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바라카 원전 수주 대가로 비밀 협약
김종대 "UAE가 외부 공격받으면 한국 자동 파병"
윤석열 "형제 국가인 UAE 안보는 바로 우리 안보"
"UAE 적은 이란"…극히 무모하고 무지했던 발언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이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파문이 확산일로다.
국내에서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익을 훼손하고 국격을 갉아먹는 외교 참사”(박홍근 원내대표)라면서 윤 대통령의 사과와 외교라인 전면 교체를 요구하며 공세의 고삐를 조이고 있고, 이란은 “대한국 관계 재검토”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등 쉽사리 물러날 태세가 아니다.
더욱이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가 400억 달러 규모의 UAE 바라카 원전 수주의 대가로 비밀군사협약을 맺었고, 그 안에 ‘UAE 유사시 한국군의 자동 개입’ 조항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 5년 만에 재부각되면서 윤 대통령 발언의 심각성이 새로이 조명받게 됐다.
이란, 윤 대통령의 간섭주의 접근자세 교정 요구
이란의 최초 항의는 윤 대통령이 지난 15일 “UAE의 적은 이란”이란 폭탄 발언을 했던 바로 다음 날 제기됐다. 나세르 칸아니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서였다. 그는 윤 대통령 발언에 설명을 요구했다. 성명에는 윤 대통령을 “그 한국 당국자(the South Korean official)”라고 격하한 데다가, “외교적으로 부적절한 한국 대통령의 발언” “한국 대통령의 참견” “전적으로 무지” 등의 날 선 표현들이 담겨 있어 이번 사태를 보는 이란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했다.
외교 문제로 비화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이란 달래기에 나섰다.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장병 격려 차원의 말씀이었고 한·이란 관계와는 무관하다”고 거듭 해명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외교 채널을 통해 이란에 전했다. 역시 예상대로 격앙된 이란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란 외무부에 따르면, 레자 나자피 법무·국제 담당 차관이 18일 윤강현 주이란 대사를 불러 “한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이란의 강력한 항의”를 전달했다. 그는 “대다수 페르시아만 국가들과 이란의 관계는 우호적”이라고 강조하고 “한국 대통령의 발언은 우호적 관계들에 간섭하는 것으로서 역내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나자피는 발언에 대한 “즉각적 설명”을 요구하고, 한국이 “그런(간섭주의적) 접근 자세를 교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란 동결자금 해결 요구, 외교관계 재검토 경고
아니나 다를까 이란 자산의 동결 등 한국의 비우호 조치도 거론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금융제재로 인해 석유 수출 대금 등 이란의 자산 70억 달러가 동결돼 있다.
나자피는 “서울 당국이 분쟁 해결을 위한 효과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란은 양국 관계를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 언급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위반된다”면서 설명을 요구하는 등 전혀 무관한 사안도 건드려 이란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UAE 유사시 한국군 자동 개입, 5년 만에 재조명
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UAE 유사시 한국군의 자동 개입’ 조항이 재조명받게 됐다.
이 조항은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가 바라카 원전 수주의 대가로 UAE와 비밀리에 맺은 군사협약에 담겨 있다. 그때 비밀협약 의혹이 제기됐지만,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영 국방장관은 완강히 부인했다. 김 장관은 2010년 11월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비밀협약 존재를 묻는 유승민(당시 새누리당) 의원에게 “그런 일 없다”고 위증까지 한 바 있다.
그러다가 ‘UAE 유사시 한국군의 자동 개입’ 조항을 담은 양국 간 비밀군사협약의 존재가 공식 확인된 것은 2018년 1월이 되어서였다. 2017년 12월 당시 정의당의 김종대 의원(현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이 그런 내용을 폭로한 데 이어, 협약 체결 당사자였던 김태영 전 장관이 중앙일보 인터뷰(2018년 1월9일자)를 통해 마침내 그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계기가 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전인 2017년 12월 당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UAE 특사 파견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문제의 비밀군사조약 수정을 추진했다가 UAE 측이 ‘단교’까지 거론하며 반발하자 사태 수습 차원에서 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국회 비준을 피하고자 이명박 정부가 몰래 맺은 군사조약이 있다는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국방문제 전문가인 김종대 교수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협약에 따르면, UAE가 외부로부터 공격받으면 대한민국은 국군을 파병한다는 자동 개입 의무가 있다”며 “이를 위해 평시에 전투부대를 상주시켜 인계철선 역할을 하도록 하는데 그게 바로 아크부대”라고 밝혔다. 그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없는 ‘자동 개입’ 조항이 들어간 이 협약으로 인해 한국이 졸지에 UAE의 비밀 동맹이 되고 말았다”고 적었다.
윤 발언, 유사시 한국군 자동개입과 맞물려 파문 확산
중동의 복잡한 역학 구도를 감안하면, 이런 내용의 비밀군사협약의 존재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긴 하지만, 공식화할 경우 그 파괴력은 상상 이상일 공산이 크다. UAE도 공식화를 꺼리고, 우리 역대 정부들도 소리나지 않게 행동해왔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UAE 유사시 한국군의 자동 개입’과 맞물리면서 그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아크부대 장병들을 상대로 했던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발언은 지나치게 무모하고 무지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UAE가 여러분들의 조국”이라거나 “우리 형제 국가인 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라는 발언들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윤 대통령은 이미 운영되고 있는 한·UAE 비밀 군사협약을 염두에 두고 발언을 한 것인데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믿는 것 같다”며 “유사시 파병을 전제로 한 이 비밀협약 자체가 헌법 위반이고 중대한 국기 문란임을 더더욱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사안의 심각성을 잘 아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결코 말로 대충 얼버무릴 사안이 아님을 인지하고 물밑 외교에 최선을 다해주길 충심으로 바란다”면서 “국회에도 신속히 비서실장이나 안보실장을 보내 여야 모두에게 성의있는 설명과 함께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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