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사회의 기본틀 되지 못하는 상실감
극우에 열광하는 교인 60대 이상이 압도적
동원력 필요한 보수 정치 세력과 손 맞잡아
거리 집회·선거 개입 논란으로 사회적 조롱
세력 축소에도 일부는 더 강한 급진화 예상
한국 현대사의 굴곡은 종종 종교의 궤적과 나란히 흘러왔다. 교회는 산업화의 파고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의 안식처였고,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거리에서 기도하며 저항하는 공동체였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권력의 언저리에 머물며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했고, 이 두 힘은 늘 팽팽히 맞서 왔다. 바로 그 긴장의 끝에서, 오늘 한국 개신교는 새로운 분기점에 서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한국 사회의 뜨거운 논란을 불러온 집단—이른바 '극우 개신교'라고 불리는 흐름—은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수십 년간 보수적 개신교 세력은 정치·사회적 의제를 선도하며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이전과의 단절이 아닌, 축적된 문제들의 폭발로 인해 드러나는 균열의 국면이다. 극우 개신교라 불리는 흐름이 왜 등장했고, 어떤 방향으로 재편될지, 그리고 그 과정이 한국 사회와 신앙 공동체에 어떤 질문을 남길지를 예측해 보고자 한다.
극우 개신교의 형성: 공포가 신앙을 삼킨 시간
극우 개신교의 근본에는 한 가지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상실의 공포'다. 기독교가 한 시대를 지배하던 문화의 중심에서 급속히 밀려난 지난 30년은 많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었다. 출산율 감소로 줄어든 교인 수, 청년층의 이탈, 세속화된 사회 분위기—이 모든 것은 교회의 세계관이 더 이상 사회의 기본 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신호였다.
이때 등장한 논리가 있다.
"우리가 신앙을 잃어버린 것은 신앙을 빼앗으려는 세력 때문이다."
이 논리는 사회를 '영적 전쟁의 현장'으로 재구성했다. 성소수자, 여성운동, 민주화 운동, 진보정당, 시민단체, 이 모두가 종교적 공격의 대상이 됐고, 교회는 정치적 전선을 구축하는 구조 속으로 빠져들었다. 여기에 보수 정치 세력은 막대한 정치적 동원력이 필요한 시기마다 이 집단과 손을 맞잡았고, 일부 목회자들은 사실상 준정치 지도자로 기능하게 됐다. 이 상호 의존관계는 결국 신앙 공동체를 '정치적 진영의 거점'으로 변질시키며 극우 개신교라는 흐름을 굳히는 데 기여했다.
2020년대 이후의 전환점: 균열의 조짐들
그러나 202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이 흐름에는 분명한 피로와 균열이 찾아오고 있다. 극우적 수사에 열광하는 주요 교인층은 60대 이상이 압도적이다. 젊은 세대는 교회가 신앙보다 정치·증오·배타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모습을 지켜보며 등을 돌렸다. 교회는 다음 세대를 잃었고, 이 흐름은 중장기적으로 구조적 붕괴를 향해 간다.
거리 집회와 선거 개입 논란은 교회를 사회적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교회가 왜 저기에 있는가?"
이 질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극우적 목소리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일부 목회자들은 "이러다 한국 개신교의 미래는 완전히 소진된다"고 우려하며 교회가 '정치적 진영의 도구'가 된 현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아직 미약하지만, 이 균열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앞으로 극우 개신교의 미래
1. 세력 축소와 주변화
가장 기본적인 전망은 세력의 축소와 영향력의 주변화다. 고령화는 이 흐름의 가장 결정적 약점이다. 교회를 지탱해 온 장년층이 자연적으로 줄어들면서, 정치적 동원력도 함께 약화된다. 한때 수만 명이 모이던 거리 집회는 점차 힘을 잃고, 교회가 정치에 행사하던 영향력도 서서히 축소된다. 이 흐름을 더 가속하는 것은 한국 사회 전체의 정치문화 변화다. 혐오, 음모론, 공격적 종교 언어는 이제 설득력을 잃고, 시민들은 더 다양한 가치와 관점을 지지한다. 극우 개신교가 고수하는 세계관—반공, 반페미니즘, 반LGBTQ(성소수자)—이런 구도가 젊은 세대에게는 더 이상 신앙적 언어로 읽히지 않는다. 결국 극우 개신교는 정치적 기능을 상실한 '고립된 공동체'가 되어 갈 가능성이 크다.
2. 더 강한 급진화(반동적 강화)
그러나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세력이 줄어드는 일부 집단에서는 급진화가 강화될 수 있다. 세력이 약해질수록 내부 결속은 더욱 공포와 배타적 담론에 의존하게 된다. 교인 감소와 재정 위기는 일부 지도자들이 더 강한 '종말론적 메시지’, 더 강력한 정치 개입, 더 극단적인 배타주의를 설교하는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극우 개신교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재편될 수 있다.
▪︎ 내부를 철저히 폐쇄화한 준-종교적 공동체로 재편
▪︎ 정치적 음모론과 종교적 종말론을 혼합한 메시지 강화
▪︎ 특정 정치 지도자나 정당을 ‘신적 사명’으로 포장하는 숭배 구조
▪︎ 온라인 기반의 급진적 네트워크 생성.
이런 급진화는 사회적 폭력과 충돌의 위험성을 높이지만, 전체 개신교 안에서는 여전히 소수 흐름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3. 해체 이후의 새로운 부흥, '포스트 극우' 신학의 등장
그러나 이 흐름의 소멸이 곧 한국 개신교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극우 개신교의 균열 이후에는 새로운 신학적 상상력과 교회 개혁 운동이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그 시작은 이미 곳곳에서 보인다.
1) 정의·평화·인권을 중심에 둔 신학의 재부상 : 민중신학, 생태신학, 페미니스트 신학과 같은 '주변부의 신학'들이 새로운 세대에게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신학들은 종교의 임무를 권력 동원이 아니라 삶의 해방과 치유에 둔다.
2) 교회 공동체의 소형화·수평화 : 거대한 성전 중심의 교회 형식은 쇠퇴하고, 작은 공동체, 지역 기반, 나눔 중심의 '작은 교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교회들은 정치적 목소리보다 일상의 돌봄과 사회적 연대로 교회의 역할을 새롭게 세운다.
3) 예수 중심성의 회복 : 극우 개신교가 정치적 구호에 예수의 이름을 끌어다 붙이던 시대는 지나고 있다. 앞으로의 교회는 예수의 복음에 새롭게 집중할 것이다—특히, 약자를 향한 연대, 구조적 죄에 대한 저항, 공동체적 회복이라는 본래의 복음 정신으로.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 개신교는 오히려 정직한 쇠퇴와 건강한 재건이라는 역설적인 길을 걸을 수 있다.
한국 사회에 남겨진 질문: "신앙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극우 개신교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결국 한국 교회 전체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신앙은 권력의 도구가 될 것인가, 아니면 고통받는 이들의 벗이 될 것인가? 교회는 사회적 지배를 꿈꿀 것인가, 아니면 이웃을 섬기는 공동체로 돌아갈 것인가? 기독교는 배타적 진영논리 속에서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화해와 정의의 영성을 회복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단지 신학만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극우 개신교가 정치적 극단주의의 통로가 될지, 아니면 쇠퇴 이후 건강한 신앙 운동으로 재탄생할지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사회적·신학적 성찰에 달려 있다.
극우 개신교는 지금 역사적 쇠퇴의 길목에 서 있다. 그러나 이 쇠퇴가 단순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교회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겪어야 할 정화와 전환의 과정일 수 있다. 한국 개신교는 한 시대의 권력 신화를 잠시 붙잡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신앙은 본디 권력이 아니라 진실과 사랑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신학은 이 세상의 거짓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를 향해 열려 있는 언어다.
극우 개신교의 시기는 이제 저물어 간다. 그러나 그 뒤에는 다시금 예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려는 수많은 작은 교회들, 새로운 영성을 추구하는 신학자들,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평범한 신자들이 새 부흥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파편화와 해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한국 교회는 지금, 새로운 빛이 스며드는 길목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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