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선에 중국 개입설 운운 미국의 오도된 시각
불평등 한미관계, 미국의 대중 전략에 휩쓸릴 우려
미국의 두 얼굴, 민주적 강대국 또는 불량배 강대국
한국 사회의 친미적 편견 구조로 미국 제대로 못 봐
다극화시대 주권국 생존 지켜줄 철저한 미국 학습
새 정부가 출범했다. 국민주권정부. 경하할 일이다. 공화국의 위대한 국민이 만들어낸 위대한 역사다. 우리 국민은 정치개혁의 모범적 경로를 자신에게, 그리고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이것이 세계 각국에 던지는 정치·사회적 메시지는 엄중하다.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갉아먹는 부패한 지배 엘리트들에게는 섬뜩한 신호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을 의심의 눈으로 보는 미국
그러면 미국은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 4일, 로이터 통신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한 트럼프 백악관과 주변의 반응을 인용·보도했다(사진 1).
1. 백악관의 한 관리: “한미동맹은 강고하다. 다만 미국은 중국의 개입과 세계 각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우려한다.”
2. 트럼프 최측근으로 알려진 L. 루머라는 극우 활동가가 X(트위터)에 올린 멘트: “한국은 끝났다. 이번 대선은 공산주의자들의 승리다.”
3. M. 플린 트럼프 1기 국가안보보좌관: ‘부정선거 정황이 있다. 그건 중국 공산당에게만 이로운 결과를 낳을 것.’
4. S. 배넌 트럼프 1기 정치전략 담당: 플린과 비슷한 중국과 한국 이야기를 자신의 팟캐스트 채널에서 언급.
주권국가의 정상적 선거 과정에 극우 유튜버들이 내뱉는 ‘중국 선거 개입’이라는 말을 심지어 백악관에서도 덧씌우는 이유가 뭘까? 배넌의 친절한(?) 해설에 따르면, 이는 ‘트럼프(정부)가 이재명 대통령을 의심의 눈길로 본다는 것(mistrust). 그가 중국, 대만, 러시아, 일본 등을 어떻게 대할지, 미국의 입장과 차이를 보일지 주시하겠다는 경고(cautionary) 메시지’다.
미국에 한미관계는 수직적 상하 관계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이익을 “알아서 대변하고 (미국의) 요구에 알아서 기는”(‘명품외교의 길’ 61쪽, 이창천 2025. 진인진) “잘 기른 똘마니”처럼(같은 책, 53쪽) 처신해야 한다. 그런데 이재명 당선자는 미국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을 듯한 인물로 보인다. 해서 이들은 축하의 말보다는 중국 개입론을 퍼뜨리며 그에 대해 경고하는 중이다. 여기에 세계의 또 다른 중심축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견제의 의미까지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의 반쪽만 보는 한국인들
그렇다면 한국은 미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한국인 다수는 미국을 자본주의 경제대국, 막강한 군사대국, 민주주의 정치체제. 즉 민주적 강대국(democratic superpower)으로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이바지하는 나라로 생각한다. 한국이 폴란드, 이스라엘 등과 함께 세계 3대 친미국가인 까닭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절반만 보는 시각일 뿐, 전체는 아니다.
근본적으로 미국은 전쟁국가, 그것도 영구전쟁 국가다(사진 2 참조). 건국 이후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나라로, 미국에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250여 년 역사 중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전쟁국가 미국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나라라고 일반화하는 건 사실에 대한 허위 왜곡에 가깝다. 특히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개입한 전쟁사를 짚어볼 때,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가장 위험한 존재 중 하나가 실은 미국이다.
오늘도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가자에서 테러를 방조하거나 학살을 지원하고 있다. 평화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쟁과 평화의 중간에서 주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테러범죄를 방조하는 것도, 이란과의 핵 협상이 교착상태인 이유도 그것이다. 이스라엘의 인종 대학살을 막자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14대 1로 홀로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국방장관이라는 자는 아예 중국과의 전쟁까지—필연코 한국을 동원할—공언하고 나섰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민주적 강대국이 아니라 불량배 강대국(rogue superpower)이다.
“모든 일이 미국에서 시작해 미국으로 끝나는” 한국 외교부
얼마 전 책 한 권이 나왔다. 앞서 말한 ‘명품외교의 길—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 외교’(사진 3). 외교관 경력(오사카 총영사)의 언론인 오태규(시민언론 민들레 칼럼니스트)는 이제까지 나온 전직 외교관들의 신변집기류 저작과는 전혀 다른 한국 외교의 본격 비판서라고 평했다.
책에는 외교부의 숭미적 태도와 빈곤한 업무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즐비하다. 1. ”서울에 있는 미 대사관 직원들은 서로 밥을 사겠다는 (외교부 직원들의) 성화 때문에 골치가 아플 지경이라고 한다… 워싱턴에 부임해보니 거기서도 한국 외교관이 미국인 식사를 시중들고“ 있었다.(531쪽) 2.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한국 외교관 중에서 미국의 대통령 선거절차를 웬만큼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477쪽) 3. “외무부에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능통하게 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전부 미국만 바라보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361쪽)
과장된 면도 있겠지만, 한국의 대미 외교에 대한 문제의식만큼은 절절하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외교부는 “모든 일이 미국에서 시작해 미국으로 끝나는 조직”이다.(21쪽) 사정이 이러니 “한미동맹은 한일관계를 지배하고 한중관계를 타락시키며 한러관계를 참을 수 없도록 가볍게 만든다.”(241쪽) 과연 한미관계는 특별하다. 문제는 그 특수성이 실상은 ‘식민성’(587쪽), 즉 주권국가의 외교나 외교관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는 지금 대전환의 분기점에 서 있다”고 언급했다. 초과학기술, 기후위기, 국제무역질서의 혼돈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이 말한 작금의 세계사적 대전환의 핵심에 다극화라는 거대한 규모의 지정·지경학적 변동이 놓여있음은 물론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골칫거리인 불량배 강대국
다극화란 미국을 위시한 집단서방의 경제적·군사적 지배력이 쇠퇴하고,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브릭스로 대표되는—가 부상하는 권력 축의 변화를 지칭한다. 기존의 국제질서는 무너지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유념해야 할 것은 다극화를 이끄는 핵심 가치가 상생과 협력, 공존과 평화라는 점이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ational Security Council) 역시 ‘2030 미래보고서(Global Trends 2030)’에서, 도래하는 다극화 세계의 질서를 결정할 핵심 변수 중 하나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협력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가 될 것이라고 썼다.
그런데 모두가 목격하듯 지금의 트럼프 미국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세계를 적대적 대결의 장소로 간주하면서, 무역적자/재정적자/국가채무라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관세로 동맹을 갈취하고 안보로 동맹을 겁박하고 있다. 불량배 강대국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일방적인 데다 혼란스러운 행태는 미국 자신을 불신의 대상으로 추락시킨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빼고 대안의 경제 체제를 모색하는 건 당연한 선택이다. 미국이 오히려 다극화 시대를 앞당기는 셈이다. 지난 5월 27-28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세안-걸프협력회의(GCC)-중국 경제협력 포럼 및 정상회의’ 7월 6-7일 브라질 리우에서 열릴 17차 브릭스 정상회의 등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 내에서도 빈 수레처럼 요란하기만 한 트럼프 정부에 대해 우려와 비판, 반대(예: 여론 악화, 무역법정 소송, 대중집회와 시위 등)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 변동의 시대에 친미/숭미 같은 미국 일변도의 정서·행태·이념은 국가의 생존과 이익의 차원에서 맞지 않는다. 설령 다극화가 아니더라도, 친미/숭미는 편견의 외눈박이를 키운다는 점—미국 대통령과의 통화나 G7, 나토의 초청 같은 것이 한국 대통령이 정치적 정당성을 인정받는 기준인 것처럼 말하는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처럼—에서 그것 자체로 주권국가의 역량을 취약하게 만든다.
관세부터 환율, 북한과 주한미군 문제까지, ‘굳건한 동맹’이라는 미국은 한국에 오히려 난제다. 사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문젯거리다. 지난 2월의 뮌헨 안보회의에서 싱가포르의 N. 헨 국방장관은 미국이 “해방자에서 골칫거리로, 이제는 월세 독촉하는 건물주”로 달라졌다고 개탄한 바 있다. 이즈음 다극화 시대라는 대변동과 급격히 달라지는 미국의 실체를 제대로 공부하는 것—거의 무조건적 신뢰의 대상에서 객관적 분석과 비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작업—그것이 국민주권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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