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파탄 핵심은 개성공단?
트럼프 설득해 재개 배짱 보여야
광복 80주년 대통령 경축사 주목
'한반도 평화' 트럼프 다짐 받아야
'반향' 부른 이재명 평화 메시지
북, 9일 대남 확성기 철거 호응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메시지가 작지만 유의미한 반향을 부르고 있다.
가장 최근 사례는 북한군의 대남 확성기 철거 작업이다. 9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9일 전방 지역 40여 곳에 설치된 대남 확성기의 철거 작업에 들어가 일부 완료했다. 우리 군이 4일부터 이틀간 전방 20여 곳의 대북 확성기를 모두 철거하자 곧바로 화답한 모양새다.
'반향' 부른 이 대통령 평화 메시지
"잃어버린 시간, 사라진 평화 찾아야"
이 대통령은 6월 4일 취임하자마자 한반도 평화와 대북 화해 메시지를 발신했다. 취임사에서 이 대통령은 "25년 전 오늘의 약속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며 2000년 남북 6·15 공동선언을 소환한 뒤 "잃어버린 시간과 사라진 평화를 되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남북 상생의 미래를 위해 △ 소모적 적대 행위 중단과 대화·협력 재개 △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 분위기 조성 △ 이를 위한 남북 대화채널과 위기관리 체계 복원을 약속했다.
말뿐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실천에 옮겼다. 북한의 행동을 보고 우리도 따라 한다는 수동적 '상호주의'가 아니라,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할 일을 '선제적으로' 한다는 방식을 취했다.
그 첫 번째 조치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이었다.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취임 일주일만인 6월 11일 오후 2시를 기해 방송을 전면 중단시켰다. 앞서 남북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확성기를 모두 철거했지만,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며 대북 압박으로 일관했던 윤석열 정권이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를 구실로 작년 6월 9일 확성기를 재가동했던 것이다.
수동적 상호주의 아닌 선제 조치
확성기·전단·라디오 잇따라 중단
상응 조치로 북한도 대남 확성기 재가동에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우리가 다시 전격 중단에 들어가자, 8시간 만인 6월 12일 0시를 기해 북한은 전방의 대남 확성기 소음방송을 중단했다. 그 결과, 1년 가까이 귀신 소리 같은 확성기 소음에 밤낮없이 시달려온 경기 파주·연천·김포 등 접경지 주민들이 한시름 놓게 됐다.
정부는 일부 민간단체의 북한 비방 전단 살포 차단에도 들어갔다. 이 대통령은 이튿날인 13일 현직 대통령으론 최초로 민간인 출입 통제 지역인 파주 장단면 등을 찾아 주민 간담회를 열고 "서로 이익 없이 가해하는 그런 일은 최소화하고, 앞으로는 소음 피해 문제만이 아니라 남북 긴장 관계가 많이 완화돼 경제 문제도 해결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 다음은 50년 지속돼온 대북 선전 라디오 폐쇄 조치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이어 7월 초 국가정보원이 운영해 왔다는 희망의 메아리, 인민의 소리, K-뉴스, 자유 코리아 방송 등 4개 라디오 방송이 중단됐다.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북한이 작년 1월 대남 선전 방송을 전면 중단한 데 대한 호응의 성격이 짙다.
정동영 "지난 3년, 최악의 시간,
선 대 선의 시간으로 바꿔야"
이 대통령의 평화 메시지는 7월 25일 취임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으로 이어졌다. 정 장관은 취임사에서 "냉전의 유물이었던 대북 심리전 방송과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것이 남북 신뢰 회복의 첫 신호였듯이 앞으로 남과 북은 무너진 신뢰를 하나씩 쌓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3년은 남북 간에 최악의 시간, 적대와 대결로 서로를 맞받아쳤던 강 대 강의 시간이었다"며 "이제 강 대 강의 시간을 끝내고, 선 대 선의 시간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식에 앞서 판문점을 찾은 그는 "남북대화 재개와 조속한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단절된 남북 간 연락 채널 복원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 남북 평화 공존 △ 평화경제와 공동 성장 △ 국민주권 대북정책을 '정책 대전환'의 방향으로 잡는 한편, 민간의 대북 접촉 시 남북협력기금 지원 재개, 북한 지역 개별 관광 허용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싸늘한' 김여정 담화 이후인데
북, 9일 대남 확성기 철거 호응
침묵하던 북한의 공식 반응이 나온 건 이때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서였다. 그의 담화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전단 살포 중지, 개별 북한 관광 허용 등 이재명 정부가 집권 직후부터 취해온 "성의 있는 노력들"은 할 일을 했을 뿐 평가받을 일은 못 된다, 둘째로 이재명 정부 50여 일을 보면 한미동맹 맹신과 대북 대결 기도는 선임자인 윤석열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셋째로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이 연이어 강행될 것이다, 넷째로 '동족'으로서 더는 대화할 일이 없다, 등이다.
특히 김 부부장은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론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 립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 조한(남북) 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이미 완전히 되돌릴 수 없게 벗어났다"고 못 박았다.
김여정의 담화는 당연히 김정은 위원장의 뜻을 담은 '공식 입장인 만큼, 더는 남북관계 복원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김 위원장의 직접 발언은 아니란 점에서 다소 간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김여정 담화 이후인데도, 북한이 9일 대남 확성기 철거를 개시해 우리의 선제 조치에 '조용히' 호응해 나선 건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리고 이틀 전인 7일 한미 양국이 18일부터 열흘간 연례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합훈련 계획을 발표했는데도 즉각 반발하지 않고 되레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고 나선 점도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다. 이에 한미가 폭염 등을 이유로 UFS 연습 중 야외 기동훈련 20여 건을 9월로 연기한 것을 두고 북한이 다소 긍정적으로 본 게 아니냐는 일각의 해석도 있다.
남북관계 파탄 핵심은 개성공단?
트럼프 설득해 재개 배짱 보여야
그렇다고 당장은 남북대화 재개로 이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김여정 담화를 잘 살펴보면, 지난 두 달여 일관되게 진행해온 이재명 정부의 "성의 있는 노력들"을 굳이 외면하지 않은 채, 한번 진짜로 '평가할만한 일'을 해보라는 주문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
'평가할만한 일'이 뭔지를 알려면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한국은 절대로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될 수 없다"는 김여정의 발언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민주'를 표방했던 세력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이 묻어 있다. 이런 기조는 북한이 2023년 4월 남북 연락 채널을 일방적으로 끊고 그해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럼 어디서 한국 민주 세력에 대한 북한의 심사가 뒤틀렸을까? 가장 최근의 계기론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문재인-김정은의 9.19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개성공단 재개를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못한 일을 들 수 있다. 당시 문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눈치를 보며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환상이 환멸로 바뀐 북한은 2020년 6월 공동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을 폭파했다. 그리고 4년이 더 지난 작년 10월 남북을 잇는 경의선과 동해선의 육로와 철도 모두를 폭파하고 DMZ(비무장지대)를 따라 콘크리트 장벽을 다시 세웠다.
광복 80주년 대통령 경축사 주목
북핵-남북관계 분리 선언할 때
이런 흑역사를 되짚어보면, 이재명 정부가 앞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설득하든, 압박을 무릅쓰든 개성공단 재개를 '결단'하고 밀어붙이겠다는 '배짱' 정도는 보여줘야 북한으로선 '평가할 만하다'고 여길 수 있다.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한미일 합동군사훈련 등을 무기한 연기하는 것들도 그런 조치에 물론 포함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광복 80주년 경축사가 주목되는 것도 그래서다. 이재명 정부가 북한 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분리'해 대처하겠다는 선언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게 중요한 첫걸음일 수 있다. 북핵 문제는 미국이 주도하되 그 진전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은 상당한 독자성과 재량을 갖고 남북관계 복원과 진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달 하순 백악관에서 트럼프와의 첫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관세 문제와 함께, 국방비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 그리고 한국을 대중국 전초기지로 삼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동맹의 현대화 등이 의제로 오를 공산이 크다. 트럼프의 거센 압박에 어느 정도 양보는 불가피해도, 그 대신 전시작전권 조기 반환과 북핵-남북관계 분리를 통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트럼프의 공식 승인을 얻어낼 임무를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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