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이라도 구하려 분단 택했다" 설득력 없어
이코노미스트의 ‘지도로 본 한국 소사’
“멀리 있던 미군, 가까이 있던 소련군 막으려 분단”
원래 미국은 4개국 일본 분할통치 제안
한반도 분단은 소련 달래기 위한 흥정물?
“두 나라(countries)를 이해하려면, 두 나라가 원래 한 나라(one nation)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9월 23일 기사 제목이다. 네이션(nation)이 국가, 국민, 민족 등의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여서 무엇으로 옮기는 것이 정확할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기사에서는 어느것으로 옮겨 놓아도 문제는 없을 듯하다. 요컨대 지금 남북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서로 적대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전쟁위험이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인 대한민국(남한)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원래 하나의 나라였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남북한이 원래 한 나라였다는 사실조차 대다수 세계인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이코노미스트>는 알고 있다.
뜬금없어 보이는 이런 기사가 왜 이런 시기에 느닷없이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 9월 3일 베이징 천안문에서 열린 항일전쟁 전승절 행사장에 나란히 선 북중러 정상의 모습이 잔파를 타면서 북중러의 접근, 이른바 북방 3국동맹이 새삼 부각되고, 이재명 정부 등장 이후의 대북정책 변화 및 한미 관세협상 관련 파장이 국제뉴스의 주요 관심사가 되면서 남북한 동향에 관심이 쏠린 것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게다가 한반도는 지금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가자, 요르단강 서안, 그리고 중국-대만 양안/해협 지역과 함께 가장 전쟁 위험이 높은 지역 중의 하나다. 미얀마에 이어 최근의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네팔 등의 잇따른 반정부 시위 격화와 정권 붕괴 등의 정변이 이어지고 있는 동(남)아시아 사태들도 서방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과 연결돼 있을 것이다. SNS로 연결된 이들 지역 대중들의 민주화와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은 한국의 성장 및 민주화와도 연결돼 있으며, 이는 장차 남북관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정세 전반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멀리 있던 미군이 가까이 있던 소련군 막기 위해 분단”
단군 산화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코노미스트>의 지도로 보는 간결한 한국 소사(小史, short history)는 비교적 객관적 사실들을 토대로 요령있게 요약 정리돼 있다.
고조선과 기원전 108년 중국 한나라와의 충돌,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쟁패와 신라의 통일 및 중국과의 충돌, 고려 건국과 몽골 침략,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조선 건국, 세종대왕과 한반도 강역의 확정, 그리고 일제 침략과 강제병합 등의 역사적 사실들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열거돼 있다.
남북 분단 사실도 언급돼 있는데, 다음과 같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항복 당시) 소련군은 이미 한국에 진입했고, 미군은 600마일(약 96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미국은 한반도가 러시아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북위) 38도선을 따라 한반도를 분할할 것을 제안했다. 놀랍게도(to America’s surprise) 소련은 이에 동의했다.
한국은 거의 1300년 동안 통일 국가였다. 이제 펜 한 자루 굴려서(at the stroke of a pen) 코리아(Korea/ 한반도)는 한국인들에게 아무런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의미도 없는 선을 따라 분단되었다.“
이는 일본 항복 당시 오키나와 쪽에 있던 미군이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 직후 시베리아 쪽에서 만주지역으로 신속하게 남진을 시작한 소련군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냥 뒀으면 소련군이 먼저 한반도까지 모두 점령하게 돼 있었으므로, 미국은 그것을 절반이라도 막기 위해 38도선 분단선을 그야말로 펜 한 자루로 그어 남쪽 절반을 구했다는 얘기다. 이것이 대체로 세상에 알려져 있는 한반도 분단역사다.
원래 미국은 4개국 일본 분할통치 제안
하지만 지난 9월 9일 기사(‘일 분할통치안 시행됐다면 한반도 분단 안 됐을 것’)에서도 지적했듯이, 당시 미국 합동참모본부 산하 합동전쟁계획위원회(JWPC)는 원래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을 미국 영국 소련 중국 4개국이 분할통치하는 안을 제시했다.
일본 방위연구소 전사연구센터의 하나다 도모유키 주임연구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미국이 제안한 4개국 일본 분할통치안은 미군이 도쿄가 있는 관동(간토)과 혼슈 중부지역을 점령 통치하고, 소련군은 후쿠시마 등이 있는 혼슈 북부 도호쿠(동북)지역과 홋카이도를 통치하며, 중국군(장제스의 국민당군)은 시코쿠, 영국군은 히로시마 등이 있는 혼슈 남부 주고쿠와 규슈를 각각 점령 통치하는 것이었다.
그에 앞서 그해 4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하고 후임 해리 트루먼이 집권한 뒤인 6월 11일 미국 국무-해군-해군 3부 조정위원회(SWNCC)는 ”일본을 미군의 군정하에 둔다“는 대일 기본방침을 정했다.
원래 제안했던 4개국의 일본 분할통치안을 폐기한 것이다. 그 시점에도 소련은 일본 분할 통치 의욕을 포기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홋카이도 절반 이북과 쿠릴열도 등을 소련에 넘겨 달라며 일본 분할통치를 주장했으나 일본 단독 점령을 원했던 미국은 쿠릴열도와 남부사할린만 소련에 떼어 주었다.
설득력 없는 미국의 한반도 분단 서사
얄타회담에서도 조선의 독립을 약속했듯이, 당연하게도 한반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었으므로, 일본 패전 뒤 그들의 원래 분할통치안에 한반도 분할 계획은 없었다.
멀리 있던 미군이 가까이 있던 소련군의 한반도 전체 점령을 절반이라도 막기 위해 다급하게 펜 한 자루로 그은 선이 북위 38도 선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당시 미국은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었고, 시베리아에 포진했던 소련군의 전차와 포, 전투기 등 거의 모든 군사장비들은 미군이 일본 본토점령을 위한 소련군 참전을 유도하기 위해 소련군에게 제공한 것이었다. 미국은 당시 동부 시베리아 소련군을 무장시켜 움직일 정도로 절대적 힘의 우위를 갖고 있었다.
미국이 한반도를 분단한 것은 당시 동아시아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미군이 가까이 있던 소련군의 남진을 38도선에서 막아 한반도의 절반이라도 구하려 했다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한반도 분단 서사는 날조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 당시 미국은 소련군의 한반도 진주를 막을 압도적 힘을 갖고 있었다.
한반도 분단은 소련 달래기 위한 흥정물?
미국이 그때 38도선 이북의 한반도 절반을 소련군에 넘겨 준 것은 소련군의 남진을 그 선에서라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 약속했던 일본 본토 분할 통치안을 파기하고 미국이 일본 전체의 단독점령으로 방침을 전환하면서 일본 영토가 아니라 대신 한반도의 절반을 소련군에게 넘겨 그들을 달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한반도의 분단 비극은 미국 일본 단독 점령통치를 위한 흥정의 부산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 때문에 그 안을 소련이 받아들였을 때 미국은 놀랐다. 일본 아닌 한반도 분할안을 제시할 때 미국은 내심 소련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는 ‘딜’의 하나로 생각하며 신경썼으나 미국에 대항할 힘이 없었던 스탈린은 그것을 덥석 받아들였다.
미국은 한반도 절반이라도 구해내기 위해 38도선을 그은 것이 아니라, 일본을 통째로 차지하기 위해 일제 침략 희생자인 한반도 절반을 갈라 그 북쪽 절반을 소련군에게 넘긴 것이다.
그 분단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북을 가른 채, 한민족 국가의 평화와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절대적 장벽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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