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기고, 오늘 누리고, 내일 꿈꾸는 마을 생활
소득사업 못지 않게 중요한 사업분야는 생활돌봄
“1970년대 말쯤, 자염 마을염전에 율티공단이 들어서 율티마을 주민 셋 중 하나는 어업보다 그 공장에서 생계를 이었어요. 이때 사내커플도 많이 나왔어요. 1980년대 중반 들어서는 갯벌에서 수하식 굴 채묘사업을 벌여, 부자마을로 변신했지요. 하지만 2003년 태풍 매미로 모든 걸 잃고, 소수의 어촌계원들이 모시조개를 채취하며 겨우 어촌계의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어요. 그나마도 지금은 어렵지만...”
율티마을의 어촌마을공동체사업을 이끌고 있는 이상율 어촌계장은 지난 날을 회고하며 말끝을 흐린다. 율티마을은 더 이상 어업으로 생활할 수 없는 소멸위기의 어촌이 되고 말았다.
“앵커조직 센터가 들어선 건물은 애초 마을 경로당이었어요. 정부 지원은 10원도 받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3000만 원 정도의 건축비를 모아 지은 소중한 어촌계의 공유자산이죠.”
율티마을 김정환 노인회장은 “내가 이장을 하던 때에는 율티마을이 135가구 정도됐는데 이제는 50가구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며 사람들이 떠나는 현실을 안타까워 한다.
“애초 통영의 대지주 소유였던 마을 농지를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으로, 빌려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에 주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는 마을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도철 고문은 “부디 마을 사람들이 잘 화합하고 협력해서 어촌마을공동체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를 바란다”는 마을 어르신의 당부를 잊지 않는다.
“지금은 마을의 인심이 변해, 주인 없는 빈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고 아쉬워하는 김정주 마을이장은 “30여년 전, 율티마을 청년회에서 농악을 함께 즐기던 추억”을 가장 그리워한다.
어제의 힘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율티마을
지금 율티마을에서는 주민 자서전 쓰기 교실이 열리고 있다. 노인회장, 이장, 어촌계장 등 율티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대표하고 대변할만한 10여명의 주민들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를 통해 율티마을의 어제를 되새기고, 오늘을 누리며, 그리고 내일을 꿈꾸며 율티마을에서 주민으로 살아가는 생각과 모습, 율티마을의 생활상을 기록하려는 기획이다.
창원 지역의 청년 작가 등 전문 강사들이 주민들의 수준과 여건에 맞춘 자전적 스토리텔링 교육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물은 앤솔로지 형태의 옴니버스식 자서전집이 될듯하다. 아울러 주민들의 구술 내용과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영상자서전도 병행하고 있다.
첫 시간에는 7문 7답으로 나를 소개하기를 통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이어서 작가들이 주민들과 율티마을을 산책하며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어촌인 율티마을과 바다는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탄생부터 현재까지 10년 단위로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고 그동안의 삶의 기쁨과 슬픔, 나의 삶을 다녀간 크고 작은 파도들, 삶에서 가장 좋았던 일과 슬펐던 일들을 돌아보고 글로 썼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 가족, 친구, 반려동물, 소장품 등을 떠올리고, 내 인생을 회고하며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쓰고, 영상 편지도 보냈다.
율티마을 자서전이 완성되면, 마을공유가게 안의 책방에도 비치하고, 율티마을을 찾는 이들에게도 율티마을 이야기를 자서전의 주인공들이 직접 들려줄 계획이다. 율티마을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도, 어촌에서 생활해보지 않은 외지인도, 율티어촌마을의 삶이 어떤지 얼마든지 실제로 공감할 수 있도록.
태어나 살던 마을에서, 마을사람들의 생활돌봄을 받으며
강원도 춘천의 별빛사회적협동조합은 ‘우리마을 119사업’을 하고 있다. 애초 2010년 산촌유학센터에서 시작해, 지역아동센터로 확장했고, 지금의 노인돌봄서비스까지 이어지게 됐다.주 요 사업은 농촌의 노인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도와주려는 내용이다. 보일러, 전기 등 시설물 고장 수리, 병원 이동 지원,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환경 조성 등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의 ‘홍반장’ 같은 역할을 자임한다.
전남 영광의 여민동락공동체는 아예 전문적으로 장기요양보험 서비스 등 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한다. 아예 노인들의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주려고, 지역특산물 모싯잎 송편을 생산하는 ‘여민동락 할매손’이라는 사업체도 따로 설립했다. 내친김에 모시 농사도 지어야 하니 ‘모시재배 할머니작목반’도 결성했다. 생활용품 구판장 구실을 하는 ‘동락점빵’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운영하고 있다.
소득사업 보다 생활돌봄 사업이 더 절실
율티마을 어촌마을공동체사업은 소득사업 못지 않게 중요한 사업분야가 있다. 생활복지서비스 또는 생활돌봄서비스이다. 어촌마을공동체사업의 일환으로 별도의 생활복지거점시설을 준비하고 있다. ‘이음스테이션’ 사업이다. 마을 사람 각자, 서로가 서로를 잇고 돌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보다 쾌적하고 안락하게 마을경로당을 새로 짓고, 식구들처럼 밥 한 끼를 같이 나눌 마을공유주방도 들어선다. 출향한 자식들과 손주들이 고향마을의 노인 부모를 찾아와 하루라도 편히 묵어갈 수 있도록 마을공유 게스트하우스도 갖춘다.
이불 등 큰 빨래를 감당하기 어려운 노인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세탁소도 필요하다. 스스로 규칙적으로 몸 상태를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는 건강관리실도 요긴하다. 이때 세탁소와 건강관리실을 맡아 관리하고 운영할 도우미도 둘 필요가 있다.
생활복지서비스 거점공간인 ‘이음스테이션’을 거점으로, 일종의 율티마을 주민생활돌봄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한다. 주민 등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경제․사회 서비스, 즉 고용, 주거, 교통, 교육, 보건의료, 복지, 환경, 문화, 정보통신 등의 생활돌봄 서비스를 자발적으로, 자조적으로 제공하려는 것이다.
율티마을 노인들은 남은 여생을 외부의 낯선 상업적 요양원이나 양로원에서 쓸쓸히 마감하고 싶지 않다. 태어나 살던 마을과 집에서 가족, 친구, 이웃 등 율티마을 사람들과 서로 돌보고 보살피며 인간적이고, 인도적인 여생을 마무리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 그런 작고 소박한 욕심 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게 율티마을이 굳이 어려운 어촌마을공동체사업을 벌이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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