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한미 정상 회담을 위한 제언③
국가와 지도자 향한 존경심이 외교의 힘
대한민국의 역사는 감동의 소재 충분해
역경 헤친 이재명 삶의 서사로 다가가야
'오징어 게임' 줄다리기는 외교 아니다
미·중 대립 구도에 갇히지 말아야 성과
정상 외교의 '캐딜락'인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특별한 관계를 가능케 한 요소는 연대감이다. 국가 이익을 떠나 서로에게서 자신의 단면을 보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기뻐했다.
"누군지 말할 수 없지만, 곧 집에 찾아올 손님이 있으니, 샴페인과 브랜디, 그리고 위스키가 충분히 있는지 확인해 주오." 1941년 12월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직후 루스벨트가 영부인 엘리너 여사에게 한 부탁이다. 그 손님은 처칠이다. 그는 3주 동안 백악관에서 지냈다.
루스벨트가 처칠을 편하게 대하니, 영국의 총리가 파자마 바람으로 백악관을 휘젓고 다녔다. 처칠은 샤워하고 나서 알몸으로 몸의 물기를 말렸다. 루스벨트가 벌거벗은 자신을 발견하면, 영국 총리가 미국 대통령에게 무엇을 감추겠냐며 특별히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처칠은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면서 위스키 소다를 한두 잔 마셨다. 그리고 하루 종일 술잔을 스카치, 와인, 브랜디 등으로 채웠다. 처칠이 독일과 싸워 프랑스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프랑스가 샴페인을 생산하기 때문이라 했는데 농담만은 아니었나 보다.
둘은 늦은 저녁을 하면서, 마티니 석 잔을 다 마시기 전에는 좀처럼 포크를 집어 들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처칠은 술에 빗대어 루스벨트와의 특별한 관계를 표현했다. 루스벨트를 만났을 때, 처음으로 샴페인 병을 터뜨린 것같이 흥분되었고, 그 후 그를 알게 되니 샴페인을 진짜 마시는 것처럼 기뻤다고 했다.
처칠과 루스벨트 관계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술과 담배는 무슨 의미인가? 대화, 교감, 공감을 상징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역사를 새로 쓰는 전쟁이어야 했다. 약 2000만 명이 사망한 제1차 세계대전 후 20년이 지나 최고 8500만 명이 죽는 전쟁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은 살상과 파괴 말고는 유럽에 변화를 주지 못했다. 독일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베르사유조약을 보며 복수를 꿈꿨다. 미국의 윌슨이 말한 새로운 세계 질서는 형성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수난과 직결된 승전국 일본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 후 침략성만 늘었다.
처칠과 루스벨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했다. 꿈이 컸으니 깊은 대화가 필요했다. 독일과 일본을 완전히 깨부숴 후환을 없애고, 국제 연합을 통해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하려 했다. 인류의 불행인 '세계' 전쟁의 희생이 가치가 있으려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세계'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했다. 이 합의의 시작점이 처칠과 루스벨트의 대화, 교감, 공감이었다.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가 남편의 수면 부족을 걱정해 간접적으로 불평을 전했지만, 처칠은 시가(Cigar)를, 루스벨트는 담배를 피우면서 새벽 2, 3시까지 대화했다. 루스벨트 사후 영국을 찾은 엘리너와 오찬을 하던 중 처칠이 "여사께서 날 싫어한 거 다 압니다"라 했던 이유다.
두 정상의 대화는 멈추지 않았다. 루스벨트는 처칠에게 "당신과 같은 시대에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라며 깊은 우정을 나타냈다. 루스벨트와 대화하면 한 위대한 인물과 만나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고 고백한 처칠은 그의 절친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였고 우리가 헌신하는 위대한 대의의 가장 뛰어난 옹호자였다"고 칭찬했다.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경이 불타는 세계에 대한 근심 속에서 처칠과 루스벨트의 사이를 묶어준 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처칠과 루스벨트의 전설적 '케미'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는 과장이 아니다.
이 일치감과 연대성은 그들의 출신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처칠과 루스벨트는 뿌리가 같다. 처칠은 영국 귀족 출신이다. 영국 상류층의 전유물 같은 사립 기숙 학교에 다녔고, 영국 육군사관학교 샌드허스트(Sandhurst)를 졸업했다. 영국 상류층의 전통대로 군경력을 쌓았고, 전쟁에 참전했다. 처칠은 자연스럽게 정치에 입문했다. 그의 출신 배경에 특별한 점이 있는데, 어머니가 미국 출신이다.
루스벨트 또한 뉴욕의 최상류층 가정에서 자라 사립 기숙학교를 거쳐 하버드 대학에 진학했다. 그 후 컬럼비아 대학 법대를 다니다 변호사가 되었고, 뉴욕주 의회에 진출했다. 1929년 뉴욕주 주지사가 되었고, 4년 뒤인 1933년 제3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905년 집안의 먼 친척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제26대)의 조카 엘리너와 결혼했다.
물론 처칠과 루스벨트의 개인적 배경이 이들의 연대감 형성에 도움이 되었지만, 결정적 요소는 아니었다. 삶의 서사가 둘을 묶어주었다. 처칠은 매사에 모든 것을 걸었다. 남아프리카 보어 전쟁(The Second Boer War, 1899~1902)에 종군기자로 참전해 포로가 되었지만, 탈출에 성공했다. 포로수용소가 있던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300마일을 걸어 모잠비크로 탈출해 영국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인종주의자이며 제국주의자로 아집의 화신이었지만, 처칠은 위기에는 불굴의 의지로 영국을 이끌었다.
루스벨트는 1921년 39세의 나이에 척추성 소아마비에 걸려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됐다. 뉴욕주 하이드 파크 (Hyde Park)에 위치한 루스벨트의 생가에 가면 그가 집안의 위아래 층을 오갈 때 사용하던 리프트가 있다. 전기 모터를 이용한 현대식 엘리베이터로 개조할 수 있었지만, 루스벨트는 불이나 전기가 끊어지면 사용을 못할 것을 우려해 밧줄을 당기고 내리는 시스템을 고집했다. 말 그대로 누가 밧줄을 당겨주지 않으면 그는 이동할 수 없었다. 이런 신체적 한계에도 루스벨트는 1944년까지 4선을 하며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루스벨트가 사망하자 처칠이 영국 의회에 섰다. 영국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미국 친구를 잃었다고 했다. 자유의 챔피언인 루스벨트의 신천지(아메리카)가 구세계(유럽)를 돕고 위로해 주었다며 슬퍼했다.
처칠과 루스벨트의 외교는 두 정상, 또는 나라 사이에 존경심이 있어야 함을 말해준다. 늘 동의하고, 많은 것을 주고받아야 건강한 동맹이 아니다. 상대의 정책과 싱크로율이 완전하면 동반자가 아니라 보조자이다. 외교의 기본은 상호 존중이다.
또 감동의 언어도 있어야 한다. 1943년 5월 19일 처칠의 미 의회 연설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연합국은 그해 1월 카사블랑카에서 적의 무조건 항복을 전쟁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독일과 일본을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처칠은 호소했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오늘, 바로 지금, 우리가 우리 운명의 주인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는 우리의 힘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며, 그 고통과 고난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대의에 대한 믿음과 굴하지 않는 의지를 가진 한, 구원은 절대 거부되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처칠과 루스벨트의 개인적 삶이 가졌던 호소력을 갖고 있다. 제한된 환경을 의지로 극복한 그의 삶의 여정은 한국 외교의 자산이 돼야 한다. 의회를 포함한 미국의 외교 커뮤니티가 알게 해야 한다. 흔히 이재명 대통령 같은 인물을 평할 때 '자신의 부츠 끈으로 스스로 일어섰다(Pulled himself up by his bootstraps)'는 표현을 쓴다. 그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수성가한 사례이다. 더 높은 성공 고지를 향해, 풍요로운 삶을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내달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세상에 자신의 부츠 끈으로 일어설 수 없는 때가 있음을 알고 그 상황과 조건을 깨는 데 앞장섰다.
악덕 부동산 개발업자라 손가락질받던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이어받아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과 결이 다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패배가 죄악시 되는 환경에서 자랐다. 한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어머니는 천국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겠지만, 아버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을 정도다.
서사는 인간 이재명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한국의 근대사는 민족 의지의 발현이고 결실이다. 해방, 전쟁의 피해 극복, 산업화, 민주화, 문화의 세계화는 지도자의 영도력이 가져온 결과물이 아니다. 정치 지도자가 "새벽종이 울렸네/너도나도 일어나"란 노래를 만들어 같이 부르라고 지시하기 전에 이미 민중은 새벽에 집을 나서 일터로, 학교로 향했다. 독재정권과 결탁한 매판, 독점 자본의 적폐에 대한 정화 노력과 투쟁은 지금도 노동자와 농민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 외환을 유발해 쿠데타를 획책하려 한 반국가 세력을 향해 든 촛불은 여전히 뜨겁다.
분단과 대립이 한민족에게 좌절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절망은 아니다. 남북을 연결하는 철도는 폭파됐지만, 토목 공사에는 남북 모두 세계 최고 기술을 인정받고 있다. 환경만 조성되면 회복은 시간문제다. 이 모두가 한국민이 깨어 있음을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된 한반도이지만, 남북 회담에 대한 열망이 식지 않는 아이러니가 저력이다. 이재명 외교는 '오징어 게임'의 줄다리기 전략 같은 협상 기술이 아니라 한국민의 원초적 힘을 믿고, 활용해야 한다.
외교는 단순화해야 변증의 길이 보인다. 이런 예를 들 수 있다. 어머니에게 우산 장사와 신발 장사 아들이 있었다. 비가 오면 우산 장사 아들이 성업한다. 반면 날이 맑으면 신발 장사 아들 수입이 올라간다.
두 아들 모두 잘되기만 바라는 어머니 두 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첫째, 매일 비도 오지 말고, 그렇다고 햇볕도 쨍쨍하지 않은 흐린 날을 간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두 아들 다 망한다. 둘째 선택은 사흘 또는 나흘 비가 오고, 나머지 날 밝기를 기도할 수 있다. 이경우 두 아들 모두 한 주의 반은 장사가 되지만 반은 공친다.
제3의 길이 있다. 우산과 신발을 한 가게에서 파는 것이다. 수입은 둘로 나누면 된다. 가게에서 보통 신발과 장화도 같이 팔고, 장화를 사 가는 손님에게 우산을 디스타운트하고, 파라솔도 취급하면 더없이 좋다. 어머니가 공치는 아들 걱정할 필요가 없다. 변증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에 방위 부담금 깎기 위해 간다면 변증의 외교가 아니다. 이미 굳어진 정책 사고 앞에서 가능성을 장담하지 못하지만, 간청과 선심을 바꾸는 일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지양해야 한다.
이미 굳어진 한국을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고를 단순화하면 이렇다. 1. 한국은 잘사는 나라다. 2. 북한이 공격하면 잃을 것이 많다. 3. 그래서 주한 미군이 이용(기여) 가치가 높다. 4. 방위 부담금을 더 내는 것이 당연하다. 5. 한국이 미국에 이익이 되려면 (시혜를 돌려주려면) 중국 견제에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 6. 주한 미군은 미국 군대다. 미국의 이익에 맞게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가 더 남았다. 7. 앞으로 김정은과 대화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 줄 테니, 관세, 방위 부담금, 대중 봉쇄로 갚아라. 비핵화는 어려우니 그렇게 알고는 있어라. 핵 문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와 김정은이 해결해 줄 수 있다.
촘촘하게 짜이고, 팽팽하게 당겨진 그물 같은 이 전략사고를 한두 번의 정상 회담으로 빠져나가기는 어렵다. 한국의 바다에 미국이 투망할 필요성을 없애 주어야 한다. 돈으로 되지 않는다. 끝이 없기 때문이다.
변증법이 작동하려면 A와 B가 명료해야 한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요구를 A라 한다면, 해외 방위 부담을 줄이고, 비용과 병력 절감을 더 큰 싸움에 투입하겠다는 전략이다. 본질은 강력한 군사력을 한 곳에 붙박이 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미군 재배치를 한국과 상의할 수 있지만, 결정권은 미국에 있다. 이를 동맹 현대화라고 부른다.
한국의 요구 B는 양국 간의 안전성 있는 관계(Stable Relations)이다. 이는 '굳건한 동맹(Strong Alliance)' 개념과 차이가 있다. 굳건함(strong)은 적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이 기본이지만, 안정은 성숙도를 말한다. 이솝 우화에도 나온다. 나그네 옷을 벗기기 위한 바람과 해의 차이는 압도와 성숙이다.
안정(Stable)이란 개념에는 신뢰(trustworthy), 믿음성(reliable), 일관성(constant) 또 도덕성(virtuous)과 같은 성품이 내포되어 있다. (www.etymonline.com) 그리고 명사 'Stable'은 마굿간을 말하는데, 쉽게 놀라는 말을 가두어 두는 곳이야말로 안정감이 보장돼야 한다.
A와 B의 이익 개념이 충돌하고 있고 한미 관계에 긴장감이 있다. 변증이 요구된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방위 부담을 줄이고, 한반도를 넘는 가용 군사력을 확보하려면 남북 간의 긴장 완화가 답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기동 공간 (maneuvering space)'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과의 안정적 동맹 관계를 유지하려면, 답은 똑같다. 남북 간의 긴장 완화다. 이를 통해 한국은 미국에 대한 '전략적 의존성(strategic dependency)'을 줄일 수 있다.
한반도를 스치고 지나치는 핵 항모, 폭격기 같은 미국의 전략 자산 이미지에 안도하고, 계산서를 정산하는 식상한 전략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과시가 북한과 중국에게 "분발하자"는 결기를 자극할 뿐이다. 한국의 방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하는 데 힘이 되어줄 요소가 또 하나 있다. 그에게 한국이 필요한 사실이다. 그는 지난 1월 두 번째 취임 연설에서 자신의 소원을 밝혔다.
자신은 평화를 이루는 자, 갈라진 것을 통합한 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I want to be: a peacemaker and a unifier.") 성경에서 빌려온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는 이제까지 세상이 보지 못한 강력한 군사력으로 이 꿈을 이루겠다는 것인데, 그가 생각하는 평화를 설명했다.
전쟁에서 이기고, 전쟁을 끝내는 것도 평화를 이루는 길이지만, 전쟁에 뛰어들 필요가 없는 상황이 가장 중요한 평화라 했다. ("We will measure our success not only by the battles we win but also by the wars that we end and perhaps most importantly, the wars we never get into.")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꿈이 이루어지는 땅이 될 수 있도록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들고나는 '진퇴여호(進退如虎)'의 외교를 펼쳐야 한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에서 한국은 나아갈 때 나아가지만, 물러날 때는 비켜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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