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방청은 주중 일본대사만, 판결내용도 함구

일본정부도 판결 내용 쉬쉬 하며 유감 표명만

2015년 이후 17명의 일본인 중국서 구속 장기형

인권사각 지대 ‘거주 감시’의 끔찍한 경험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재판과 판결문 공개해야”

일본 제약회사 아스테라스 직원에 대한 간첩혐의 재판을 진행한 중국 베이징 시 제2중급인민법원.  마이니치신문 7월 16일
일본 제약회사 아스테라스 직원에 대한 간첩혐의 재판을 진행한 중국 베이징 시 제2중급인민법원.  마이니치신문 7월 16일

간첩 혐의로 중국 당국에 장기 구속돼 있던 일본 제약회사 아스테라스의 60대 직원에 대해 베이징 시 제2 중급인민법원이 지난 16일 3년 6개월의 구금형에 처한다고 판결했다. 이 60대 남성 직원은 아스테라스 중국 현지법인에서 오래 근무한 일본인 간부로, 2023년 3월 중국에서의 근무를 끝내고 귀국하기 직전에 구속된 뒤 지난해 8월의 기소를 거쳐 이번 판결까지 7개월 간의 ‘거주 감시’를 비롯해 모두 17개월을 구속상태로 보냈다. 그대로 형기가 확정될 경우 만기석방까지 앞으로 25개월을 더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재판 방청은 주중 일본대사만, 판결내용 함구

선고 공판을 방청한 간스기 겐지 중국주재 일본대사가 판결 뒤에 <아사히> <마이니치> 등 일본 언론 취재기자들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법정은 문제의 직원이 “스파이(간첩)활동을 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런데 간스기 대사는 판사가 낭독한 판결 내용에 대해서는 “(피의자)본인의 의사 등을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여기까지 보면, 재판은 비공개로 열렸거나 외부공개를 극도로 제한한 상황에서 열렸다. 일본 쪽에서 취재기자들은 물론, 주중 일본대사(또는 대사관 직원) 외에 다른 어느 누구도 법정에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피의자가 무슨 혐의로, 어떤 법 조항을 어떻게 위반해 그런 판결을 받았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없다. 중국 담당 법정은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았고, 일본 쪽도 실제로 ‘본인의 의사’ 곧 피의자 본인이 밝히지 말아 달라고 해서 그랬거나, 일본대사의 자체 판단으로 그랬거나 간에, 판결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피의자 본인이 판결 내용을 밝힐 경우 자신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서 그렇게 해 달라고 한 것인지, 그것을 밝힐 경우 이후의 항소심이나 구금생활에 불리한 영향을 끼칠까봐 두려워서 그렇게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스테라스 직원에 대한 지난해 11월의 첫 공판은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피의자는 ‘거주 감시’ 기간 중 두 명의 감시자와 함께 생활하면서 읽고 쓸 수도 없었고, 화장실에서도 감시를 당했다. 매달 한 번 허용된 영사면회에서도 사건 내용에 대한 얘기는 금지돼 있었다.

유사사건으로 오랜 구금 끝에 만기 출소한 뒤 귀국한 일본인 주재원들이 털어 놓은 ‘거주 감시’ 상태에서의 상황(아래에 자세히 설명)은 끔찍할 정도로 열악하다. 정식 구속 및 기소 전의 ‘거주 감시’하의 처참한 반인권적 상황 체험자라면 구금 상태에서 거리낌 없이 자기 주장을 밝히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경험자들의 체험담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아스테라스 직원은 중국에 장기 거주한 주재원으로 현지 중국 및 일본업계에는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신분이 확실한 사람이었음에도 그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간스기 겐지 중국주재 일본대사.   NHK 7월 18일
간스기 겐지 중국주재 일본대사.   NHK 7월 18일

일본정부도 판결 내용엔 쉬쉬하며 유감 표명만

이런 상태에서는 중국 법정이 “스파이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일본대사의 전언 외에 그가 정말 스파이(간첩) 행위를 했는지조차 판단할 자료가 없다. 중국 법정은 무엇을 근거로 에스테라스 제약의 일본인 60대 현지 주재원을 간첩죄로 구속해 유죄 판결을 내렸는가? 일본대사를 비롯한 일본정부는 왜 이 문제와 관련한 객관적 사실 자체 공개 및 정부 차원의 공식적 대응을 꺼리며 쉬쉬하고 있는가?

간스기 겐지 일본대사는 재판 당일 취재기자들에게 “남성(피의자)은 시종 담담한 모습이었다”면서 “모든 레벨(차원)에서 조기 석방을 (중국 당국에) 강력하게 요구했음에도 이번 유죄판결이 나온 것은 지극히 유감”이라고만 했다. 그리고 문제의 직원을 재판 뒤 면회했을 때 그가 항소할지 여부는 “변호사와 상당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일본 매체들이 전한 당사자와 일본정부 대응 관련 사실은 이것뿐이다.

아스테라스 제약회사도 “계속해서 관계 각소(소관 부서들)와 제휴해서 적절히 대응해 가겠다. 더 이상의 멘트는 유보하겠다”고만 했다.

이와 관련해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중국에서의 일본기업이나 개인의 합법적인 비즈니스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 왔다”면서 “법에 따라 활동하는 한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 시내 중심부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들.    아사히신문  7월 16일
베이징 시내 중심부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들.    아사히신문  7월 16일

중국 체류나 여행에 대한 불안 증폭

이렇게 되면 중국에서 근무 중인 일본기업 주재원들뿐만 아니라 단기 여행자들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어떤 행위가 간첩죄에 해당하는지, 어느 정도의 행위까지가 구속 대상이 되고 간첩 혐의자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실제로 이런 유사사건들이 벌어지면서 일본에서는 “중국 주재를 희망하는 사람이 줄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비즈니스 분야뿐만 아니라 중국정치와 안보 관련 연구자 등도 불안 때문에 중국에 가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법에 따라 활동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어느 선까지가 합법이고 불법인지 알 수 없고, 그 최종판단은 중국 당국이 한다. 변론 등 대항조치를 제대로 허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최종판단자가 그 기준을 제대로 공개하지도 않고, 입건하고 구속한 뒤에도 비공개의 일종의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이상 대처할 방법이 없다.

국가 주요 기밀과 관련된 스파이(간첩) 사건의 경우 양쪽 당사국간 밀약이나 거래를 통해 관련 요원들을 서로 교환하는 등 비공개로 처리하는 경우를 영화 등의 픽션에서 흔히 다루지만, 제약회사 직원의 비즈니스 관련 사안이 국가기밀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제약회사 직원을 가장한 스파이행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그럴 경우에도 절차는 보편타당한 합법적 요건을 갖춰야 한다.

 

중국에서 장기간 구금당했던 축구 한국대표 출신 손준호 선수.    연합뉴스
중국에서 장기간 구금당했던 축구 한국대표 출신 손준호 선수.    연합뉴스

한국 축구대표였던 손준호 선수의 경우

지난해 3월 10개월간 구금상태에 있다 석방된 중국 산둥 타이산 소속의 한국 축구 국가대표 출신 손준호 선수도 국가 기밀과는 무관한 ‘비국가공작인원 수뢰죄’ 혐의, 말하자면 뇌물 수수 혐의로 아스테라스 직원과 비슷한 체험을 했다. 그 혐의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고 공개된 적이 없다.

 

중국에서 스파이(간첩) 혐의 등으로 구속된 일본인들 17명의 사례. 구속기간, 구속된 장소, 대상자, 구금형 령향, 지금 상황 등을 표로 정리했다. 형량(구금형 연수)를 보면 3년부터 15년에 이르는 장기형이다.   아사히신문 7월 16일
중국에서 스파이(간첩) 혐의 등으로 구속된 일본인들 17명의 사례. 구속기간, 구속된 장소, 대상자, 구금형 령향, 지금 상황 등을 표로 정리했다. 형량(구금형 연수)를 보면 3년부터 15년에 이르는 장기형이다.   아사히신문 7월 16일

2015냔 이후 17명의 일본인 중국에서 구속 장기형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스파이행위 등의 혐의로 중국에서 구속당한 일본인은 17명이다. 이들 중 5명은 아스테라스 직원을 포함해 지금도 구속 중이며, 그를 제외(아직 재판계속 중)한 나머지 4명은 12~15년 구금이라는 실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지 2년만인 2014년에 제정되고 2023년에 개정돼 한층 더 강화된 ‘반스파이(간첩)법’은 ‘스파이 조직’이나 그 대리인이 중국의 국가안전에 위해를 가하는 활동 등을 ‘스파이 행위’로 규정하는데, 그 정의가 구체적이지 않고 ‘기타 행위’ 등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한 기술도 들어 있어, 이현령비현령의 자의적 법적용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형량도 3년 이상 무기형에 이르는 중형이다.

그래서 이번의 아스테라스 직원이 받은 형량 3년 6개월은 다른 유사사건으로 일본인들이 받은 형량에 비해 짧고 가볍다는 얘기와 함께, 최근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전면금지를 부분 해제한 사례에서도 보듯 도널드 트럼프 2기 정권 출범 뒤 유화적인 대일 자세를 취하고 있는 중국 당국이 참의원선거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시바 총리 정권을 배려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중국에서 6년 넘게 간쳡행위 혐의로 구금당했던 일중청년교류협회 간부 출신의 스즈키 에이지가 당시의 경험담을 얘기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X 7월 17일
중국에서 6년 넘게 간쳡행위 혐의로 구금당했던 일중청년교류협회 간부 출신의 스즈키 에이지가 당시의 경험담을 얘기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X 7월 17일

인권사각 지대 ‘거주 감시’의 끔찍한 경험담

중국에 장기 체류하면서 중일 우호단체인 일중청교류협회 간부를 역임했고 베이징 소재 대학의 객원교수도 했으나 2016년에 귀국하기 위해 베이징 공항에 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체포당한 뒤 6년이 넘는 ‘2279일’을 구속돼 있다 만기 출소한 스즈키 에이지(68)가 <아사히신문>에 밝힌 자신의 경험담은 문제의 아스테라스 직원이 어떤 상태에서 구금당해 재판을 받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스즈키는 형무소 생활이 힘들었지만 특히 정식 구속 전의 ‘임시 구속’ 상태인 ‘거주 감시’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7개월 간의 ‘거주 감시’ 때 그는 호텔과 같은 장소에 유폐당한 채 언제일지 예고도 없이 취조를 받았다. 취조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남성 감시자 2명이 24시간 그를 지켜보면서 대화도 할 수 없게 한 것이었다. “책 등 문서를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사건만 생각하면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아 좋아했던 (가수) 이시카와 사유리의 노래를 마음속으로 불렀다.”

하루 종일 커튼도 열지 못해 햇빛을 볼 수 없었다. 구속 뒤 1개월 정도 지났을 때 15분 동안만 해를 볼 수 있게 해 주었을 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스즈키는 그런 상황에 대해 “인권침해이며, 원죄(冤罪.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의 온상”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는 지금까지도 억울하게 중국에서 6년 감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일본의 공안조사청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아 (중국에서) 정보수집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당했으나 그는 그것을 부인했다. 하지만 2019년 5월에 법정은 그런 기소내용을 인정하고 그에게 6년 구금형과 함께 5만 위안(약 1천만 원)의 재산몰수 판결을 내렸다.

변호사와 접견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고독한 환경에 놓여 있으면 취조당할 때 수사하는 쪽 의도대로 이야기를 하기 십상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경험담은 마치 전근대의 중국, 즉 청조 말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도 이른바 '정치범' '사상범'은 그런 취급을 당했다.

스즈키는 “중국이 국가안전 조치를 강화하는 와중에, 지금 이대로는 중국에 체류하거나 출장간 일본인들은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없다”면서 일본이 이 문제를 전문적으로 대처하는 부서를 외무성에 설치하는 등의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일본정부에 촉구했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재판과 판결문은 공개돼야”

이와 관련해 저널리스트인 에가와 쇼코 가나카와대학 특임교수는 <아사히>에 이런 멘트(논평)를 기고했다.

“재판을 방청한 간스기 겐지 주중 일본대사가 ‘(피의자)본인의 의향’을 이유로 법정에서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 밝히지 않은 것에 강한 의문을 갖고 있다. 판결은 사적인 것이 아니다. 본래는 공개 법정에서 일본의 언론들도 방청할 수 있는 상태에서 판결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판결은 다른 일본기업이나 일본인들의 행동이나 생각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중국쪽은 어떤 행위를 스파이행위로 간주한 것인지 전혀 밝히지 않았다. 그것 자체가 강한 비난을 받아야 하지만, 이번 법정에서 낭독된 판결에서 어떤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이 검토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공공성이 매우 높아 본래 공개돼야 할 정보를 감추는 것은 문제다. ‘본인의 의향’이 있었다 하더라도 법정에서 낭독된 판결 내용은 밝혀야 한다.”

손준호 선수의 예도 있었지만, 중국이 유독 일본인들에게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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