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측근, 장관, 군까지 다수 연루…대중들 분노
주범이자 최측근은 압수수색 전 국외 '도주'
"에너지 부문서 불법 자금 조성·분배 총괄"
법무장관은 직무 정지, 에너지 장관은 사직
"국민, 군대, 국제 파트너의 신뢰 위태롭다"
"작은 변화론 더는 불신의 골을 못 메워"
1억 달러(약 14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부패 스캔들이 우크라이나를 뒤흔들고 있다. 국영 원자력 공사 에네르고아톰의 고위 간부 등이 민간 하청 업체들로부터 계약금의 10∼15%를 리베이트로 받아 비자금을 조성하고 국외 네트워크를 통해 세탁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정·재계 고위 인사들이 이들의 뒷배를 봐주거나 범행을 묵인해왔다는 게 주요 골자다.
'1억 달러' 부패 스캔들, 젤렌스키 정권 '강타'
최측근, 장관, 군까지 다수 연루…대중들 분노
여기엔 군에서부터 정부 최고위급 인사들, 그리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오랜 측근까지 연루된 걸로 드러나면서 젤렌스키도 궁지에 몰리고 있다.
핵심 용의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코미디언 시절 공동 설립한 코미디 극단 크바르탈95의 공동 소유주이자 사업파트너 티무르 민디치(46)이다. 12일 로이터, AFP,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국가반부패국(NABU)과 반부패특별검사실(SAPO)은 11일 민디치 등 7명을 입건해 이 중 5명을 구속했다.
검찰은 민디치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우호적 관계를 이용"해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부문에서 불법적으로 얻은 자금의 조성, 분배, 세탁을 총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디치는 또한 억만장자 이호르 콜로모이스키의 사업파트너이기도 하다. 콜로모이스키는 젤렌스키의 2019년 대선 캠페인을 후원했고, 2023년 이후 사기와 자금 세탁 혐의로 현재 구속된 인물이다.
주범이자 최측근, 압수수색 전 국외 '도주'
"에너지 부문서 불법 자금 조성·분배 총괄"
문제는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민디치가 자택 압수수색 직전인 10일 외국으로 도주했다는 점이다. 이에 검찰총장 대행을 지낸 빅토르 추마크는 미국의 RFE/RL 방송에서 "전시 이동 제한이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법집행기관의 도움 없이 그렇게 빨리 출국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누군가 적극적으로 그의 탈출을 도왔다는 얘기가 된다.
'미다스 작전'으로 불리는 이번 반부패 수사에 걸려든 또 다른 인물은 헤르만 갈루셴코 법무부 장관이다. 수사 당국은 갈루셴코가 예전에 4년간 에너지부 장관으로 있을 때 뒷배를 봐준 대가로 민디치로부터 '개인적 이익'을 챙겼다고 보고 있다. 스비틀라나 흐린추크 현 에너지부 장관도 입건됐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신뢰의 문제다. 혐의가 있다면 책임져야 한다"고 법무, 에너지부 장관들의 사임을 지시했고, 이에 율리아 스비리덴코 총리는 12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갈루셴코의 직무를 정지시켰고 흐린추크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갈루셴코는 법정에서 '무죄'를 증명하겠다고 했고, 흐린추크도 범행 연루를 부인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모든 이에게 매우 어려운 시기로, 정전과 러시아의 공격, 인명 손실을 겪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분야에서 여전히 일부 부정행위가 존재한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랜 측근인 민디치와의 관계 등에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법무장관은 직무 정지, 에너지 장관은 사직
젤렌스키, 최측근 민디치 관계엔 언급 없어
또한 국방부 장관을 지낸 루스템 우메로프 국가안보·국방위원회(NSDC) 서기, 올렉시 체르니쇼프 전 부총리의 이름도 등장한다. 이에 우메로프는 관련 혐의를 부인했고, 체르니쇼프는 지난 6월에 별도의 부패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NABU는 지난 15개월 수사하면서 70건의 용의자 가택 압수수색과 1000시간 길이의 '비밀 녹음'도 했다. 녹음에는 민디치는 '칼슨', 체르니쇼프는 '체 게바라'로 별명을 썼는가 하면, 계약 유지 대가로 돈을 받거나, 불응할 때 "직원들을 군에 징집시키겠다"고 협박하는 발언도 포함돼 있다.
늦가을인데다,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러시아의 집중 폭격 탓에 전력난이 심화하고 우크라 시민들이 추위와 어둠 속에 고통을 받는 와중에 공개된 이번 스캔들은 젤렌스키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불렀다. 그리고 이 분노의 화살은 는 젤렌스키 대통령 본인을 향할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인다.
젤렌스키의 '수상한' 행보를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지난여름 젤렌스키는 반부패 수사기구인 NABU와 SAPO의 독립성을 약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가 이에 시민들의 대규모 항의 시위와 서방의 압력으로 72시간 만에 철회했다. 이번 수사는 NABU와 SAPO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젤렌스키가 이 사건을 막기 위해 그런 법안을 통과시킨 게 아니냐는 얘기다. 당시 시위 현장엔 "이건 내 형이 죽으면서 바랐던 미래가 아니다"란 피켓을 든 시민도 있었다. 추마크 전 검찰총장 대행은 "이번 수사가 여름에 NABU에 가해진 압력의 이유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아니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 군대, 국제 파트너의 신뢰 위태롭다"
"작은 변화론 더 이상 불신의 골을 못 메워"
최측근이 연루된 이번 초대형 스캔들은 '반부패 개혁가' 이미지를 내세워 집권한 젤렌스키의 도덕적 기반을 흔들고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불러왔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물론 그동안 러시아에 맞서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일관되게 제공해왔던 서방국 정부들로부터도 불신과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싱크탱크 독일-우크라이나 뷰로의 공동 설립자이자 전무인 마티아 넬레스는 RFE/RL에 "국민, 군대, 국제 파트너 사이에서 신뢰가 위태롭다. 감독위원회 해산, 몇몇 개인 형사처벌, 혹은 새로운 감사도 이미 진행 중인 피해를 되돌릴 수 없다"며 "작은 변화들로는 더 이상 불신의 골을 메울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젤렌스키 대통령 임기에서 전환점이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스캔들은 4년 가까이 지나면서 우크라 원조 피로감에 젖은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진영에서 "우리 국민의 혈세가 부패한 정권에 흘러간다'는 반발 여론을 촉발할 공산이 크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극히 불운한 일"이라며 키이우가 이를 진지하게 다루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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