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식 보도하던 언론, 29일엔 우려-비판
출마설 초기에 던졌어야 할 질문 뒤늦게 제기
차가운 여론, 낮은 승산 의식해 신중론 선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출마가 굳어져 가는 듯한 가운데 다수의 언론들이 그에 대해 비판적 보도를 내놓고 있다. 29일 아침 주요 신문의 사설은 한덕수 대행의 출마 선언 임박에 대해 우려와 비판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한덕수 출마설을 흥미롭게 중계하더니, 막상 출마가 현실화 단계에 이르자 비로소 “왜 출마하느냐”는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제기한 그 의문은 사실 출마설 초기부터 던졌어야 할 질문이다. 그럼에도 다수의 언론은 그같은 질문을 제기하기는커녕, 국민추대위 출범 소식이나 단일화 시나리오를 전하는 데 급급했다. 대선 관리 책임을 지는 권한대행이 대선에 출마하려는 것에 대해 비판해야 할 언론이 연일 중계방송을 했다. 그랬던 언론이 이제 와서는 뒤늦게 비판 내지 신중론으로 돌아선 모양새다. 언론이 한덕수의 출마를 한편으로는 부추기면서 한편으로는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한덕수의 출마 내막보다 더 혼란스러운 언론의 어지러운 행보다.
이날 자 조선일보의 사설은 <韓 대행 출마 명분과 비전이 궁금하다>는 제목을 달고, 임명직 총리와 선출직 대통령은 완전히 다른 자리이며 “계엄을 저질러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 밑에서 3년간 총리를 한 사람의 대선 출마가 온당한 것인지 의문”이라는 지적을 내놓았다. 여론조사에서 국민 66%가 한덕수 출마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는 결과를 언급하며, “한덕수 스스로 왜 출마해야 하는지부터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중앙일보의 사설 <‘출마 임박’ 한덕수, 국민 설득할 명분 제시가 먼저>는 더욱 노골적인 회의론을 펼치고 있다.
특히 중앙은 “그는 윤석열 정부에서 유일한 총리로 재직했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주요 실정에 대해 책임질 수밖에 없는 위치”라고 지적하면서, 의대 정원 증원 혼선, R&D 예산 삭감, 잼버리 부실, 엑스포 유치 실패 등 윤 정부의 큰 과오들에 대해 한덕수가 뭐라 해명할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언론의 보도는 자가당착적이다. 이들 언론이야말로 한덕수를 ‘왜 출마하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나아가 출마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자문 없이 출마 결심을 굳히도록 부추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설이 처음 불거졌을 때, 주요 언론 보도는 흥밋거리로 다루면서 출마론에 불을 지폈다. 보수지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비롯해 여러 매체가 한덕수 대행의 행보를 마치 정치 게임의 새로운 변수처럼 전했다. 중앙일보는 4월 26일자 기사에서 “한덕수, 대선 출마 결심 섰다…30일 사퇴, 무소속 출마 유력”이라며 정치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 대행이 결심을 굳혔고 ‘반(反)이재명 빅텐트’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이 기사는 한덕수 대행이 보수 진영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정대철 전 의원 등의 발언을 빌려 “보수 후보 중 지지세가 가장 높고 출마 자격을 지닌 인물”이라는 찬사까지 소개했다
한덕수 대행이 주변에 “출마 요구를 회피만 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하면서 그의 출마 결단을 기정사실처럼 다뤘는데, ‘출마 요구’를 한 것은 사실상 어느 곳보다도 언론 자신이었다고 해야 마땅하다.
한덕수 출마설은 언론에 의해 정치권의 ‘빅 이벤트’가 됐다. 언론은 단일화 시나리오와 판세에 초점을 맞췄다. 연합뉴스는 국민의힘 경선과 연계해 “한덕수 단일화 변수에 관심 증폭”이라는 제목으로, 한덕수 대행의 출마가 기정사실이 되자 정치권의 이목이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으로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한덕수의 출마 자체가 정당성 논란이나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선거전의 재미를 더하는 ‘관전 포인트’처럼 다뤄진 것이다.
한덕수 대행을 둘러싼 헌정질서 문란 공모 의혹과 책임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들의 한덕수 출마설 보도에서 그가 윤석열 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내란 혐의 사태에 연루된 의혹이 있는지를 짚는 대목은 없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시도 과정에서 한 총리가 국무회의를 소집해 계엄 확장을 도왔다는 의혹은 누락됐다. “내란을 만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퇴로를 열어주려 했던 명백한 내란 방조자이자 공범”이라는 야당이나 다수 국민들의 비판은 언론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들 언론의 한덕수 관련 기사에서 ‘내란’이나 ‘계엄’ 같은 단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일보의 4월 25, 26일 기사 등은 한덕수를 ‘대미 통상 전문가’ 등으로 소개하며 한덕수의 이미지를 미화하고 있다.
29일자 주요 언론의 보도는 이 같이 한덕수의 움직임을 부추기거나 최소한 긍정적인 ‘관측’ 위주로 다루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논조다. 민주당이 공격하는 ‘내란 공범’ 의혹까지 거론하며 도덕성과 정당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 <내란동조 언론 책임규명 및 올바른 대선보도 촉구> 기자회견에서 나온 “언론들이 한덕수를 정당한 대권 후보자인 것처럼 세탁해서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민주언론시민연합 채영길 정책위원장의 지적을 받아들이기라도 한 것일까.
그보다는 조선일보의 사설에서 인용한 어느 여론조사에서 국민 66%가 한덕수 출마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는 결과가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듯하다. 여론이 싸늘해지고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부랴부랴 입장을 선회했거나 신중론으로 돌아선 듯하다. 중앙일보 사설이 지적한 대로 “정치 경력이 전무하고 지지 조직도 없으며” 고건 전 총리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중도하차한 사례처럼 완주나 승산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의 대선 출마에 철저한 검증과 비판을 하는 대신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재미있는 승부’ 구도를 부추겼던 언론이 이제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사고 있다. 혹은 보수 언론 자신들을 더욱 안심시킬 수 있는 경쟁력을 보여달라는 주문을 보내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조선일보의 사설의 표현을 빌리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언론은 한덕수 출마 보도를 둘러싼 이 같은 여러 궁금증부터 ‘독자와 국민들에게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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