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슨 전 재무장관, 포린어페어즈 기고서 경고

"미국, 경제적 중력 거스르는 모험 하고 있다"

무차별 중국 디커플링 비판…'맞춤형' 도출해야

'중국과 놀지마' 미국 주문에도 대중교역 심화

 

에이브럼스 지원을 발표하는 바이든 대통령을 블링컨 국무장관과 오스틴 국방장관이 지켜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에이브럼스 지원을 발표하는 바이든 대통령을 블링컨 국무장관과 오스틴 국방장관이 지켜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경제적 중력 거스르는 모험 하고 있다”

“워싱턴은 경제적 중력(economic gravity)을 거스르는 모험을 하고 있다.”

헨리 폴슨 주니어 전 미국 재무장관이 포린어페어즈(1월 26일자)에 실린 ‘미국의 중국 정책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자유무역 확대에 힘쓰는 중국과는 달리, 최근 미국의 무역정책은 “노동자 중심으로, 보호주의에 가깝다”고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CEO를 지낸 폴슨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 때 재무장관을 역임했으며, 2008년 세계금융위기 대처 과정에서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가동해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는 데 애썼던 인물이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PG) 연합뉴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PG) 연합뉴스

대중 경제동맹 ‘한계’…“미국에 더 피해줄 것”

폴슨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 정책은 수세적이다. 중국을 견제 · 압박하고자 “같은 생각을 지닌” 아시아와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로 동맹을 조직하고 있지만 이 전략은 먹히지 않을 걸로 폴슨은 보고 있다. 이 전략으로 중국도 상처를 입지만, 미국도 상처를 입고 장기적으론 더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 대표적 사례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이다.

그가 보기에 주요 파트너 국가의 대부분은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민감한 과학기술의 대중 수출통제 강화, 중국의 투자에 대한 조사 및 봉쇄, 중국의 강압적 경제정책 및 군사적 압력 등에 대한 문제 제기 등에 나서고 있다. 일견 미국의 요구에 잘 따르는 모양새다.

문제는 그 정도가 대중 경제관계의 해체(deintegration)를 바라는 워싱턴 내 초강경파의 요구에는 전혀 못 미친다는 점이다. 폴슨은 “워싱턴의 가장 가까운 주요 전략 파트너들조차도 미국만큼 광범위하게 중국에 대항하고 봉쇄를 시도하거나 경제적으로 관계를 해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잠비아를 방문 중인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잠비아를 방문 중인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과 놀지마’ 미국 주문에도 대중 교역 심화

도리어 그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들 나라가 중국의 압박에 대비해 △ 비즈니스 활동 다양화 △ 제3국에 신규 공급망 구축 △ 민감 분야 노출 축소 등의 조치를 하면서도 “미국의 각본”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폴슨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탈동조화하거나 관계를 해체하는 대신에, 되레 교역을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년간 미국의 경고에도, 2020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유럽연합(EU)의 최대 교역국이 되고 2022년 EU의 대중국 수출과 수입 모두 증가한 것도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모습은 '글로벌 사우스(제3 세계)'에서 더 확연하다. 일례로 2021년도 중국-아프리카 교역 규모는 2020년 대비 35% 증가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또한 화웨이와 같은 중국의 테크 기업을 기간통신사에서 배제하려는 미국의 집중적 캠페인이 유럽과 인도에선 비교적 먹히고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네시아 등 다른 지역에선 그렇지 못하다.

폴슨은 이를 워싱턴의 “중국 영향력 축소”(less of China) 접근법으로 규정했다. 제3국들을 상대로 ‘중국과 놀지 말라’고 사실상 훼방을 놓는 네거티브 전략인 셈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왕궁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안내를 받으며 걷고 있다. 2022.12.8.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왕궁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안내를 받으며 걷고 있다. 2022.12.8. 연합뉴스

‘미국 빼고 나와 놀자’는 중국, 자유무역 공세

베이징은 “중국 영향력 확대”(more of everyone but America)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는 게 폴슨의 생각이다. 미국을 뺀 다른 모든 나라를 상대로 ‘나랑 놀자’고 제안하는 포지티브 전략이다.

제로코로나 정책 폐기와 국경 재개방을 계기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비롯한 외국 지도자 초청, 외국 자본과 투자 유치. 시진핑 국가주석의 외국 순방 등으로 이런 전략이 구체화하고 있다고 폴슨은 보고 있다.

자유무역 확대 움직임도 공세적이다. 그 대표적 사례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과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비준,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가입 신청, 그리고 에콰도르에서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양자 자유무역협정(FTA) 업그레이드 및 신규 체결 등을 들 수 있다. CPTPP의 전신인 TPP의 경우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던 트럼프 행정부 때 탈퇴한 이후 지금까지 복귀하지 않은 상태이다.

폴슨이 보기에, 미국은 첨단 반도체 등 극히 민감한 기술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더 광범위하게 중국과의 해체를 촉발하는 전략은 리스크가 크다. 미국 기업들은 제3국에 비해 경쟁열위(competitive disadvantage)에 놓이고, 미 소비자들도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멀지 않아 좌절감을 느낄 곳은 베이징이 아니라 워싱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폴란드의 레오파르트2 전차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폴란드의 레오파르트2 전차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2년과 2008년 흡사…미·중 관계만 추락

폴슨에 따르면, 작년의 국제정세는 세계금융위기 때인 2008년과 모든 측면에서 흡사했다. 인접국인 조지아에 대한 러시아 침공, 이란과 북한과의 지속적인 긴장 상황, 글로벌 차원의 극심한 경제 도전들이 그것이다. 단 하나의 차이는 미국과 중국 관계다.

2008년에는 경쟁과 협력 속에서 전략적 공통현안인 금융위기 극복에 이바지했으나, 지금은 적대적이다. 폴슨은 “심지어 일자리 창출 투자나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공동 혁신과 같이 한때는 긍정적으로 여겨졌던 사안들마저도 국가안보의 프리즘을 통해 본다”고 개탄했다.

그는 세계 2대 경제국인 미국과 중국이 대립과 경쟁은 하되, 글로벌 현안과 특정 분야에서는 서로 협력하고 호혜적 경제관계를 유지하는 게 양국 모두에 이익이라고 조언한다. 지금 양국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해서 그냥 방치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폴슨은 “특히 중요한 것은 두 나라가 거시경제적 리스크에 대한 관점을 공유하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경제정책에 대한 이해와 미 정책결정자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공동 논의 현안으로 거시경제 안정성 외에도 △ 팬데믹 대비 태세 △ 기후 변화 △ 테러와의 싸움 △ 핵확산금지조약(NPT) △ 글로벌 금융시스템 보안 등을 예시하고, 각급의 양국 파트너들이 “더 자주 만나 더 솔직하고 더 많은 대화를 통해” 입장을 조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명백한 정치적, 안보적, 이념적 긴장이 이런 사안에 대한 각자의 이익을 위한 협력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를 위한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개막 연설하는 바이든. 2021.12.10 연합뉴스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를 위한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개막 연설하는 바이든. 2021.12.10 연합뉴스

무차별 중국 디커플링 비판…‘맞춤형’ 도출해야

폴슨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무차별적 탈동조화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한다. 이는 미국이 비용을 치르는 한이 있어도 중국을 손보겠다는 미 의회 초강경파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폴슨은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조 바이든 행정부가 “영리하고 또 용감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는 “어느 정도의 ‘맞춤형’ 디커플링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포괄적 디커플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포괄적 디커플링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폴슨이 보기에, 무기 관련 기술과 함께 이중 및 다용도 기술들을 통제하고, 중국의 투자와 글로벌 기술기업 합병 · 인수에 대한 집중 점검은 꼭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쟁력과 관련해 중요하지 않은 영역들에서까지 대중 관계 해체를 부추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도 동맹국들로부터 반드시 얻어내야 하는 것과 단순히 얻으면 좋겠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구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 텐센트 사옥 [신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 광둥성 선전시 텐센트 사옥 [신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은 세계 2대 경제국이고, 최대 제조업 국가이며, 최대 교역국으로서 앞으로도 거대한 시장으로 남고 글로벌 금융시스템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 유력하다는 점에서 미국은 중국 시장에서 기회를 얻기 위해 중국과 공격적으로 협상해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폴슨은 미국의 자세를 스스로에 ‘경제적 철의 장막’을 씌우는 '숙명론적'인 것이라고 꼬집고, 미국을 향해 “호혜적 교역이 되도록 디커플링을 어떻게 다룰지 중국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들은 베이징을 고립시키거나 봉쇄하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며 “이는 중국과의 분리를 세계가 거부한다는 것, 그리고 워싱턴과 나머지 관계에 쐐기를 박으려는 중국의 시도에서 미국이 챙겨야 할 메시지”라고 덧붙였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