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앤 사이언스 법, IRA법으로 막대한 지원
자기 돈 아닌 국민세금 쓰는 정부·관료들
무책임한 정책, 중국이나 미국 다를 바 없어
철저한 분석과 전략 없이 매몰비용만 키울 것
중국에게 이기기 위해 중국식 반도체 ‘굴기’ 정책을 강행하려는 조 바이든 미국정부의 미국 반도체 리쇼어링 전략은 성공할까? 530억 달러를 미국 내 반도체 제조업 지원에 쓰겠다는 ‘칩 앤 사이언스법’(CHIPS and Science Act)을 제정하고, 역시 이름과는 달리 미국 제일주의식 미 국내 제조업 부활을 주목적으로 한 듯 보이는 약 8000억 달러 투입(10년간)의 인플레 감축법(IRA)까지 밀어붙인 바이든 정부.
미국 반도체, 중진국 함정 빠진 중국 따라가나?
<포린 폴리시>에 칼럼을 쓰고 있는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대학원의 하워드 프렌치 교수는 지난 1일 칼럼에서 중국식 발전전략을 떠올리게 하는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굴기정책은 정작 중국의 실패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정책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입함으로써 회수불능의 매몰비용만 키워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10여 년간 개도국 발전전략에 대해 강의해 온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프렌치 교수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뒤 더 높은 성장과 더 나은 생활수준을 추구한 세계 수많은 나라들의 개발전략은 그러나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극소수의 성공사례로 일본과 한국, 중동의 몇 산유국을 들 수 있을 뿐, 세계인구의 대다수는 여전히 1인당 소득이 낮고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또 하나의 그룹으로 1960년대의 브라질과 소련(러시아), 그리고 지금의 중국처럼 덩치가 크고 한때 빠른 성장을 거듭했으나 지금은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나라들이 있다. 이른바 ‘중진국(중소득) 함정’에 빠진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는 처음에는 농산물 수출 잉여를 직물이나 가공식품 등의 제조업에 투입했다. 그러다가 기본적인 전자장치를 지닌 플라스틱 조립 장난감 같은 경공업으로 옮겨 갔다. 그리고 점점 더 정교하고 복잡한 제조업을 발전시키면서 해외 경쟁자들로부터 자국 제조업을 지키기 위해 보호주의 정책을 펴는 한편, 외국의 투자와 기술 유입, 각종 보조금 특혜 등을 통해 한층 더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산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국내 제조업 강화를 토대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이런 전략으로 중국 제조업은 미국 제조업을 따라잡고 넘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프렌치 교수가 보기에 이런 산업정책은 제조업의 초기 이륙단계에서는 성공적인 전략일 순 있으나 장기적으로 성공한 예는 드물다. 이륙단계에선 예컨대 1달러를 투자하면 3달러어치의 성장이 가능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1달러 투입당 성장은 2달러, 1달러로 점차 내려가다 1 대 1, 나아가 마이너스 상태로 떨어진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자금과 신기술을 투입하지만 성장과 노동생산성 증가는 계속 둔화된다.
실패한 중국의 반도체, 항공여객기 제조업 전략
프렌치 교수는 제조업 분야에서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로 항공기(여객기)와 반도체 제조업을 든다. 광대한 자국 내 항공여객 수요를 지닌 중국은 그가 베이징에 특파원으로 간 2000년대 초 이전부터 여객기 제조업 발전전략을 세우고 막대한 에너지를 투입했다. 중국이 대량으로 여객기를 구입해야 하는 보잉과 에어버스 또는 더 작은 여객기 제조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업체를 키우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최근 보도에서 보듯 이 전략은 결국 실패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수십 년간 국제경쟁력을 지닌 중형 여객기 제조를 위해 미쓰비시 중공업 등이 애를 써 왔으나 역시 최근에 실패로 끝났다.
반도체 제조업도 최근 파산상태에 빠진 중국 최대의 칭화유니그룹의 예에서 보듯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한 반도체 굴기 전략은 일단 실패로 끝난 듯 보인다.
프렌치 교수가 보기에 중국의 제조업은 이처럼 초기 이륙단계에서는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미국식 제조업 굴기전략
미국이 경제적 발전을 지속하면서 상대적인 퇴보를 막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프렌치 교수가 보기에 답은 역설적이게도 미국이 모방하려는 중국 산업정책의 실패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중국을 이기겠다는 열망에만 사로잡혀 있을 뿐 막대한 국가 지원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평범한 결과밖에 낳지 못한 중국의 경험에서 교훈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실패한 중국처럼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자국 제조업체에 갖가지 특혜를 주면서 그저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제조업 부활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프렌치 교수는 정부와 관료들이 시장의 복잡성과 빠른 기술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민간 기업가들과 달리 국가 및 공공자금으로 대규모 산업전략을 짜고 실행하는 정부와 관료들은 실패해도 탈탈 털릴 위험이 없다는 점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자신의 돈이 아니니까. 게다가 실패하더라도 경제적 징벌을 당하거나 평판 실추와 같은 위험이 없어 실패할 위험이 민간 기업가들에 비해 더 높다.
따라서 돈을 잘못 투입해 성과가 나지 않거나 실패한 사업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입하기 십상이다. 이것이 민간 기업가들과 다른 점이다. 중국과 일본의 여객기 개발전략과 중국의 반도체 발전전략이 엄청난 물량 투입에도 실패한 이유다. 실패할수록 “시간을 좀 더 달라.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타령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자기 돈이 아니니까. 게다가 그 사업이 수십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고 지역경제 전체가 그 사업에 의존하고 있을 경우 그 돈 타령과 시간 타령을 과감하게 물리칠 정부나 정치가, 관료들이 얼마나 될까? 유권자들 표나 지지율과 연결되는 것인데. 이것은 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나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나 별 다를 바 없다고 프렌치 교수는 지적한다.
예컨대 미국 국방물자 조달과 관련해 국방부는 더 이상 필요없다고 해도 국회의원들은 무기 제조를 계속해야 한다고 우긴다.
남의 일 아닌 미국의 실패
바이든 정부의 미국 제조업 굴기전략이 이런 식의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고, 자신은 정파적 이해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며, 프렌치 교수는 조심스레 지적했다.
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바이든 정부의 미국 제조업 부활전략과 관련해서는, 예컨대 반도체 산업에는 돈만 쏟아붓는다고 되는 게 아니며, 필요한 인재와 관련 부품산업, 운송과 유통, 소비 분야까지 아우르는 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돼 있어야 가능하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이를 새로 조성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미국이 리쇼어링을 부르짖는 유래 자체가 미국 기업들이 더 큰 수익을 위해 해외의 더 싼 원료·임금을 찾아 떠난 신자유주의 시대의 글로벌 전략인데,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는 있지만, 생태계가 짜여져 있는 것도 아니고 임금 등 요소비용이 세계 최고수준인 미국에, 나갔던 제조업체들이 일시적일 수 있는 막대한 보조금만 믿고 다시 돌아올까? 돌아온들 수익과 생존이 보장될까?
한국의 자동차와 반도체, 전기 배터리 업체들에 대한 미국의 칩 앤 사이언스법, IRA 차별적용 움직임에서도 보듯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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