프란시스코체제' 재판?
거부해야 산다. 한국이 다시 죽는 판이기에
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의 해법으로 끝내 ‘제3자 변제’ 방식을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승자는 아마도 미국이 아닐까. 미국만이 아무런 상처 없이, 한국과 일본을 압박해 ‘인도태평양’ 가치동맹이란 이름의 대중국 견제용 한미일 삼각공조 내지 삼각 안보군사협력체제를 위한 한일 ‘유착’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1990년대 동서냉전 붕괴와 함께 흔들렸던 2차대전 뒤 미일동맹 중심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제를 주적을 바꿔 30여년 만에 새로운 버전으로 재등장시키는데 한미일 삼각동맹은 필수적이라고 미국 전략가들은 주장해 왔다.
명분도 실리도 다 잃은 한국
한국정부는 이번 조치로 명분도 실리도 다 잃었다. 그렇게 서둘러대더니 얻은 것 하나 없이 일본이 바라는 건 다 들어준 꼴이 됐다. 그럴 바에야 그냥 그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할 일이지, 반드시 해결할 테니 믿어 달라며 ‘성의를 보여달라’고 일본에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심지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소송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하고 수출규제까지 했다가 국제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한 일본을 결과적으로 구제해 주기까지 했다. 안보 관련 정보유출을 구실로 발동했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는 사실 근거없는 것이어서, 이를 WTO에 제소한 한국정부에게 1백 퍼센트 승산이 있는 것이다. 일본은 최근에 수출규제 풀어줄 테니 WTO 제소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한 판이었다. 수출규제로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본 쪽도 일본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급해 죄지은 사람마냥 일본에 매달리면서까지 서둘렀던 것인가.
고령화하거나 처지가 어려운 피해자들을 하루라도 빨리 돕겠다는 것은 칭찬받을 명분이지만, 그것은 일본과 상의하거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 얻은 듯 보이는 자가당착의 일본
일본은 집권 자민당의 기시다 후미오 정부가 자신들은 뒷전으로 빠진 채 가장 큰 무기이자 원칙으로 들이민 ‘국제법 준수’를 관철했을 뿐 아니라 소송 당사자인 가해기업들에 대한 면죄부까지 받아들었다. 역대 일본정부의 ‘반성과 사죄’ 표명을 계승하겠다고 재천명한 것은 몰래 해 온 나쁜 짓을 고백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치졸한 언약처럼 들린다. 이제까지 일본정부가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 간 나오토 담화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공식적으로 부정하거나 계승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적은 없다. 그것을 뒤집기 위해 그토록 애썼던 아베 신조조차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것을 계승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것을 ‘제3자 변제’ 방식에 대한 반대급부라도 되는 양 선심쓰듯 새삼스레 계승하겠다고 천명하는 건 자가당착이자, 실은 이제까지 그것을 계승하지 않았노라고 뻔뻔하게 자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이 더 용납하기 어렵고 애통한 점은 가해자 일본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시혜를 베푸는 ‘선한 자’의 지위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그 지위를 ‘국제적으로’ 부여한 꼴이 됐다. 일본이 내세운 한국인 유학생 장학금이니 청소년 교류 지원이니 하는 것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 뿐 아니라, 별 실효성도 없다. 마치 가난한 후진국에 시혜라도 베풀 듯 꺼내 놓을 카드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 때문에 청소년 교류까지 막아 왔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다.
기회 날린 일본도 승자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풀린 게 아니라 더욱 꼬인 채 다음 발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도 승자가 아니다. 당장 기시다 정권으로서야 잃은 게 없다며 득의만만할 지 모르겠으나, 일본은 독일 빌리 브란트 정권처럼 범죄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고 배상함으로써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해 전쟁범죄의 어두운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던 또 한 번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 버렸다.
일본으로서도 윤석열 정부의 결정이 새로운 문제의 시작을 알린 것일 뿐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걸 조만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린 나이에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니시마쓰, 하나오카 건설 등 전범기업들에 사실상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하고도 임금조차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한국에는 무수히 많고 그들 또는 유족들 중 상당수가 소송을 제기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2015년의 위안부 합의(12·28 합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 간 합의로 피해자 개개인의 배상 청구권은 없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면 그 합의 자체가 정당성을 잃을 수 있다.
한일협정으로 해결된 것은 없다
예컨대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체결한 1965년 한일협정이 일본의 전쟁범죄 한국인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소송 제기 가능성조차 막았지만, 한국의 민주화 이후엔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는 1991년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증언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군사정권 아래서는 불가능했던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증언과 배상청구 소송으로 청산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전쟁범죄가 세상에 드러나고, 이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이 고조되자 일본정부는 서둘러 군국일본의 위안부 동원 실태를 조사해 이른바 ‘고노 담화’를 통해 발표하고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다.
이는 지금 일본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한국의 군사정권 시절에 체결한 1965년 한일협정(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문제는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논리가 허구였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 다 해결됐다면 일본정부가 그렇게 허둥대며 담화를 발표할 이유가 없었다.
비슷한 담화는 한일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러차례 되풀이 됐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로 인한 피해자들 개인 배상 청구권문제가 한일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나 기업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더 쌓아가고 있다. 일본 우파들은 잔인하게도 피해자들의 자연적인 노쇠나 사망 등 피할 수 없는 인간적 한계에서 문제해결의 희망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런 비인간적인 희망은 피해자들의 분노와 함께 기억을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한국 대법원 배상 확정판결의 실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한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일본제철 징용공사건 재상고심 판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1965년 3월 20일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 백서>(을 제18호 증)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가 한일 간 청구권 문제의 기초가 되었다고 명시하고 있고, 나아가 “위 제4조의 대일청구권은 승전국의 배상청구권과 구별된다.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조인 당사국이 아니어서 제14조 규정에 의해 승전국이 향유하는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일 간 청구권 문제에는 배상 청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는 설명까지 하고 있다. 이후 실제로 체결된 청구권협정문이나 그 부속서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피해자 개개인 배상은 청구권협정 대상 아니다
‘위 제4조’란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a)인데,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대한민국도 이에 해당)’의 시정 당국 및 그 국민과 일본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 관계는 이러한 당국과 일본 간의 특별약정으로써 처리한다‘는 규정이다.
한일 청구권협정의 기초가 됐다는 이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a)와 관련해 판결문은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도 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공식 의견을 밝혔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마디로 이 제4조는 일본 패전 뒤의 한일 국가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어서, 일제의 침략과 강점(식민지배)이라는 불법행위에 대한 강제동원 피해자 개개인의 배상 청구권 문제는 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위의 인용문에도 나오 듯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조인 당사국이 아니어서” 제14조 규정에 의해 승전국이 향유하는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과 중국은 그 전쟁범죄를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초청받지도 못했다. 한국은 미국이 작성한 조약 초안에 전승국(연합국)의 일원으로 조약 서명국 리스트에 들어 있었으나 일본과 영국, 미국의 반대로 막판에 빠졌다. 조약 서명국 지위를 박탈해 놓고, 그들끼리 체결한 조약, 즉 ‘국제법’을 지키라고 일본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965년 한일협정의 모법이라 할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애초에 인정해주지도 않은 한국·한국인의 배상청구권을 한일협정에서 다뤘으므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것도 모순이다. 일본은 한일협정 체결 때도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 그것을 위한 을사늑약, 한일합방조약 등 일제가 강제한 조약이나 협정들이 당시로서는 국제법적으로 합법이었다고 주장했고, 미국도 사실상 일본 편을 들어 주었다. 그때는 합법이었기 때문에 배상도 사죄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논리다.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외무성도 각급 법원도 강제동원 피해자들 개개인의 배상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협정에 의해 재판을 통해 그것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래 놓고 청구권협정에서 배상 청구권문제는 다 해결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 등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은 이뤄진 적이 없고, 한국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은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합법이 아니라 불법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배상을 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한국 대법원 판결의 이행을 거부하라고 일본정부가 요구했고, 한국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꼴이 됐다.
일본의 한국 ‘국제법 위반’ 주장의 허구
대법원 판결문은 청구권협정 제2조 1에서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한 것이 “개인 배상 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이상, 위 제4조(a)의 범주를 벗어나는 청구권, 즉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직결되는 청구권까지도 위 대상에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즉 불법적인 지배에 대한 피해자들 개인 배상 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얘기다.
일본정부는 바로 이 청구권협정 제2조를 근거로 한국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향해 국제법을 지키라고 큰소리 칠 때의 그 국제법은 1965년에 체결한 한일협정(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과 1951년 9월에 체결되고 1952년 4월에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다.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한일협정이 분리되지 않는 한묶음이라는 것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되고 발효도 되기 전인 1952년 2월에 한일협정 체결을 위한 한일 간 교섭이 시작된 사실로도 확인된다. 그 교섭을 주선하고 압박한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되자마자 당시 도쿄에 있던 일본점령 연합국 최고사령부(GHQ)에 한일 교섭대표들을 불러 놓고 국교를 ‘정상화’하라고 압박했다. 압박의 이유는 중국 공산화와 6·25전쟁으로 격화된 동서냉전의 동아시아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일 유착이 미국에겐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압박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국제법적으로 합법이었다며 일본 식민지배가 오히려 한국의 발전을 도왔다는 전형적인 식민사관을 피력했던 구보다 간이치로 수석대표 등 일본쪽의 주장에 대한 한국쪽의 거센 반발 때문에 협정은 14년이나 끌다가 1965년에야 체결됐다. 그것도 1961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이 계엄령 등으로 한국 민심을 힘으로 억누른 다음에야 가능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 1.0과 2.0
2023년 3월의 지금 상황도 그때와 흡사한 점이 있다. 20세기 중반의 동서냉전 당시 미국의 주적은 소련이었으나 21세기 초인 지금은 중국으로 바뀌었다는 점만 다를 뿐, 미국에게 한일 유착이 절실한 이유, 그 지정학적 구조는 닮은 꼴이다.
미국은 타국 특히 한일 간의 과거나 역사적 정의(正義)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국익과 그것을 확보하기 위한 ‘미래’만이 미국의 관심사다.
한국 대법원 판결을 번복하라고 요구한 일본의 억지를 윤석열 정부는 받아들였고, 미국은 지난 3월 1일 윤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한 반응에서 보듯 이를 미래지향적이라며 환호하고 지지했다.
미국은 ‘유일한 경쟁자’ 중국을 상대로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21세기형 버전, 즉 인도태평양 가치동맹이라는 이름의 샌프란시스코 체제 2.0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이 그것을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만든 샌프란시스코 체제 1.0 버전과 같은 처지는 면해야 하지 않을까. 그때는 가해자였던 패전국 일본이 미국의 제1 동맹국이 되고 일제의 피해자 한국이 오히려 분단되고 전쟁까지 치른 뒤 일방적으로 종속당한 희생자였다.
미국을 주시해야 한다.
1.0체제의 재판이라면 거부해야
한일 간 힘의 관계가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지금도 미국은 한국을 일본의 종속국 정도로 간주하고 있을까. 2015년의 위안부 합의 때까지도 미국은 그런 시각을 견지했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자발적 선봉장을 자임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친미적 자세는 거의 ‘올인’ 수준으로 보인다. ‘굴욕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대일 투항적 자세도 미국의 주문이라는 변수를 고려하면 좀 더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을까.
그런데 미국이 주도하는 샌프란시스코 2.0체제가 일본을 앞세운 1.0체제의 단순확대 재판이라면 한국은 거부해야 한다. 거부해야 산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만 살고 한국은 죽는다. 그것이 샌프란시스코 체제 1.0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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