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는 간첩 혐의들…과장‧조작 의심 짙어

윤석열 정부 비판 목소리에 무차별적 '친북' 딱지

정권 초부터 시작된 치밀한 공안정국 준비 작업

주기적 되풀이되는 종북몰이, 국보법 방치 안 돼

동남아 국가에서 북측 인사들과 접촉해 지령을 받고 활동한 혐의를 받는 경남진보연합 관계자들이 각각 31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2023.1.31. 연합뉴스
동남아 국가에서 북측 인사들과 접촉해 지령을 받고 활동한 혐의를 받는 경남진보연합 관계자들이 각각 31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2023.1.31. 연합뉴스

얼마 전 국가정보원은 <조선일보> 등 족벌언론과 한 몸처럼 움직이며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실시간 중계를 하면서 민주노총 등 전국 10군데를 동시다발로 압수수색했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의 치밀한 정치적 기획에 따른 한바탕 쇼 아니냐는 의심과 비판이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실제로 국정원과 족벌언론들의 호들갑이 일으킨 거품을 걷어내고 이 사건들을 살펴보면 어처구니없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북한 간첩과 접촉해 지하조직을 결성한 것으로 의심받는 3명이 '서로 연락을 안 했던 것이 더 의심스럽고 단선연계 복선포치형 조직'이라는 주장을 보자. 서로 연락을 했으면 또 그것대로 지하조직의 증거가 됐을 것이다.

'친북 지하조직의 특징인 진술거부권을 행사한다'는 지적도 우습다. 진술거부권은 수많은 피의자가 사용하는 기본적 권리일 뿐이다. '외국계 메일과 클라우드를 사용해서 교신하는 사이버 드보크의 신종 첨단 수법'이라는 지적은 또 어떤가? 요즘 지메일과 클라우드 등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인데, 이 무슨 당황스러운 주장인가.

해외여행 갔다가 만난 사람이, 숙박 문의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알고 보니 북한 간첩이었다는 수사 내용도 뭔가 이상하다. 해외여행 가서 한국 사람이 인사하는데 무조건 모른 척하거나 누구인지 신분을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고, 문의 전화를 받을 때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미리 알고 안 받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설명을 그냥 기각하기 어렵다.

더구나 국정원은 그렇게 난리를 치며 호들갑을 떨고도 초기에는 증거가 분명하지 않고 입증하지도 못해서 관련자 중에 한 명도 구속기소하지 못했다. 물론 몇 달간의 꾸준한 언론플레이와 여론재판을 통해서 결국 최근에 4명을 구속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1년 전쯤에 비슷한 수법으로 호들갑을 떨던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청주간첩단)' 사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때도 지하조직원으로 지목받았던 사람들이 '북한 간첩인 리광진을 접촉했다'며 대대적인 공포 분위기 조성이 있었다.('리광진'은 최근 사건에도 겹치기 출연 중인 북한 간첩이다.) 그렇게 구속됐던 사람들은 '간첩과 접촉했다는 사진과 동영상이 국정원에 의해 편집되거나 위변조됐다'고 반박했다. 결국 수사기관이 입증을 못하면서 관련자들은 모두 석방된 상황이다.

더구나 이번에 국정원과 검찰에 의해서 무시무시한 지하조직의 핵심 간부로 지목된 사람 중 하나는 현재로서는 사회운동에서 멀어져 있는 말기암 환자이다. 검찰과 국정원은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영장도 없이 미행하고, 초등학생 자녀의 일기장을 뒤지는 등 반인권적인 수사를 진행해 왔다.

 

'정권 위기 탈출용 공안 탄압 저지 국가보안법 폐지 경남대책위원회'가 30일 오후 경남 창원시 국가정보원 경남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포된 '창원 간첩단 사건' 관련자 4명에 대해 석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2023.1.30. 연합뉴스
'정권 위기 탈출용 공안 탄압 저지 국가보안법 폐지 경남대책위원회'가 30일 오후 경남 창원시 국가정보원 경남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포된 '창원 간첩단 사건' 관련자 4명에 대해 석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2023.1.30. 연합뉴스

결국, 이번에도 '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과장되거나 조작된 사건이 아니냐는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공안기관이 국민을 속여 온 무수한 역사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공안정국 조성을 통해서 윤석열 정부는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반대파들을 위축시키며 불신과 균열을 일으켜 서로 연대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을 것이다.

더불어,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반대하거나, 반전 평화를 위한 요구와 운동,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을 지지하는 모든 활동에 전부 '북한의 지령'이라는 딱지를 붙이려고 한다. 나아가 다가오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에서 국가보안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한다. 또한, 내년 1월에 예정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도 막으려 한다.

국정원은 온갖 정보를 수집하면서 감시, 사찰, 공작, 조작을 벌여온 비밀 경찰기구로서 윤석열 정부에게는 너무 매력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이미 집권 초부터 국정원의 힘을 강화하고 공안정국을 조성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착착 진행해 왔다.

정권 초부터 시작된 공안정국 준비 작업

먼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조작한 장본인인 이시원 검사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앉혔다. 국정원의 요직인 기조실장 자리에도 친윤 검사를 보냈다. 공안 조작 사건에서 프락치 노릇을 했다는 의심을 받는 김순호를 경찰국장에 임명했다. 이를 통해서 검사나 검사 출신들을 중심으로 대통령실, 검찰, 국정원, 경찰을 수직계열화하며 고발, 수사, 기소를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덧붙여서 윤석열 정부는 '방첩사'로 이름만 바꿔 군의 기무사를 부활시켰고, 국정원은 지난해 연말에 '사이버안보협력센터'를 개소했다. 곳곳에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공안정국을 뒷받침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갈수록 야당과 반대 진영을 "종북 주사파"로 매도하는 발언들을 더 많이 하기 시작했다.

서해 공무원 사건으로 문재인 청와대를 '종북'으로 낙인찍어 왔고, 무인기 파동 때는 군 장성 출신인 민주당 김병주 의원마저 '북한과 내통한 간첩'으로 몰았다. 이제는 쌍방울의 대북 송금을 고리 삼아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도 '종북' 낙인을 찍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총에 북한과 연계된 지하조직이 있었다'며 대대적인 종북몰이를 본격화하고 있다.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국정원 직원들이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2023.1.18. 연합뉴스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국정원 직원들이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2023.1.18. 연합뉴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주기적인 종북몰이를 가능하게 하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악법이다. 헌법에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제19조),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제21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제22조) 등이 언급돼 있지만, 국가보안법은 이 모든 것을 가로막는다.

특히 국가보안법의 7조에서 이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국가보안법 7조는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고무하거나, 또는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하고 "이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가입"하거나 "이런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 수입, 복사, 운반, 반포, 판매 또는 취득"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7조로 인해 정부는 사상·표현의 자유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손쉽게 구속할 수 있다. 정부와 기득권 체제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주장은 '반국가 단체 찬양·고무'라고, 조직과 활동은 '이적단체 구성·가입'이라고, 그런 내용의 책과 글을 쓰고 읽는 것은 '이적표현물 제작, 배포, 소지'로 옭아맬 수 있다.

'북한의 위협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대부분 그럴듯한 핑계였다. 사실 '내부의 적'을 치기 위해 '외부의 적'을 핑계 대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이다. 러시아의 스탈린 정권은 자신들의 정적을 숙청하면서 '제국주의의 첩자'로 몰았다. 193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은 국내의 노동운동가들을 '소련의 첩자'로 몰면서 공격했다.

북한의 위협이 주로 핑계였다는 것은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구속자 중 간첩죄인 3조 구속자가 별로 없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이들마저도 대부분 고문 등으로 조작된 것이었다. 구속자는 대부분 국내에서 독재 정권에 맞서 투쟁한 노동자, 학생, 활동가들이었다.

국가보안법과 공안 탄압의 구조

국가보안법 옹호자들은 "87년 민주화 이후에는 국가보안법의 남용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물론 노무현 정부 때는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탄압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다시 종북몰이 광풍에 이용됐다. 그 절정은 '내란음모' 조작 사건과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이었다.

2016년 촛불항쟁 이후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국가보안법과 공안 탄압이 다시 약화했다.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거나 구속된 사람의 수가 1/4 정도 줄어들었다. 이 과정을 돌아보면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개혁정부가 들어서서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남북간 화해와 교류 정책을 추진하면, 자연스럽게 국가보안법과 공안 탄압도 약화한다.

그런데 보수우파가 다시 권력을 되찾아 권위주의로 회귀하고 남북간 대결을 추구하면서 다시 국가보안법과 공안 탄압이 강화된다. 그리고 기존의 개혁정부에서 추진하던 남북 정부간 대화나 민간 차원의 교류 과정을 전부 다 국가보안법의 심판대로 올려서 '간첩과 이적행위'로 재해석하며 종북으로 몰아간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패턴이 되풀이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칼날은 다시 여기저기서 수많은 사람을 찔러대고 있다. 얼마 전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는 헌법재판소 공개 변론에서 국가보안법 7조를 옹호하며 '이적표현물'을 "아동성착취물"의 해악과 비교했다. 무시무시한 간첩단이 적발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가, 별 게 없으면 나중에 서점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책을 압수해 '이적표현물 소지'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정권 위기 탈출용 공안 탄압 저지 국가보안법 폐지 경남대책위원회'가 30일 오후 경남 창원시 국가정보원 경남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포된 '창원 간첩단 사건' 관련자 4명에 대해 석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2023.1.30. 연합뉴스
'정권 위기 탈출용 공안 탄압 저지 국가보안법 폐지 경남대책위원회'가 30일 오후 경남 창원시 국가정보원 경남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포된 '창원 간첩단 사건' 관련자 4명에 대해 석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2023.1.30. 연합뉴스

최근에 국정원이 민주노총 전 간부에게서 압수한 것은 소설책 <녹슬은 해방구>였다. 결국 우리는 지금의 종북몰이 마녀사냥과 공안정국 조성 시도에 맞서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의 핵심적인 무기가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에도 반대해야 한다. 국회 과반이 넘는 의석을 가진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힘을 합쳐서 이미 발의 돼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들을 통과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재확인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공안 탄압과 종북몰이가 가능한 구조를 없애지 못하면, 언제든지 그것은 반복될 것이다. 2013년에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 댓글 조작을 덮기 위해 '내란음모 조작 사건'을 터트렸을 때도 초기에는 많은 이들이 박근혜 정부의 의도와 조작을 의심했다. 하지만, 국정원과 주류언론들이 피의사실을 계속 흘리며 '종북몰이'를 더욱 본격화하자 하나둘씩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민주당뿐 아니라 진보정당까지도 '종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과 급속히 '손절'하기 시작했고, 진중권 같은 지식인들은 오히려 앞장서 종북몰이에 함께했다. 결국 공안정국은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이라는 반민주적 폭거로 나아갔고, 박근혜 정부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오류가 반복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