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국가 망신”…대통령 사과, 외교라인 교체 요구
외교부 “장병 격려 차원”…외교 채널로 이란에 해명
고쳐지지 않는 외교무대 실언…국격 추락 어디까지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윤석열 대통령 발언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가만히 있다가 ‘의문의 1패’를 당한 이란 정부는 즉각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윤 대통령의 발언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한국 정부에 공식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내에서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의 발언을 “국가 망신이자 제2의 외교참사”로 규정짓고, 윤 대통령의 사과와 외교라인 전면 교체를 촉구하며 압박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장병 격려 차원의 말씀이었고 한·이란 관계와는 무관하다”면서 거듭 진화에 나섰으나, 격앙된 이란을 달래고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UAE의 적은 이란…여기가 여러분 조국”
문제의 발언은 윤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UAE에 파병된 우리의 아크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나왔다. 격려사를 하던 윤 대통령은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라고 폭탄 발언을 했다. 그는 “여기가 바로 여러분들의 조국”이라며 “우리 형제 국가인 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라고까지 나아갔다.
여기서 세 가지 정도 문제를 짚을 수 있다.
첫째는 이란이 실제로 UAE의 적인가 하는 점이다. ‘전적으로 무지의 소치’라는 게 이란의 입장이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튿날인 16일 곧바로 “외교적으로 부적절한 윤 대통령의 발언”에 항의하고 한국 정부의 해명을 요구하는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그는 윤 대통령을 “그 한국 당국자(the South Korean official)”라고까지 격하하면서 “UAE를 포함한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과 이란 사이의 역사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는 물론, 이런 측면에서 매우 빠르고 긍정적인 발전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UAE와 이란의 관계는 단순히 ‘적이냐 아니냐’하는 규정하기 어렵다. 우선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국가로서 서로 종파가 다르다. 2016년 UAE는 같은 수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성직자를 처형하고 이란이 반발한 것을 계기로 외교관계를 대사급에서 공사급으로 낮췄다가 6년만인 작년 8월 다시 대사를 파견하는 등 정상적인 관계로 복원 중이다. 또한 페르시아만 아부 무사 등 3개 섬을 놓고 영토분쟁을 겪고 있지만 ‘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외교부의 ‘2023 UAE 개황’에서조차도 UAE의 대이란 관계에 대해 “3개 도서 영유권 분쟁 등으로 이란을 최대의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면서도 실리적인 경제 관계를 구축하며 양국 관계를 관리해 나가는 중”이라고 기술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둘째는 아크부대 장병들을 상대로 “여기가 바로 여러분들의 조국”이라고 한 발언도 상식 밖이다. 우리 군 장병들이 지켜야 할 조국은 오로지 대한민국 하나일 뿐이다. 국군통수권자로서 그것도 군 장병을 상대로 UAE를 “조국”으로 여기라는 당부는 대통령 자격에 의구심을 품게 한다. UAE를 ‘형제국’이라면서 친밀도를 강조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해도 말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2022년 12월 현재 아크부대 장병은 146명이 UAE 아부다비에 주둔하고 있다. 2011년 1월 최초 파병을 시작으로 8개월을 주기로 교대한다. 비전투병인 아크부대 장병의임무는 UAE 특수전 부대 교육훈련 지원과 연합훈련 실시, 유사시 교민 보호 등이다.
셋째는 “우리 형제 국가인 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라는 발언도 위험 수위를 오간다.
별 문제가 없는 듯하나,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말과 “여기가 바로 여러분들의 조국”이라는 말과 합쳐지면 ‘이란은 우리의 적’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란은 1962년 중동에서 최초로 우리나라와 수교한 이후 60여 년간 교역 및 우호협력 관계를 이어온 데다가, 미국의 금융제재로 인해 우리나라에 동결된 석유 수출 대금 등 이란 자산이 70억 달러에 이르고 있어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되는 나라다. 또한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현지 교민의 안전은 물론,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출입 물동량을 실어 나르는 우리나라 선박들도 자칫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 만큼 이란과의 우호협력 관계 유지는 중요하다.
외교부 “장병 격려 차원”…외교채널로 이란에 해명
심각한 외교 문제로 비화하자 우리 정부는 부랴부랴 이란 달래기에 나섰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윤 대통령 발언의 경위와 의도에 대해 이란 정부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으나, 아직 이란의 반응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현동 외교 1차관은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란 측에 설명했고 관련국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과 외교부의 설명들을 종합하면, 이란에 전달한 해명은 두 가닥이다. 하나는 현지에 파병된 “우리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한 취지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한·이란 양자 관계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란과의 지속적 관계 발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는 변함없이 확고하다’는 입장도 전했지 싶다. 외교부는 “불필요하게 확대 해석”하지 말라고 했지만, “UAE의 적은 이란”이란 표현이 너무 선명해서 해명이 궁색한 게 사실이다.
윤 대통령 대형 외교 참사에 여당은 ‘뭔 잘못?’ 두둔
뭣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여당인 국민의힘의 태도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원수인 윤 대통령의 발언이 잘못됐으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수습하면 될 일을 ‘뭐가 잘못됐느냐’고 무작정 두둔하고 있어서다. ‘사실을 얘기했는데 뭐가 잘못됐느냐’는 것이다. 여당이 앞장서서 국격 추락을 부채질하는 모양새이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인 정진석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 의원은 17일 외통위 회의에서 “UAE 국민들은 이란을 최대 위협국가로 보고 있고, 적대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를 자극할 수도 있고 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그는 ‘UAE가 가장 위협을 느끼는 나라가 이란 아닌가’라는 자신의 질의에 조 차관이 “그렇게 알려져 있다”고 하자 “왜 사실을 자꾸 빙빙 돌려서 답하나”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탈북민 출신인 태영호 의원은 한술 더 떴다. 그는 “대통령이 이란은 한국의 적이라고 발언했다면 부적절하겠지만 아랍과 UAE를 언급하면서 격려 차원에서 한 말이 왜 외교 참사인가”라고 주장했다. 태 의원은 “아크부대 장병들 앞에서 군 통수권자가 이 정도 발언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민주 “국가 망신”…대통령 사과, 외교라인 교체 요구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국가 망신” “제2의 외교 참사”라고 일제히 비판하고 대통령의 사과와 외교라인 교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재명 대표는 17일에 이어 18일에도 최고위 발언을 통해 “대통령께서 뜬금없이 이란을 겨냥해 적대적 발언을 내놓았다”며 “형제국이라는 UAE를 난처하게 만들고 이란을 자극하는 매우 잘못된 실언”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란과의 친구의 적은 나의 적이라는 단세포적 편향 외교로는 국익을 제대로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홍근 원대 대표도 가세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을 “망발”로 규정한 뒤 장병 격려 취지였다는 외교부의 해명에 대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해명한 ‘이 xx 외교 참사’ 시즌2”라고 꼬집었다. 박 원내 대표는 더 이상의 외교 참사를 막기 위해 윤 대통령의 사과와 외교라인의 전면 교체를 촉구했다.
정청래 최고위원도 “가는 곳마나 사고를 치고 적을 만들고 있다”며 윤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안호영 수석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국격이 무너지고 외교력이 멍들고 있다”며 “윤 대통령의 잇따른 외교 참사는 무지(無知)해서 인가, 아니면 무치(無恥)해서 인가”라고 물었다.
윤 대통령을 두둔하는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박 원내 대표는 “대통령이 사고를 치면 부처가 수습하고 여당은 왜곡하지 말라며 엄호에 나선 게 도대체 몇 번째인가? 대통령이 문제이면 집권 여당 대표라도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외교 갈등을 더 부추긴다”고 국민의힘 정 비대위원장을 겨냥하고 “불난 집에 더 큰 부채질을 해댔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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