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향한 의구심과 기대 동시 표명한 듯

김대중과 이재명 '대북정책 3원칙' 유사

김여정 "한국 누구라도 미국의 특등충견"

민주개혁 세력의 '자주 역량' 부족 비난

대통령실 "우리 진정성 왜곡 표현 유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재명은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위인이 아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19일 외무성 국장 협의회에서 "결론을 말한다면 '보수'의 간판을 달든, '민주'의 감투를 쓰든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한국의 대결야망은 추호도 변함이 없이 대물림하여 왔다는 것이다"라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20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부부장은 △ 현 북한 체제 존중 △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없다 △ 일체 적대행위 할 뜻 없다 등 이재명 대통령의 광복 80년 경축사 내용을 직접 거론하고 "한국의 대조선 정책이 '급선회'하고 있는듯한 흉내를 내고 있다"고 평가 절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5.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5.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김여정 "이재명, 역사 흐름 바꿀 위인 아냐"
이재명 정부 향한 의구심과 기대 동시 표명

김여정은 6월 4일 국민주권정부 출범 이후 대북 전단 살포 금지, 확성기 방송 중단과 철거, 대북 선전 라디오 방송 중단, 그리고 한미 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중 야외기동 훈련 절반 9월 연기 등 지난 두 달 보름간 이 대통령이 차근차근 취해온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 분위기 조성 조치를 '기만적인 유화 공세'라고 규정했다.

먼저 김여정은 이런 이재명 정부의 "진지한 노력"을 "평화를 위해 저들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자는 속심"에서 비롯됐다면서 "아무리 악취 풍기는 대결 본심을 평화의 꽃보자기로 감싼다고 해도 자루 속의 송곳은 감출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서 남북관계 복원이 불가능하게 된 책임을 자신들에게 전가하려는 술책으로 봤다.

'기만적 유화 공세'와 '대결 본심'으로 판단하는 근거로 두 가지를 거론했다. 하나는 조현 외교부,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명됐을 때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재명 정부가 한편으로 화해의 메시지를 내면서 북한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무모한 미·한의 침략전쟁 연습"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합동군사연습에서 우리의 핵 및 미사일 능력을 조기에 '제거'하고 공화국 영내로 공격을 확대하는 새 연합작전계획(작계 5022)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18일 평안남도 남포조선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UFS 연습에 대해 "오래전부터 관행화되어온 미·한의 군사연습이 언제 한번 도발적 성격과 위험성을 내포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최근에는 핵 요소가 포함되는 군사적 결탁을 기도하고 있다는 특징으로부터 하여 그 엄중성은 더욱 증대되고 있다"며 핵무장화의 급진적 확대를 천명한 것의 연장선이다.

 

18일 대구 수성구 iM뱅크 본점에서 을지자유의방패(UFS) 연습 일환으로 열린 대테러 훈련에서 육군 50사단 장병들이 테러범 진압을 위한 기동 훈련을 하고 있다. 2025.8.18 연합뉴스
18일 대구 수성구 iM뱅크 본점에서 을지자유의방패(UFS) 연습 일환으로 열린 대테러 훈련에서 육군 50사단 장병들이 테러범 진압을 위한 기동 훈련을 하고 있다. 2025.8.18 연합뉴스

이 대통령 관련 발언, 비난보단 풍자 인상
광복절 경축사를 "기만적 유화 공세" 규정

그러나 이 대통령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 대한 김여정의 발언 톤은 상대적으로 수위가 낮았다. 날 선 비난보다는 풍자의 성격이 짙었다. 이 대통령이 18일 을지국무회의에서 "작은 실천이 조약돌처럼 쌓이면 상호 간 신뢰가 회복되고 평화의 길도 넓어지며 남북이 함께 성장할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면서 "방랑시인 같은 말"이라고 하는가 하면, 한반도 평화 구축과 남북 화해·협력을 위한 정 장관의 '5대 핵심 과제'에 대해선 "제멋대로 '희망'과 '구상'을 내뱉는 것이 풍토병 아닌가 한다...마디마디, 조항조항이 망상이고 개꿈"이라고 비꼬았다. 그리고 "실현 불가능한 정부 관리의 그러한 몽상으로 충만된 결의"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김여정은 다시 한번 "조·한 관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복원은 절대 불가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한국은 외교 상대로도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여정은 "고장난명(한 손바닥으론 소리가 나지 않는다)이라고 그런 결의를 저 혼자 아무리 다져야 무슨 수로 실천하겠는가"라고 자극했다.

이 대목에서 김여정이 진짜 본심, "이재명은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위인이 아니다"란 '도발적' 메시지가 나온다. 그는 "우리는 문재인으로부터 윤석열에로의 정권교체 과정은 물론 수십 년간 한국의 더러운 정치체제를 신물이 나도록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들"이라면서 "한국의 그 누구라 할지라도 미국의 특등충견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8일 평안남도 남포조선소를 방문해 북한의 첫 번째 5천t급 신형 구축함 '최현호'의 무장체계 통합운영 시험 과정을 점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2025.8.19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8일 평안남도 남포조선소를 방문해 북한의 첫 번째 5천t급 신형 구축함 '최현호'의 무장체계 통합운영 시험 과정을 점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2025.8.19 연합뉴스

김여정 "한국 누구라도 미국 특등충견"
민주개혁 세력의 '자주 역량' 부족 지목

여기서 북한의 '대남 인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째는 "한국의 더러운 정치체제"를 거론한 부분이다. 그 대표적 사례로 "문재인으로부터 윤석열에로의 정권교체 과정"을 들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판문점과 평양에서 모두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과 9.19 공동선언 및 군사합의서를 채택했지만, 윤석열 정권이 모든 걸 백지화하고 '자유(흡수)통일'을 선언한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이전에도 남과 북이 노태우 정권 때인 1991년 남북관계를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관계"로 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시작으로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그리고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간 남북정상회담과 10.4 선언 등이 이어졌지만, 이명박, 박근혜 등 수구보수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어김없이 합의는 물거품이 됐던 역사를 지목했음을 물론이다.

둘째는 "한국의 그 누구라 할지라도 미국의 특등충견"이라고 비난한 부분이다. 이는 한국의 수구세력보단 민주개혁 세력을 향한 발언이라고 보는 게 본심에 가까워 보인다. 미국을 맹종해온 남한의 수구보수 세력이 적대적 자세를 취해온 것은 그렇다고 쳐도, 민주개혁 세력 역시 미국이 반대하면 남북관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00.6.13. 연합뉴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00.6.13. 연합뉴스

남북 적대의 역사 바꾼 위인은 김대중?
김대중과 이재명 '대북정책 3원칙' 유사

북한이 콕 집어 얘기한 적은 없지만, 한국 민주개혁 세력에 대한 '환상'이 '환멸'로 바뀐 가장 최근의 계기는 문재인 정부가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9.19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개성공단 재개 등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못한 일을 들 수 있다. 당시 문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 네오콘의 눈치를 보며 끝내 재개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게 사실이다. 앞서 김여정은 14일 담화에서도 "미국의 충성스러운 하수인이고 충실한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고 말해 한국의 자주적 역량 부족을 문제 삼았다.

이런 맥락에서, 이 대통령을 두고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위인이 아니다"라고 자극하고 나선 북한의 의도는 뒤집어 보면 과연 이 대통령이 남북 적대의 역사를 바꿔 놓을지를 지켜보겠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다. 지난 남북관계의 역사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위인'이 있기는 했다. 다름 아닌 김대중 대통령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취임사에서 △ 북한의 무력도발 불용 △ 흡수통일 배제 △ 가능한 분야부터 남북 화해·협력과 교류 적극 추진을 대북정책 3원칙으로 내세우고 미국의 반대를 설득해 남한 정상의 첫 평양 방문과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이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 현 북한 체제 존중 △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없다 △ 일체 적대행위 할 뜻 없다는 선언 내용이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의 대북 3원칙과 유사하다는 데 주목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 행사에서 감사 인사를 하며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5.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 행사에서 감사 인사를 하며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5.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우리 정부, 김여정 도발적 발언에도 '차분'
대통령실 "우리 진정성 왜곡 표현 유감"

이날 김여정의 도발적 발언도 정부는 비교적 차분하게 대응했다. 20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들은 일방의 이익이나 누구를 의식한 행보가 아니라 남과 북 모두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것"이라며 "북 당국자가 우리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왜곡해 표현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뒤로 하고 한반도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반드시 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도 "남과 북 주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천명한 한반도 평화정책을 "앞으로 이행하기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북한은 대남, 대미 관계 개선에 '전혀 관심 없다'고 거듭 주장하면서도 7월 28일 김여정의 대남, 대미 담화, 8월 14일 김여정 대남 담화, 김정은의 18일 남포조선소 UFS 비판 발언, 19일 김여정의 외무성 국장 협의회 발언 등을 통해 3주 남짓한 기간에 전례 없이 대남 메시지를 쏟아낸 것을 보면 이재명 정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일말의 기대를 표시한 것으로도 풀이가 가능하다.

이 대통령이 25일 백악관에서 열릴 트럼프와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국방비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동맹 현대화 등 미국의 요구사항과 연계해 전시작전권 조기 반환, 그리고 북핵 문제는 일단 미국에 맡기되 남북관계 복원 등 향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 과정에서 한국의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