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채권 처리 지체, 일본 ‘잃어버린 30년’ 될 수도
소비 진작 위한 대출 장려로 가계부채 급증
심각한 지방정부와 기업 부채…'성장 신화'에 손상
상장은행 80% 이상 경영 안정 마진율 경계선 아래
영세기업 신용 리스크 반영 못한 금리, 불량 키워
장기 불황에 빠져 있는 중국경제의 가장 확실한 구원투수는 국내 소비 활성화라는 데 이의가 없다. 지난 7일의 <이코노미스트> 기사 ‘수많은 중국인이 빚의 늪에 빠져 있는 까닭’(Why so many Chinese are drowning in debt)에 따르면, 중국의 5월 소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4% 증가했으며, 이는 2023년 12월 이후 가장 빠른 증가율이었다.
반가운 소식일 수 있지만, 그것이 중국이 소비 부진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 신호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이코노미스트>는 그것이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되살리기 위한 국가 보조금 덕”이라고 단정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데다, 그 규모도 불충분하다.
소비 진작을 위한 대출 장려로 가계부채 급증
중국정부는 최근 몇 년간 가계와 기업의 대출을 장려해 왔다. 이 또한 소비 진작을 위해서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위험을 야기했다. 심각한 가계 부채 급증이다. 중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 부채비율은 2006년 11% 미만에서 2024년 이후 60% 이상으로 급증했다.
홍콩의 조사 컨설팅 회사 가베칼 드래고노믹스에 따르면, 지금 중국인 2500만~3400만 명이 채무 불이행(default) 상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 체납자까지 합치면 6100만 명, 즉 15세 이상 전체 인구의 5~7%가 유사한 상태에 빠져 있다. 이들 수치는 5년 전보다 2배나 높아졌다. 증가 속도가 빠르다. 높은 청년 실업률과 침체에서 아직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부동산 상황은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소매 부진 탈출 노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대표적인 장애물로 부동산 불황과 가계 및 투자 부채를 들고 있다.
심각한 지방정부와 기업 부채
심각한 중국 지방정부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향후 5년간 10조 위안(약 1930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중앙정부의 대책 발표가 있었지만, 지방정부 부채는 여전히 고통스러울 정도로 심각하다. 5년간 10위안이면 매년 2조 위안(약 386조 원) 규모다.
중국 지방정부 부채는 공식 발표만으로도 44조 7천억 위안(약 8627조 원)에 달하는데, 숨겨진 부채까지 합하면 훨씬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5년간 10조 위안을 투입해서 이 엄청난 지방정부 부채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까.
기업 부채도 심각하다. 중국 전체 기업의 부채비율(총 부채를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은 151.1%지만 비제조업 기업 부채비율은 277%(2022년), 종합건설업의 부채비율은 340.1%에 달한다. 종합건설업 부채비율은 그나마 2020년의 381.0%, 2021년 373.8%에 비해 점차 줄고 있으나 여전히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높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부채비율이 200%를 넘으면 위험수위에 들어간 것으로 간주된다.
가계 부채 급증, 지속적 성장 신화에 대한 믿음 손상
<이코노미스트>는 가계 부채 비율 60%가 금융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임박한 위협 요소는 아니지만, “부동산을 소유하고 기업가 정신을 가진 (중국) 중산층”의 “마음 속에 점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해 소비를 억제하고, 공산당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지속적인 번영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투자은행 JP 모건 체이스에 따르면, 2023년 중국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률은 약 32%나 됐다 이는 미국발 국제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미국의 저축률이 3%도 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중국은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는 것이 문제다. 전망이 불투명한 부동산 장기 불황 속에서 집을 사기 위해 빚을 진 사람들이 소비욕구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채무자들을 ‘사회적 죽음’(社死)에서 구출해 줄 개인 파산법 같은 제도적 구제장치들도 아직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선전 시의 경우 2021년에 개인 파산법을 도입한 최초의 도시가 됐으나, 2024년 9월 말까지 2300여 명이 그 법에 따른 파산 보호를 신청했지만 법원이 승인한 것은 그 10%에 지나지 않았다.
가계 대출의 65%는 주택담보 대출
지난해 중국 가계 대출의 65%는 사업 목적이 아닌 주택담보 대출이었다. 대부분의 주택담보대출은 국유은행에서 처리한다. 은행들은 대출받은 사람들이 상환능력이 없을 경우 빌려 준 돈을 돌려받는 방식을 선택하는데 매우 신중해야 한다. 당국은 은행들의 빚 상환 독촉이 거칠어질 경우 대중 시위를 촉발할 우려 때문에 대출기관들에게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경제 문제를 정치적 판단에 따라 처리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민간 연구기관인 차이나 인덱스 아카데미에 따르면, 지난해 대출 상환 불능으로 경매에 나온 압류 주택은 36만 6000채였다. 이는 2023년의 36만 4000채보다 약간 더 늘어난 것이다. 중국정부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대출기관들의 공격적인 주택 압류가 대중의 시위를 촉발할 수 있다고 보고 경계심을 갖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부동산 침체에다 당국의 빚 상환 독촉 억제 방침으로 은행들은 더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다.
상장은행 80% 이상이 경영 안정 마진율 경계선 아래
중국의 은행들에서 수익력을 보여 주는 차익금(마진)이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다. 상장은행들의 80% 이상이 경영 안정에 필요한 마진율 ‘경계선’ 아래로 떨어졌다고 얼마 전 <일본경제신문>(닛케이)이 보도했다.(5월 22일)
부동산 불황에 따른 대출금리 하락 탓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권의 고관세 강행에 따른 경기침체 요인까지 가세해 대출금 회수 불능으로 인한 불량채권까지 늘어나면 결국 정부가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해 수습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태로 간다.
2024년 12월 결산에서 중국 본토와 홍콩에 상장한 상업은행 58행 중 93%에 해당하는 54행이 2023년 12월 결산 때보다 차익금이 줄었다. 대출로 받은 이자에서 예금에 대해 지불한 이자를 뺀 것이 순 금리수입이고, 이 수입이 융자 등 이자가 붙는 자산잔고에서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것이 차익금(마진)이다. 마진율이 클수록 수익이 많고, 은행 경영은 안정된다.
중국의 은행업계 단체인 ‘시장금리설정자주기구’는 마진율 1.8%를 은행경영 안정에 필요한 ‘경계선’으로 본다. 이 기구가 은행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항목 가운데 하나가 마진율이고, 마진율이 1.8% 아래로 떨어지면 감점 대상이 된다. 그런데 58개 상장은행의 81%인 47행의 마진율이 1.8% 이하였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는 마진율 1.8% 미만인 은행은 6행으로 전체의 10%에 지나지 않았다. ‘경계선’ 이하의 마진율을 기록한 은행이 5년간 무려 8배나 불어난 것이다. 코로나 19 팬데믹과 부동산 거품 붕괴로 기업과 가계의 차입이 줄고 대출 금리가 내려가면서 마진율이 경계영역으로 떨어진 은행들이 급증했다는 얘기다.
중국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에 따르면, 비상장 중소은행까지 포함한 2024년 말 시점의 은행들 평균 마진율은 1.52%였다. 이는 1년 전에 비해 0.17%p 줄어든 것으로, 사상 최저치였다.
내수 부족 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트럼프 고관세 정책에 따른 수출 감소까지 겹칠 우려가 커지면서 앞날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기업과 가계의 자금 수요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4월에 중국 은행들의 신규 대출 평균이자는 3.2%로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 마진율은 더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영세기업 신용 리스크 반영 못하는 금리, 불량채권 키워
중국의 금융 리스크는 마진율 축소 외에 소규모 사업자들에 대한 융자에서도 발견된다. 중국정부는 중소 영세기업들의 자금 융통을 지원하기 위해 은행들에게 대출 금리를 억제하도록 지도해 왔다. 돈을 떼일(대손) 가능성이 높은 중소 영세기업에 대한 대출 금리는 일반적으로 신용력이 있는 대기업보다 높다. 하지만 최대 국유은행인 중국공상은행의 영세기업에 대한 평균 대출금리는 3.30%로, 전체 기업에 대한 대출금리 3.26%와 큰 차이가 없다. 정부의 지도 때문이다. 은행들에겐 이 또한 걱정거리다. 지방은행인 항저우은행의 판화푸 부행장은 결산 설명회에서 “지금 가장 주의하고 있는 것은 중소 영세기업의 신용 리스크인데, 이는 근거없는 걱정거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출받는 쪽의 리스크가 이자에 반영되지 않아 잠재적인 불량채권이 크게 늘어나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일본총합연구소의 세키 신이치 주임연구원이 중국 상장기업 재무 데이터를 토대로 시산한 2024년 말 시점의 잠재적인 불량채권 비율은 7.8%에 달했다. 주로 부동산 대출 관련 리스크다.
불량채권 처리 늦어지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될 수도
중국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상업은행의 불량채권 비율은 1.5%대로 안정돼 있다. 하지만 중국 은행들은 자산 심사가 헐겁고 공식 통계가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은행의 경영 체력이 떨어져 불량채권 처리가 늦어지면 1990년대 거품 붕괴 뒤의 일본처럼 은행의 대출 기피로 경기가 더욱 식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자칫 대처를 잘 못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장기 불황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중국정부는 금융 불안을 억제하기 위해 지난 3월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5000억 위안(약 96조 5000억 원)의 공적자본 투입을 결정했고, 중국건설은행과 중국은행 등 대형 4개 국유은행이 이를 토대로 자본 증강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형 은행에 대한 자본 투입만으로는 금융 불안을 해소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소리들이 많다. 경제 지반침하가 계속되고 있는 지방의 중소은행들일수록 경영 환경이 더 가혹하기 때문이다.
일거에 해소할 묘책은 없으며, 대형 국유은행들이 흡수합병 형식으로 중소은행들을 구제하면서 불량채권을 조금씩 처리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시진핑 체제의 압축적 단기 급속성장 정책이 부른 거대한 거품 처리에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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