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송전탑·군 기지 확장 반대 앞장

시대의 회심 요구한 '현장 목회자'의 외침

"불의와 싸우다 유배된 땅에 복음 빛난다"

췌장암 3기 투병 중에도 평화와 연대 권고

사드 배치, 송전탑, 군사기지 확장 등 현장에서 어려운 이웃들과 늘 함께 해 온 백창욱 전 대구 새민족교회 목사가 췌장암 3기의 고통 중에 있다. 백 목사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신앙과 연대, 평화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의 삶은 단순히 설교나 교리적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기록이다.
창욱 목사의 신앙과 삶, 그리고 고통을 생생히 느끼며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인간적 부활의 힘과 희망을 배우게 된다.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을 통해 신앙과 연대, 정의의 의미를 다시금 성찰하고 나누고자 한다. (박철 시민기자·은퇴 목사)

생명의 현장에 서다

백창욱 목사. 사진=박철 시민기자
백창욱 목사. 사진=박철 시민기자

사람의 목소리에는 생애가 스며 있다. 그가 걸어온 길, 그가 울었던 밤, 그가 품은 신념이 목소리에 묻어난다. 그것은 마이크 너머의 웅성거림이 아니었다. 방송에 실린 유명인의 외침도 아니었다. 바로 백창욱 목사, 그가 현장에서 내뱉은 살아 있는 신앙의 목소리였다. 

그의 발걸음은 늘 고통의 현장을 향했다.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의 한가운데, 군사기지 확장에 맞선 마을 한복판, 그리고 송전탑이 세워지는 들판에서…그는 언제나 가장 앞에 섰다. 

그의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만 빛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현장 목회자'라 불렀다. 교회는 사람들의 눈물과 분노, 생존의 호흡이 있는 곳이라 했다. 사드는 단순한 방어용 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이웃을 분열시키는 불안의 장치였다. 

평택에서 주민들은 아이의 웃음 대신 헬기 소음에 익숙해져야 했고, 청도 삼평리에서는 전자파와 용역의 발길질 속에서도 밭을 지켜야 했다. 제주 강정에서는 바다가 철조망으로 잘려 나가고, 오래된 마을 공동체가 이념의 이름으로 쪼개졌다. 

그 한가운데서 백 목사는 기도의 손으로 사람들의 등을 받쳐주었다. 그의 말은 길지 않았다. "우리가 여기서 포기하면, 평화는 설 자리를 잃습니다." 그의 음성은 시대의 회심을 요구하는 예언자의 외침이었다. 

 

사드 배치 반대 투쟁 현장예배에서 말씀을 전하는 백창욱 목사. 사진=박철 시민기자
사드 배치 반대 투쟁 현장예배에서 말씀을 전하는 백창욱 목사. 사진=박철 시민기자

몸으로 쓰는 복음, 흉터로 새기는 신앙 

백창욱 목사의 싸움은 언제나 몸의 언어로 이루어졌다. 그는 경북 청도 삼평리에서 송전탑 반대 운동을 벌이는 농민들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전선이 지나가는 들판에서 주민들은 "밭을 잃으면 생명을 잃는다"고 울부짖었고, 그는 그들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이 말은 정치 구호가 아니라, 신앙 고백이었다. 삼평리에서 그는 경찰의 방패에 밀려 쓰러지면서도 찬송을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소서'라는 노래가 최루탄 냄새 속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의 몸은 싸움의 기록이다. 손목의 흉터, 무릎의 상처, 피로에 쪼들린 폐와 위. 그의 몸은 늘 긴장 속에 있었고, 병으로 쓰러지기도 했지만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병상에서도 말했다. "병마도 나의 싸움터다. 이 싸움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 안의 절망과의 싸움이다."

췌장암 3기, 수술을 포기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는 하루 24시간 통증을 견디며, 그 통증을 예배로 받아들였다. 그의 병상은 또 하나의 광야였고, 그곳에서도 그는 "믿음은 두려움을 품은 채 걷는 용기"라고 고백했다. 

 

경찰과 대치중인 백창욱 목사. 사진=박철 시민기자
경찰과 대치중인 백창욱 목사. 사진=박철 시민기자

절망의 밑바닥에서 듣는 부활의 목소리 

그의 글에는 늘 '부활'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부활은 기적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인간의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의 책 〈유배지에서 예수 읽기〉에서 이렇게 썼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불의에 맞서 싸우다 유배당하는 일이다. 그러나 유배의 땅에서야 비로소 복음은 다시 빛난다."

그에게 유배는 패배가 아니었다. 그는 고통 속에서 부활을 배웠다. 그는 "부활은 교리의 사건이 아니라, 절망의 밑바닥에서 다시 걷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삼평리의 어머니들이 송전탑 아래서 부르는 찬송에서, 그는 부활의 목소리를 들었다. 강정의 바다에서 철조망 너머를 바라볼 때조차, 그는 희망이 죽지 않았음을 믿었다. 

연대와 촛불, 사랑으로 세우는 복음 

백창욱 목사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농민, 노동자, 신학생, 신부, 스님, 그리고 이름 없는 평화활동가들이 그와 함께했다. 그는 그들과 밥을 먹고, 구호를 외치며, 함께 체포됐다. 그의 연대는 구호가 아니라 신앙의 행위였다. 

"사랑은 혼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가 놓일 때, 그 위로 하나님이 지나가십니다." 

청도 삼평리의 촛불 아래서 그는 주민들과 떡을 나누며 기도했고, 성주 들판에서도, 강정 해안에서도, 그는 함께 손을 잡고 찬송을 불렀다. 그의 찬송은 슬픔의 노래이며 희망의 언어였다. 그는 예배를 거리로 끌어내어, 복음을 사람들 사이에, 상처의 자리 위에 세웠다. 그의 연대는 곧 복음이었고, 그의 복음은 곧 연대였다. 

통증과 현실 속에서 걷는 믿음 

항암치료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말했다. 그는 고통을 통과하며 신의 숨결을 들었다.

"통증은 생명이 나에게 여전히 말을 걸고 있다는 신호다."
"통증은 신의 언어다. 나는 지금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는 교회가 권력의 그늘로 기울어질 때마다 경고했다. 

"예수의 길은 성공의 길이 아니라 실패의 길이다. 그러나 그 실패 안에 구원이 있다.” 
"교회는 권력의 편에 설 때 죽고, 약자의 편에 설 때 산다." 

그의 신앙은 화려한 예배당보다 먼지와 땀의 현장을 사랑했다. 그는 거기서 예수의 얼굴을 보았다. 병상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내 눈으로 내 조국이 미제로부터 독립하여 자주평화를 누리는 날을 보고 싶다."

그에게 자주와 평화는 복음의 다른 이름이었다. 불의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정의의 공동체를 꿈꾸었다. 그의 신앙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복음을 이념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그는 복음을 살았다. 

 

최근 예수살기 동지들과 함께 한 백창욱 목사.(맨 왼쪽) 사진=박철 시민기자
최근 예수살기 동지들과 함께 한 백창욱 목사.(맨 왼쪽) 사진=박철 시민기자

오늘도 길 위에서, 부활은 살아 있다 

오늘도 백창욱 목사는 침묵의 순례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육신은 병상에 눕혀 있으나, 그의 영혼은 여전히 바람 따라 걷는다. 그가 걷는 길은 생명의 길, 깨어남의 길, 사랑의 길이다. 그의 고통은 시대를 품은 눈물이며, 우리 모두를 깨우는 예언의 울림이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당신의 신앙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의 고백은 양심의 선언이다. 그의 부활은 육체의 생명보다 양심의 깨어남이다.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끝내 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났고,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았다. 그가 말한 '부활'은 결국 사랑으로 다시 서는 일이다. 

백창욱 목사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발자국은 우리 안에서 되살아난다. 그가 외쳤던 평화, 정의, 연대, 사랑의 언어는 지금도 새로운 세대의 입술에서 되뇐다. 그의 삶은 하나의 시요, 하나의 기도였다. 그의 고통은 공동체의 부활로 이어졌다. 그의 몸으로 쓴 복음은 이 땅의 새로운 예언으로 남았다. 

오늘 우리가 그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의 고통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그의 부활을 이어 걷는 일이다. 그의 길은 우리의 길이며, 그의 희망은 우리의 과제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그가 걷던 길 끝에서, 그는 반드시 다시 일어나 하늘의 빛 가운데 서 있을 것이다. 그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이며, 그의 고통은 이 땅의 희망이다.


췌장암 투병 중인 백창욱 목사님 위해 마음 전하실 분들은 (국민은행 089-21-0513-155) 백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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