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은퇴 목사가 기도하는 소원 12가지

꿈꾸는 이들 덕분에 세상이 조금씩 나아져

2023년 12월 25일 일본 영사관 앞 일제 강제동원 노동자 상 앞에서 필자
2023년 12월 25일 일본 영사관 앞 일제 강제동원 노동자 상 앞에서 필자

어물쩍하다 보니 어느새 일흔이 되었다. 젊은 날엔 서른도 멀게만 보였는데, 세월은 어느새 내 머리에 흰 서리를 얹어 놓았다. 돌이켜보면 삶은 늘 어딘가 불안정했고, 계획한 대로 흘러간 적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불완전한 길 위에서 나는 나름의 평화를 배웠고, 실패의 여백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느꼈다.

나는 스무 살 무렵 대학시절, 진보적 세례를 받고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정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 '아웃사이더', 곧 비주류로 살아왔다. 권력과 타협하지 않았고, 교회 안에서도 세상의 질서에 고개 숙이지 않았다. 때로는 외로웠고, 때로는 미움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나를 고집스러운 이상주의자라 불렀다. 그러나 그것이 내 신앙의 본질이라 믿었기에 한 번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상(內傷)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상처들조차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옹이가 박힌 나무는 부러지지 않는 법이다. 내 인생의 옹이들은 세상의 바람과 시련을 견디게 한 단단한 기준이 되었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좋은 부모를 만났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장인 장모님을 모셨으며, 무엇보다 최상의 아내와 세 자녀,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다. 그들의 사랑과 신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서원 기도대로, 나는 우여곡절 끝에 목사가 되었다. 그 길이 쉽지는 않았다. 목회는 때로 천국을 설교하면서도 지옥을 건너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지난 35년간 교회가 주는 밥을 먹으며, 말씀과 공동체 속에서 살았다. 성공이나 출세를 위해 몸부림치지 않았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감투나 명예는 한 때의 무게일 뿐, 결국 내려놓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짐을 이제야 안다.

다섯 해 전, 내가 속한 감리교단에서 은퇴했다. 교회에서 물러난 뒤, 더 이상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질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돌아다닌다. 하루하루가 감사이고, 소소한 일상이 예배처럼 느껴진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내 인생에 후회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아직 남은 것이 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꼭 보고 싶은 일들이다. 이것이 내가 하느님께 드리는 마지막 기도이며,  '나의 소원 열두 가지'이다.

1. 한반도에서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는 날을 보고 싶다.

전쟁의 상흔 위에 세운 나라가 아직도 타국의 군화 아래 머무는 현실이 아프다. 해방은 분명히 이루어졌다고 배웠지만, 우리의 영혼은 아직 완전한 독립을 누리지 못한다. 진정한 독립이란 국기의 게양이나 정부의 수립이 아니라, 영혼의 주권 회복이다. 그날이 와서 미군의 부대가 철수하고, 우리 하늘 위에 오직 우리의 별과 우리의 바람만이 남게 된다면, 비로소 이 땅의 평화는 외형이 아니라 존재의 평화, 영혼의 평화로 완성된다. 나는 그날의 하늘을 보고 싶다. 외세의 기지가 사라지고, 탱크가 다니는 대신 어린이들이 연을 날리는 들판, 강물이 총탄의 그림자 없이 흐르는 그 나라. 그날이 오면, 나의 늙은 눈에도 눈물이 맺히리라.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기다림이 끝난 이의 눈물이리라.

2. 더 이상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우리의 역사는 언제나 거대한 힘의 틈새에서 흔들렸다. 미국의 눈빛을 살피며, 중국의 눈치를 보고, 일본의 손짓을 엿보던 세월. 그 사이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결정을 스스로 내리지 못했는가. 이제는 스스로의 가치와 양심으로 결정할 줄 아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 정치적 독립보다 더 어려운 일은 정신의 독립이다. "우리의 기준이 무엇인가?"라고 스스로 물을 수 있는 나라, 그 물음에 답을 외세의 언어가 아닌 우리의 언어로 할 수 있는 나라. 나는 그 자존의 시대를 보고 싶다. 외교가 거래가 아니라 양심의 대화가 되고, 국익이 탐욕이 아니라 공의(公義)의 이름으로 논의되는 시대.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 속의 한 점이 아니라, 하느님 앞 하나의 나라로 서게 된다.

3. 남과 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을 보고 싶다.

통일이 이상이라면, 자유로운 왕래는 최소한의 인간성이다. 이산의 비극이 끝나고, 피붙이들이 다시 손을 잡는 날, 분단은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역사의 '과거형'이 된다. 나는 상상한다. 개성의 장터에서 서울의 상인과 웃으며 흥정하고, 평양의 청년이 부산의 바다에서 기타를 치는 장면을. 그날이 오면, 우리의 국경은 철조망이 아니라 길이 된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상처가 치유되고, 우리 민족의 노래가 다시 하나의 선율로 울려 퍼질 때, 나는 그 노래를 따라 흙 속에서도 미소 짓고 싶다.

 

2020년 5월 30일 처남 김의기 열사 40주기 서강대학교 김의기  기념비 앞에서 아내와 함께. 사진=장영식
2020년 5월 30일 처남 김의기 열사 40주기 서강대학교 김의기 기념비 앞에서 아내와 함께. 사진=장영식

4.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이 땅의 가장 순수한 청춘들이, 두려움과 명령 속에서 청춘을 소모하지 않는 세상. 총 대신 악기를 들고, 철모 대신 책을 들고, 피와 명예 대신 평화와 지혜를 노래하는 나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국방이다. 국가를 지키는 힘은 무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국민이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그 나라가 국민을 신뢰할 때 그 믿음이 최고의 방패다. 젊은이들이 꿈을 꾸고, 사랑을 배우고, 여행을 떠나는 자유. 그 자유가 곧 나라의 방어력이다. 그런 날의 군대 없는 나라를 보고 싶다. 총구가 아닌, 기타 줄에서 울리는 평화의 진동을 듣고 싶다.

5. 남북이 통일돼 스위스처럼 영구 중립국이 됐으면 좋겠다.

동서의 갈등 속에서 평화를 중재하고, 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평화의 나라, 대한민국'의 이념이 진영이 아니라 평화의 중재자로 서는 나라. 그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전쟁'이란 단어를 교과서 속에서만 배우게 된다면, 그야말로 인류 앞에 내놓는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날, 국방 대신 평화를 연구하는 대학이 세워지고, 무기 대신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 수출되는 나라를 꿈꾼다. 그것이 내가 바라보는 마지막 이상이다.

6. 노동자와 농민이 존중받는 사회를 보고 싶다.

흙 묻은 손이 더럽다고 말하지 않고, 땀 흘린 노동이 천대받지 않는 세상. 우리의 밥을 짓는 손, 우리의 길을 닦는 손, 그 손들이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나라를 꿈꾼다. 노동이 천대받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돈으로 일의 가치를 재지 않고, 사람의 수고를 존경으로 평가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 나라에서는 '노동의 대가'보다 '노동의 존엄'을 먼저 말한다. 나는 그날 저녁 논두렁에 앉아 흙 묻은 손으로 밥 한 술을 떠넣으며, 이 땅의 정의가 얼마나 달콤한지 음미하고 싶다.

7. 핵발전소가 제로인 나라, 미세먼지 걱정 없는 하늘을 보고 싶다.

창조주가 만드신 그 하늘의 푸르름이 다시 이 땅 위에 돌아오기를 바란다. 산이 산빛을 되찾고, 강이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이 숨을 깊게 들이쉬어도 되는 나라.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동반자로 여기는 사회. 우리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온 폭력을 회개하고, 바람과 햇빛이 다시 우리를 살리는 세상. 죽기 전에 그런 하늘 아래에서 나는 마지막 숨을 쉬고 싶다. 그 숨이 더 이상 공포가 아니라, 감사의 숨결이 되기를.

8. 부유하지 않아도, 양극화 없는 균등한 사회를 보고 싶다.

진정한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간극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간격이 좁아지는 나라. 돈이 아니라 인격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고, 성공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삶의 품격이 존경받는 사회. 그런 나라에서는 경쟁보다 협력이, 소유보다 나눔이 더 큰 기쁨이 된다. 시장의 상인과 교수, 농부와 시인이 한 상에 둘러앉아 웃을 수 있는 나라를 보고 싶다.

9. 학벌이나 성적 취향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하느님이 만드신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동체.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다른 이를 상처 주지 않는 사회. 사람은 하나의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꽃처럼 다양하고, 하느님은 그 다양성 속에서 미소 지으신다. 그것이야말로 하늘나라의 모형이다. 나는 그날, 서로 다른 색깔의 사람들이 서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노래하는 광장을 보고 싶다.

10. 국가보안법이 철폐되는 날을 보고 싶다.

내 형제자매를 원수로 만드는 법, 사상의 자유를 억누르고, 양심의 고백을 죄로 만드는 법, 그 법이 사라지는 날, 비로소 인간은 인간으로 설 수 있다. 생각의 자유, 말의 자유, 믿음의 자유— 그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이념이 피붙이를 갈라놓고, 신념이 총을 들게 한 세월은 이제 끝나야 한다. 나는 그날, 남과 북의 교회가 함께 찬송을 부르고,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들어주며 "그래, 다르지만 함께 살자"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싶다. 그날이 진정한 해방이다.

11. 국회가 싸움터가 아니라 봉사의 집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

국민의 세금으로 서로의 멱살을 잡는 광경은 이제 그만.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책임이다. 국회의사당이 권력의 전당이 아니라 국민의 기도의 집이 되는 날, 정치인은 국민의 시선보다 양심의 시선을 먼저 의식한다. 그날이 오면 나는 조용히 미소 지을 것이다. 그 미소는 희망이 아니라, 오랜 기도의 응답이다.

12. 죽을 때, 고통스럽더라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죽고 싶다.

생의 마지막 순간, 두려움보다 감사가 크고, 미련보다 평안이 깊기를 바란다. 내가 걸어온 길이 완전하진 않아도, 그 길이 진실을 향해 있었음을 고백할 수 있기를. 내 삶의 모든 고통이 하나의 사랑으로 정리되고, 내 모든 실패가 은총으로 해석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입술에서 "주여, 이제 종을 평안히 놓아주소서." 그 한마디를 고백할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 말 한 줄로 내 생의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죽음의 평화이리라.

이것이 나의 소원 열두 가지다. 하느님이 내 모든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더라도, 나는 그분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나는, 그분이 허락하신 풍요로운 삶을 누렸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이상은 세월에 닳아 퇴색한 게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현실 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 길 끝에서 나는 깨닫는다. 사람이 완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꿈을 꾸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을. 남은 생은 덤이다. 나는 오늘도 하느님께 감사하며, 내일의 태양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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