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가 가자 불타 재 될 때 뭘 했냐 물으면?"

10·7 이후 20개월 조사…유엔 총회 보고 예정

이스라엘, 5가지 집단학살 행위 중 4개 부합

"하나의 민족을 파괴하려는 계산된 행위"

"행동하지 않는 건 중립이 아닌 공모"

무기 지원 중단, 추방·학살 저지 촉구

"나는 모든 정부, 모든 지도자, 모든 시민에게 다음과 같이 묻기를 촉구한다. '가자지구가 불타서 잿더미 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느냐'고 우리의 아이들과 손주들이 물을 때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모든 제노사이드(집단학살)는 우리를 구속하는 인간성에 대한 시험이다."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점령지와 이스라엘에 관한 유엔 독립 국제조사위원회'(유엔 이스라엘 조사위)의 나비 필레이 위원장은 16일 자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이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인류 최악의 범죄인 제노사이드를 저지르고 있다면서 이렇게 화두를 던졌다.

 

봉쇄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폭격 직후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2025. 09. 16 [AFP=연합뉴스]
봉쇄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폭격 직후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2025. 09. 16 [AFP=연합뉴스]

유엔 보고서 "이스라엘, 가자서 집단학살"
"가자 불타 잿더미 되는 동안 뭘 했는가?"

유엔 이스라엘 조사위는 이날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제노사이드를 저질렀다는 결론을 담은 72쪽짜리 조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이스라엘과 모든 국가가 국제법상의 의무를 다해 "제노사이드를 끝내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2021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설립한 조사위는 가자 전쟁이 발발한 2023년 10월 7일부터 지난 7월 31일까지 기간을 다뤘다.

조사위는 가자에서 △ 이스라엘 당국과 보안군의 군사작전 △ 의료·교육의 체계적 파괴 △ 팔 주민에 대한 체계적 성·젠더 기반 폭력 △ 아동에 대한 직접적 타게팅 △ 굶기기와 생존 수단 접근 제한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유엔 공보국에 따르면, 회견에서 필레이 위원장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주도의 이스라엘 테러 공격에서 비롯된 가자 전쟁을 조사한 결과, 이스라엘 당국과 보안군이 1948년의 '유엔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처벌 협약'이 규정한 5가지 제노사이드 행위 중 4가지를 저질렀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 조사 보고서는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엔 총회에 제출된다.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점령지와 이스라엘에 관한 유엔 독립 국제조사위원회'(유엔 이스라엘 조사위)의 나비 필레이 위원장이 16일 제네바에서 20개월의 가자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스라엘이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저질렀다고 결론을 내렸다. 2025. 09. 16 [AFP=연합뉴스]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점령지와 이스라엘에 관한 유엔 독립 국제조사위원회'(유엔 이스라엘 조사위)의 나비 필레이 위원장이 16일 제네바에서 20개월의 가자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스라엘이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저질렀다고 결론을 내렸다. 2025. 09. 16 [AFP=연합뉴스]

필레이 "전쟁에 따른 사고가 아니라,
하나의 민족 파괴하려는 계산된 행위"

조사위가 제시한 4가지 행위는 △ 살해 △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가해 행위 △ 팔레스타인인 파괴를 겨냥한 의도적 생활 조건 강요 △ 고의적 출산 저지 조치 등이다. 회견에서 필레이는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가자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한 제노사이드 캠페인에 침묵해선 안 된다"며 "제노사이드의 명백한 징후와 증거가 드러났을 때, 이를 멈추려는 행동의 부재는 공모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국가는 가자 제노사이드를 멈추기 위해 합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뉴욕타임스 기고에선 내용을 더 상세하게 소개했다. 필레이는 "파괴 규모는 충격적이다. 가자 보건 당국에 따르면 6만4000명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살해됐고, 그중 1만8000명 이상이 아이들이며 1만 명 가까이가 여성이다"라면서 "가자의 기대수명은 1년 만에 75세에서 40세 남짓으로 무너졌다...병원, 학교, 교회, 모스크, 전체 마을이 파괴됐다"고 개탄했다.

필레이는 "우리 분석에 따르면 굶기기가 전쟁 무기로 활용됐고, 의도적으로 의료 시스템이 파괴됐으며, 모성 보건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아이들은 굶주리고 총에 맞고 건물 잔해에 묻혔다"며 "이것은 전쟁에 따른 사고가 아니라, 하나의 민족을 파괴하려는 계산된 행위다"라고 비판했다.

 

가자 국경 인근 지역에 이스라엘의 기동 포병 부대가 대기하고 있다. 2025.09. 16 [로이터=연합뉴스]
가자 국경 인근 지역에 이스라엘의 기동 포병 부대가 대기하고 있다. 2025.09. 16 [로이터=연합뉴스]

"제노사이드 의도가 행동으로 옮겨져"
무기 지원 중단, 추방
·학살 저지 촉구

그는 "제노사이드가 성립하려면 행위뿐 아니라 의도도 필요하다. 이 부분에서도 증거는 명확하다. 대통령, 총리, 전직 국방장관 등 이스라엘 지도부는 팔레스타인인을 비인간화했다"며 '인간 동물과 싸우고 있다'는 10·7 공격 당시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의 발언과 '팔 민족 전체에 책임이 있다고 했던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의 발언을 소환했다.

필레이는 "그들의 말은 행동으로 이어졌다"면서 "가자를 살 수 없게 만든 무차별 폭격, 인도주의 지원 차단, 성젠더 기반 폭력, 주민을 굶겨 죽이려는 의도적 포위, 이 모든 것은 제노사이드의 의도를 보여주는 패턴을 이룬다"고 지적했다.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에 따르면, '제노사이드'는 "통상 국민적,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의도"에 의해 규정된다.

필레이는 모든 국가는 제노사이드를 막을 의무가 있으며, 행동을 요구한다면서 △ 제노사이드 행위에 쓰이는 무기와 군사 지원 중단 △ 방해받지 않는 인도주의적 지원 보장 △ 대규모 추방과 파괴 중단 △ 가능한 모든 외교적·법적 수단을 동원한 학살 저지 등을 제시한 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건 중립이 아니라 공모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제노사이드 협약은 홀로코스트의 잿더미에서 '절대 다시는'(Never again)이란 엄숙한 맹세와 함께 태어났다. 그 맹세가 일부에만 적용되고 다른 곳엔 적용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중부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강화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시티에서 남쪽으로 피란하고 있다. 2025. 09. 16 [UPI=연합뉴스]
중부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강화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시티에서 남쪽으로 피란하고 있다. 2025. 09. 16 [UPI=연합뉴스]

"보고서, 끔찍했던 하마스 테러도 기록,
그래도 가자 제노사이드 정당화 안 돼"

필레이는 "약 1200명을 죽인 하마스의 끔찍한 10·7 공격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이스라엘인들의 고통과 여전히 억류된 인질 약 50명의 가족들이 느끼는 고통을 인정한다"며 "우리 위원회는 하마스의 범죄도 기록했다. 그러나 아무리 중대한 범죄라 해도 제노사이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필레이는 "이 잔혹한 범죄의 책임은 이스라엘 최고위 당국자들에게 있다"며 유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수천 건의 정보를 넘겼다고 말했다. 앞서 ICC는 작년 11월 네타냐후와 갈란트에게 '전쟁 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며, 현재 국제수배 상태다.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도 작년 1월 가자에서 제노사이드의 심각한 위험이 있다고 유엔 회원국에 알렸다. 필레이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지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법조인이다.

이번 조사 보고서에 대해 이스라엘의 대니 메론 제네바 유엔사무소 대사는 "선별적" 조사 결과라면서 "하마스와 그 지지자를 돕는 서사를 퍼뜨려 이스라엘 국가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악마화하려는 시도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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