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오렌지족'으로 오렌지빛 선거혁명 못해
연금 공약 등 '갈라치기 우두머리' 모습 버려라
무조건 비판만 하지 말고 새로운 대안 제시해야
대통령은 각계각층 고루 대변하는 스피커 역할
3차 대선 후보자 토론이 끝났습니다.
이준석 후보의 폭력적 발언이 언론을 도배하고, 그의 자질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문제의 그 발언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더이상의 논평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부적절했기 때문입니다.
3차 대선 토론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이준석 후보의 말은 주제1 '각 후보의 정치 양극화 해법은?'에 대한 답변 말미에 등장합니다.
"이런 나쁜 정치인 때문에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고, 지금 우리나라가 극단적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결 방법은 분명합니다. 거짓말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바른말하는 대통령을 뽑아주십시오. 낡은 기득권이 아니라 압도적 새로움 선택해주십시오. 바야흐로 오렌지빛 선거혁명을 이룰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 이준석이 대한민국 정치를 바꿔내겠습니다."
오렌지빛 선거혁명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단어를 듣고 이준석 후보가 아마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 단어인 '오렌지족'을 연상했습니다.
오렌지족이란 90년대 압구정 일대를 누비고 다니는 부유층 자제들의 모습을 이르는 말로 시작해, 이러한 모습이 사회전반으로 확대되는 현상이 생기며 더욱 유명해진 단어입니다. 20대 나이여서 오렌지족이 유행하던 시기에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오렌지족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 지금의 MZ세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MZ세대와 오렌지족이 풍기는 분위기는 어느 한 곳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자유롭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죠. 둘 다 그 시절의 젊은 세대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된 것도 비슷합니다. 물론 MZ세대는 세대전체를 포괄하는 더 넓은 의미이지만, '2025 오렌지족'이라고 해도 크게 의미를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요즘엔 MZ라는 말이 젊은 사람들의 자유로움을 뜻하는 특정한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준석 후보의 주요 지지층이 2030 남성들인 점을 생각하면 '오렌지빛 선거혁명'이 2025년의 오렌지족들이 일으키는 것이라고 하면, 아마 더 그럴싸한 해석이 되겠죠. 그러나 2025 오렌지족들이 간과하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습니다. 이를 모른다면, 지금도 앞으로도 '선거혁명'을 이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후보가 이준석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교체된다고 해도 말이죠.
1. 우리 모두는 윗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사회에서 살아간다
이것은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윗세대로부터 사회를 물려받습니다. 그리고 그 사회를 가꾸어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줍니다.
2025 오렌지족들의 모습을 보면, 이들은 정말 윗세대로부터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 사람들처럼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신연금/구연금' 분리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로부터 받은 것이 없으니, 우리도 당신들에게 우리 몫을 나눠주지 않겠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가 살아왔던 과거,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 어느 한 곳에서도 '우리 세대'만의 세상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나와서부터 자급자족을 하면서 살아온 세대는 전 지구 상에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2025 오렌지족이 자신의 세대를 사랑하는 것 만큼이나, 자신들을 키워준 윗세대에 대한 존경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2. 대통령은 특정 계층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3차 대선 토론에서 제일 재밌었던 발언을 하나만 꼽자면,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가 김문수 후보에게 "토론 시간 잡아먹는 우두머리"라고 말한 부분입니다. 토론 시간 잡아먹는 우두머리로는 이준석 후보가 더 마땅한 것 같습니다만, 우선 그보다는 이 후보가 최고봉의 우두머리인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갈라치기 우두머리'입니다.
이준석 후보의 숱한 토론들이나 방송출연에서의 말을 보면, 대부분 내 편과 상대 편으로 진영을 나누고, 내 편인 사람들의 의견을 강하게 전달하는 스피커로서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장애인/노인 등 2030 남성들이 혹할 만한 이슈가 나오면, 그 즉시 편 나누기 통해 '역차별'을 받고있다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이렇듯 이준석 후보는 자신의 편들에게는 아주 유능한 스피커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며, 자신의 팬덤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대통령 후보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준석 후보는 물론, 그의 굳건한 지지층인 2030 남성들도 크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내 편'과 '상대 편'으로 나뉘는 무수한 과정들 속에서, 공고해진 '내 편' 만큼이나 '상대 편'의 파이도 커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대선 토론 과정에서 보았듯이, 이준석 후보는 자신이 적으로 인식한 집단/계층/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날선 태도를 보입니다. 토론 과정을 통해 어떤 합의된 의견을 도출하려는 태도라기보다는, 토론이라는 게임에서 내가 상대를 제압하고 '이기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입니다. 이런 태도들이 쌓여서 지금의 비호감 1위 이준석 후보가 탄생한 것으로 저는 평가합니다.
이준석 후보는 확실한 팬덤이 존재합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아주 큰 자산이지요. 그러나 이 후보가 팬덤을 넓혀가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 이는 필연적으로 소수의 팬덤만 남게 되는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진정으로 이준석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는 지지자라면, 이 후보가 자신들만의 스피커가 아닌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고루 대표하는 스피커가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대통령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니까요. 지금의 이준석 후보와 그의 지지자들의 모습은 점점 확장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3. 비판만으로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이준석 후보가 세 번의 대선 토론의 과정에서 대부분의 유권자들의 머리에 남긴 것은 그가 뱉어낸 거친 말들입니다. 또한 그 거친 말들은 대부분 상대방 후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이준석 후보는 '현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하는 방식으로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대선에 나오기까지의 과정들을 돌아보면 참으로 드라마틱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놀랍게도 그가 했던 말 중에서 비판이 아닌 '새로운 대안'은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준석 후보와 그가 속한 개혁신당은 냉정하게 평가하면, 대통령이 될 만한 인물과 정책을 제시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부족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기존에 해왔던 방식 그대로 '비판'을 통해 중도 무당층의 표를 조금씩 갉아오는 전술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세 번의 대선 토론은 그런 점에서 이준석 후보의 부족함을 여실히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간 언론의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지만, 지금처럼 대선 후보라는 막중한 자리에서 검증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이준석 후보의 특기인 '화려한 언변'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며, 사실과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폭력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을 스스로 들춰내 버렸습니다.
압도적 새로움이라는 자신의 슬로건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자신이 편한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모습은 '젊은 정치인'에게 국민들이 바라는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끝으로, 이준석을 지지하지 않는 20대 남자로서 친구/동생/어른들에게 전합니다. 우리의 '올바른' 투표로 세상을 정말 한번 새롭게 바꿔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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