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용 정치공학적 전략에서 유사하다고 포장

민주주의 진전을 위한 연합과 비교, 어불성설

빌려 쓸 수 없는 이름을 무단으로 도용하는 격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는 이른바 ‘반(反) 이재명 빅텐트’ 구상이 김대중 김종필의 DJP 연합이나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와 유사한 전략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 국민의힘 주변과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 모두 유사한 선거용 정치공학적 발상이라며 거의 동일시한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같지 않은 것을 비슷하게 취급함으로써, 반(反) 이재명 빅텐트는 정당화하고, 반면 DJP 연합이나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는 폄하하는 것이다. 

1997년 DJP 연합은 한국 민주주의사에서 오랜 정권교체의 열망을 받아 취해진 전략적 결정이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연합도 그 결과는 비록 막판 파기로 끝나긴 했지만 시도 자체는 민주정부의 성과를 계승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힘의 반이재명 빅텐트는 윤석열 정권의 총체적 실패와 헌정 질서 훼손에 대해 단 한 번도 스스로 반성하지 않은 채 추진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정당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내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정치집단이 책임은커녕 절대로 정권을 내줄 수 없다는 목적만으로 기획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야합’에 불과하다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1997년 대선에서 DJP연합을 일궈낸 김대중, 김종필 당시 양당 총재가 환호하고 있는 모습. 1997.11.3 연합뉴스
1997년 대선에서 DJP연합을 일궈낸 김대중, 김종필 당시 양당 총재가 환호하고 있는 모습. 1997.11.3 연합뉴스

언론에서는 '반(反)이재명 빅텐트' 구상을 DJP연합이나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와 비교하면서 이번 대선에서도 '반이재명 빅텐트'와 후보 단일화가 보수 진영의 유일한 승리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흥미로운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이 분석한다. 연합뉴스의 <반이재명' 빅텐트?…현실성 따져보니>는 '반이재명 빅텐트' 구상의 이상적인 모델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들면서 ‘경기 관전평’을 내놓고 있다. 문화일보 논설위원의 <빅텐트와 단일화>라는 칼럼은 반이재명 빅텐트를 “대선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라고 해 과거의 여느 선거연합과도 다를 게 없다고 얘기하면서 가장 성공적인 빅텐트로 3당 합당과 DJP연합을 꼽고 있다.

그러나 1997년의 DJP 연합은 단순한 선거 공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군부독재 종식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던 수구 기득권의 장기집권 체제를 끊어내고, 민의에 기반한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결단’이었다. 김대중은 평생을 민주화 투쟁에 바쳤고, 김종필은 군사정권의 후예였지만 두 사람은 상반된 정치노선과 지향을 넘어 서로 손을 맞잡았다. 이는 이질적인 정치세력 간의 야합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 진전을 위한 연합이었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역시 단순한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으로 폄하될 수 없는 것이었다. 기성 정치에 대한 대혁신의 기치를 내세웠던 노무현이 정몽준과의 단일화에 나선 것은 ‘정권 재창출’을 넘어서 ‘민주정부 2기의 완성’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비록 막판에 정몽준의 지지 철회로 끝났지만 그 시도 자체는 민주주의의 연속성과 정치개혁의 의지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반면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반이재명 빅텐트는 그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이 연합은 정권교체나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명분 없이, 오직 ‘이재명만은 안 된다’는 공포와 혐오의 감정에 기반하고 있다. 더구나 이 연합을 주도하는 세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사태, 계엄 기도 등 헌정질서를 유린한 잘못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권력을 지키려는 인물들이다. 이는 명백히 반성 없는 이들 간의 ‘권력 연장의 야욕’에 따른 정치적 '수구 동맹'일 뿐이다.

DJP 연합이 민주주의 진전에 대한 염원에서 비롯된, 현실 정치지형에서의 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였다면 반이재명 빅텐트는 내란의 연장을 위한 반민주주의적 퇴행 행위이며, 기득권의 최후 동맹과도 같은 것이다.

위의 문화일보 논설위원 칼럼은 “빅텐트들은 뒤끝이 다 좋지 않았다”면서 “3당 합당은 내각제 약속 파기로 사실상 깨졌고, DJP도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견으로 갈라섰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칼럼은 “빅텐트 구성도 결국 후보를 한 사람으로 정해야 하는데 이 또한 녹록지 않다. 다들 자기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누가 더 절박한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고 하면서 친절하게 코칭까지 하고 있다.

1990년 집권당이던 민주정의당과 야당이던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이라는 '호남 포위' 발상과 DJP연합을 빅텐트라는 이름으로 똑같이 본 것부터가 연합의 성격과 역사적 맥락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차치한다. 다만 선거 연합에 대한 평가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됐으냐 이전에 애초의 연합의 성격, 그 역사적 정당성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이뤄져야 마땅할 것이다. 어떠한 선거연합에 대해서든 그것을 정치공학이라고 하더라도 정치공학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정치공학이 정당성으로 뒷받침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반이재명 빅텐트는 DJP 연합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도 아니다. 빌려 쓸 수 없는 이름을 무단으로 도용하는 것이다. 기득권 사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태도는 애초에 '빅 텐트'라는 말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빅텐트론의 첫 번째 문제는 그 발상부터가 결코 '큰 것(빅)'이 될 수 없는 왜소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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